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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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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90 - 가장 무서운 것


BY 박예천 2012-07-10

 

         가장 무서운 것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새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유뽕이가 갈만한 학교를 고민하다 집에서 차로 20여분 가는 거리에 소재한 일반학교를 택했지요.

남녀공학인 점도 맘에 들었고, 각 학년 한 학급뿐이며 친구들이 열아홉 명인 소규모 학교라서 더 좋았습니다.

안심했던 첫 마음과는 달리 울고 웃으며 두 계절을 보냈네요.

돌이켜보니 지난 6개월이 마치 초등학교시절 6년만큼이나 길고 험난했습니다.

녀석의 사춘기가 겹친 시기이다보니 몇 갑절의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많이 죄송한 마음으로 살얼음판을 걸었지요.

 

초등학교와는 달리 각 과목별 선생님이 여러 분이다보니 생각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입실을 거부당하는 과목, 수업에 참여시켰으나 도중에 쫓겨나오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그러면서도 학교생활을 지속해야할까.

엄마의 가슴은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다른 기대보다 유뽕이가 친구들을 아는 것에만 만족하자했던 마음을 다잡고 견뎠습니다.

조금씩 녀석이 친구들 이름을 불러댑니다.

집에 와서도 친구 누가 좋다며 말하기도 하고, 우유를 건넨 친구이름도 말합니다.

학교에 잘 적응 하는 것 같아 표면상 좋게 보였지만, 속울음을 참아야 했던 일들도 많았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만 되면,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유뽕이를 데리고 금화정 밭에 갑니다.

몇 년 뒤, 그림처럼 예쁜 집 짓고 살자며 꿈을 꾸는 유뽕이네 집터입니다.

콩밭에 풀 뽑는 엄마, 감자알을 자루에 골라 담는 아빠는 땡볕에 진땀범벅이 되는데,

유뽕이만 신이 났습니다.

노란 자전거를 타고 동네 길과 논둑길을 마구 달립니다.

산비둘기가 쪼아 먹을까 콩 밭에 꽂아 두었던 여러 개 중, 파란 바람개비 한 개를 뽑아 자전거 핸들에 달아주었습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양에 입이 벌어지며 좋아라 더욱 세게 페달을 밟는 유뽕입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시들해진 녀석이 농기구보관창고삼아 만들어놓은 간이철제 집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뿌리개 하나를 들고 오더니 논물 흐르는 도랑으로 내달립니다.

몇 번 물을 담아 언덕을 오르내리고 밭에 파 놓은 마른 웅덩이에 붓기도 하고, 아무데나 뿌리며 재미있어하네요.

풀 뽑는 엄마 곁으로 오더니, 뜬금없이 한 마디 합니다.

“엄마! 뱀이 길어요!”

뭔 소리인가 했더니, 아빠 말이 도랑에서 물뱀을 봤답니다.

순간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뱀이 징그럽게 싫다고 펄쩍 뛰었지요.

유뽕이는 뱀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꼬리를 잡고 휘휘 돌리며 재미있게 갖고 놉니다.

물론 독사이거나 위험한 종류는 아빠가 미리 처리하니까 안전하지요.

 

그런데, 녀석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뭔 줄 아세요?

날개달린 작은 곤충들이랍니다.

파리, 모기, 하루살이, 벌 등등.

엄마는 손으로도 때려잡는 그 작은 곤충들에 벌벌 떨고 도망가며 싫어하지요.

 

저녁때가 되자, 심었던 파를 한 묶음 뽑아온 아빠가 밭 가장자리에 앉아 다듬기 시작합니다.

오며가며 놀던 유뽕이가 다가오더니 물어봅니다.

“아빠! 뭐해요?”

“파 다듬지!”

머릿속에서 어렵게 연결된 문장을 섞어 몇 마디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리칩니다.

“아빠! 파리에 머리가 앉았어요!”

듣고 있던 엄마가 빵 터져서 배꼽을 쥐고 웃고 말았지요.

공포의 대상인 파리가 아빠머리에 앉은 것을 보고 알려준다는 게, 단어가 뒤죽박죽 섞인 겁니다.

깔깔 웃던 엄마가 부자지간을 놀립니다.

“하여간 되게 웃겨! 아빠가 국어선생인데 아들의 말이 그게 뭔가요? 파리에 머리가 앉았다니...,히히히. 덩치는 산만해서 파리를 무서워하냐?”

나이를 잊고 데굴거리며 웃는 엄마를 아빠는 어이없게 바라만 봅니다.

유뽕이도 덩달아 한심하게 보는 듯 했지요.

 

엊그제 밤이었습니다.

씻고 침대에 누워 막 잠이 들려는데, 유뽕이가 정말 작은 소리로 속삭입니다.

“엄마! 모기가 있어요. 모기약을 뿌려야겠어요.”

더운 밤인데도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는, 모기가 들을까봐 그랬는지 모기소리보다 작게 말하는 녀석이 참 귀엽게 보였습니다.

등산을 하다가도 눈앞에 하루살이 떼가 아른거리면, 온갖 비명 질러대며 두 눈 꼭 감고 앞으로 전진 못하는 유뽕입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며, 세상이라고 한숨 쉬는데,

유뽕인 코딱지 만 한 것들만 무섭다고 열네 살이 먹었건만 아직도 벌벌 떨고 있네요.

 

차라리 이대로 녀석이 세상 곳곳 숨어있는 진짜 무서운 것들을 영영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7월 10일

오랜만에 유뽕이 이야기를 다시 써보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