호기심청년
유뽕이 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랍니다.
방학동안 마구 먹어대더니 발도 넓적해졌답니다. 예전처럼 배만 볼록하게 나오지 않아 참말 다행이지요.
호수를 따라 걸으며 아빠 곁에서 산책하는 아침입니다.
뒤따라가는데, 유뽕이가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엄마는 잠시 울컥해집니다.
아빠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걸었던 애기는 사라지고 든든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유뽕이 키가 아빠보다 커졌네요.
두 사람의 뒷모습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깊이 느껴봅니다.
몸만 빨리 커진 유뽕이는 마음 키는 어린아이 걸음마로 아주 천천히 자랍니다.
사춘기가 되려는지 녀석의 코밑이 거뭇해졌습니다.
며칠 전 샤워하고 나오는 아빠 코밑이 말끔하기에 쳐다보며 유뽕이에게 말을 건넸지요.
“유뽕이도 콧수염 났네? 아빠처럼 면도하면 멋있겠다!”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녀석이 소리를 지릅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수염 나기 싫어요. 수염 나는 거 정말 싫어요!”
예상외로 너무 화를 내기에 엄마는 달래보려는 심산으로 말했지요.
“수염이 나도 괜찮아! 면도하면 깨끗해지니까 아빠한테 나중에 가르쳐 달라고 해!”
점점 소리가 커지며 울먹입니다.
하긴 수염도 싫다는데, 면도까지 배우라고 했으니 덜컥 겁이 난 모양입니다.
“으허엉....., 싫단 말예요! 면도 하는 거 싫어요!”
“어! 그래 알았어. 유뽕인 절대로 수염나지마! 알았지?”
간신히 녀석을 달래놓고 안아주는데 엄마는 괜히 한숨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 유뽕이를 따뜻한 욕조에 들이밀고 등 밀어주러 갔다가 엄마는 깜짝 놀랐지요.
녀석이 고개 숙이고 뭔가에 몰두해 있는 겁니다.
가까이 가서보니 양 손으로 고추위에 솟아난 음모가닥을 뽑고 있지 뭡니까.
속으로만 꺅꺅 비명을 지르고 겉으론 태연하게 말해줬습니다.
“유뽕아! 털 뽑지 마! 형아 되려면 털이 나는 거야. 아빠도 있고, 엄마도 어른이라서 털이 난 거야. 유뽕이도 멋진 형아 될 거지?”
“네에. 형아 될 거예요!”
대답은 씩씩하지만, 언제 또 은밀한 짓거리를 할지 모르는 녀석입니다.
거품목욕 시켜주고 수건으로 남은 물기 털어주며 엄마는 속말을 했습니다.
‘사실은 엄마도 네가 어른 되는 게 싫어! 계속 품고 살 수 있는 애기였음 좋겠다!’
어제 오전, 선뽕이 누나 손가락에 붉은 반점이 생겨 데리고 피부과 다녀오던 길이었지요.
유뽕이는 집안에 두고 아빠는 마당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 골목에 주차를 하느라 누나먼저 집으로 들어가라 했습니다.
막 현관문을 여는데, 앞서 들어간 누나가 소리 지르며 난리가 났네요.
“엄마, 엄마! 유뽕이 땜에 미치겠어. 쟤가 뭔 짓을 했는지 알아?”
“왜? 무슨 사고 났니?”
혼자 집안에 있다가 어디 다친 것은 아닐까, 뭘 깨뜨렸나 걱정되었지요.
누나가 곧이어 흥분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유뽕이가 화장실문을 열어놓고 변기 앞에 서있어서 소변보나 했거든. 근데 저걸 고추에 대고 변기 속으로 쏘아내고 있는 거야!”
누나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걸 보았지요.
정확한 이름을 뭐라 할까요? 엄마가 섬유유연제 큰 통으로 사놓고 작은 용기에 옮겨 담을 때 사용하는 주름 잡힌 호수가 달린 것인데.
손잡이에 물렁하게 붉은 공기주입구가 있어서 누르면 빨아들이는 힘에 의해 옆 통으로 옮겨지는 기구입니다.
평소 물장난 할 때 욕조 속에 물을 바닥으로 뿜어대며 놀았거든요.
그 원리를 응용(?)하고 싶었던 겁니다. 자기 고추에 대고 붉은 손잡이 눌러가며 오줌줄기를 변기 속으로 쫙 쏟아보려던 것입니다.
엄마는 유뽕이보다 선뽕이 누나를 먼저 이해시켰습니다.
“선뽕아! 그냥 동생이 단순하게 호기심이 생겼던 거야. 놀라지 말고 차분하게 얘기해주면 돼!”
정말 그렇습니다.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크게 내면, 유뽕이는 혼내거나 화내는 줄 아니까요.
잠시 후 거실로 들어온 아빠에게 방금 전 상황을 얘기하니 그저 껄껄 웃습니다.
유뽕이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유뽕이가 과학자가 되어본 거야? 어떻게 되나 알고 싶었나? 허허허!”
엄마는 유뽕이 녀석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종알대며 화를 냈습니다.
하여간 실험정신 충만한 호기심청년(?)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답니다.
지린내 나는 플라스틱 도구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며, 엄마는 녀석을 멀리서만 째려봤답니다.
일일이 설명해 줘도 금방 잊어버리는 유뽕이.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녹음기처럼 반복하여 알려주며 매순간을 살아갑니다.
녀석의 삶 위에 소망하나 걸어두고 인내하며 달려가야 하는 것이 엄마 몫이니까요.
2013년 1월의 마지막 날
호기심으로 근질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