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자에 한하여
오후에 인지치료실 가야하는 날입니다.
유뽕이녀석 선생님 댁에 보내놓고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려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급히 정차하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니 인지치료선생님입니다.
“유뽕어머니! 이번에 교육청에서 나오는 치료비 신청을 왜 하지 않으셨어요? 월 10만원씩 보조되는데...., 모르셨어요? 다른 아이들은 구비서류 부탁하던데요.”
“네? 그게 뭐죠? 안내 받은 기억이 없는데...., 제가 학교에 알아보죠 뭐.”
엄마는 차를 세운 김에 도움반 선생님께 전화 해 봅니다.
차근차근 물어보는 엄마에게 선생님이 설명하더군요.
“어머니, 기억 안 나세요? 왜 여름방학 즈음해서 제가 전화로 교육청에서 급한 공문이 내려왔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아! 그거요? 무슨 특별활동비인가 지원되는데, 유뽕이는 희망하는지 알아본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학원 여러 군데 다녀서 시간 내기 힘들다고 말씀드렸구요. 아니었나요?”
“아뇨. 학원이 아니라 치료비 지원이었죠. 어머니가 유뽕인 바우처에서 나온다고 하셨어요. 저는 중복지원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얼핏 기억이 나는 듯 했습니다.
엄마는 나라에서 지원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바우처라고 착각을 했던 겁니다.
오늘 인지치료실 선생님 얘기는 달랐습니다.
시청에서 지원되는 유뽕이 부분은 중증장애아치료지원 서비스였고, 지난 여름방학 앞서 도움반 교사가 말 한 것은 교육청지급이었던 겁니다.
바보엄마라서 유뽕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지금이라도 수습이나 정정이 될까 다시 알아보기로 했지요.
고민하다 도움반교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바쁘신데 자꾸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교육청에 누락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하면 안 될까요? 업무가 많으실 텐데 제가 직접 알아볼까요?”
엄마는 도움반 선생님의 대답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시던가요!”
마치 ‘당신 맘대로 해라!’는 식의 느낌이 전해졌으니까요.
교육청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계속 통화중입니다.
다시 연결을 시도하려는데, 도움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또 옵니다.
“교육청에 전화해보셨나요?”
“아뇨. 지금 하려는데 계속 통화중이네요.”
“제가 해봤거든요. 치료비지원은 학기별로 신청을 하기 때문에 이번학기는 어렵다네요. 다음 학기에 해보라고 하던데요.”
“다음 학기요? 유뽕인 곧 졸업인데..., 다음 학기가 어디 있어요? 예...., 잘 알겠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그까짓 10만원 때문에 엄마 속이 부글거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껏 참아왔던 도움반 교사의 갖가지 실망스런 부분들과, 이 나라 복지행정체제가 맘에 들지 않아 분통이 터집니다.
장애아들 가진 것이 죄라는 심정으로, 웬만하면 참고 들추지 않으며 살았는데...., 참 갑갑한 지경이네요.
학부모가 궁금해 하고 안타까워한다면, 특수교육 전문가 위치인 교사로서 교육청에 직접 알아봐준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심호흡 몇 번 한 다음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최대한 가라앉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전했지요.
“아까 도움반 교사 전화를 받으셨으니 내용은 다 아시겠네요? 그냥 넘어가려다 이건 아니다 싶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치료비지원이라는 것은 나랏돈이 쓰여 지는 일인데, 어떻게 전화로 대충 설명하여 조사를 마칩니까? 사전 안내문이라든지, 문서에 학부모 사인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바우처인지, 중증장애치료비 지원서비스인지 착각을 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무지에서 온 불찰인거 인정합니다. 저 같은 불이익을 당하는 어머니들이 또 있을까봐 용기 낸 겁니다. 앞으론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골고루 기회가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번 같은 좋은 기회가 있으면, 모든 장애아동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안내하고 홍보해야지, 운이 좋으면 받고 그렇지 못하면 제 꼴이 되지 않습니까.”
말끝마다 죄송하다고, 쩔쩔매는 목소리로 답하는 담당자.
엄마는 무의미한 사과를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뽕이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또 다른 장애아동들이 피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희망자에 한하여’라는 말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혜택에도 쓰여야 하는지 의문이네요.
세상에 어느 누가 장애를 갖고자 희망하여 태어난 사람 있답니까?
이 나라가 장애우를 제대로 돕고 복지정책이나마 실현하고자 한다면,
장애인들에게 희망자 운운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연히 베풀어야 할 부분이 아니던가요.
지원해야할 치료비 명목이 정해졌다면, 희망할 것이냐, 아니냐 조사를 왜 하는지요.
분명히 교육청에 유뽕이 복지카드사본이나 장애등급이 기록되어있어서 관련근무자들도 다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각 장애아동들마다 지원자자격이 되는지 일일이 부모들에게 희망여부를 물어야 했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정당히 받아야 할 아들의 치료비 지원마저 놓쳐버린 멍텅구리 엄마는 이제야 뒷북을 쳐 봅니다.
뭔가 주먹구구식 행정의 한 부분을 본 것 같아 씁쓸하네요.
다시는 ‘희망자에 한 하지’ 말고 혜택의 기회를 균등히 줬으면 하는 엄마 마음입니다.
유뽕이와 살아 갈 세상이 점점 어둡게 다가온 하루였습니다.
2011년 10월 26일
맘 쓸쓸해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