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쯤이야
혹시, 2009년 11월 23일 유뽕군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물론 압니다.
엄마인 저에게만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었다는 것을요.
주사공포증으로 시달리던 녀석이 우여곡절 끝에 치료선생님과 동행하여 당당히 주사를 맞게 되었던 날입니다.
그로부터 어언 2년 뒤인 엊그제, 6학년 형아가 된 유뽕군에게 또다시 반갑지 않은 안내문이 도착하였답니다.
파상풍예방접종을 개별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해야 된다는 군요.
악몽의 날이 아스라이 잊혀져가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뒹굴뒹굴 사느라 다시는 주사 맞는 끔찍함 따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6월 말까지라는 넉넉한 시일이 잡혔는데도, 엄마는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 된 한숨만 나옵니다.
치밀한 계획 하에 굽이굽이 산을 넘어야 하니까요.
우선, 단계별 교육법으로 사탕발림 1차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유뽕아! 여기 봐봐! 선생님이 편지를 보내셨네. ‘보건소에 가서 주사 맞고 오세요.’ 써있지? 잘 맞으면 장난감 사줄 거야.”
‘속초시 보건소’라는 글자에 엄마는 집게손가락을 그어대며 유뽕이 코밑에 대줍니다.
“주사 맞기 싫어요!”
역시나 녀석은 예상했던 대답을 합니다.
단번에 오케이 하리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왕년(?)의 그 절차를 또 밟게 될까봐 맥이 풀립니다.
월요일인 오늘부터 리허설이 아닌 직접 시도해보기로 엄마는 굳게 맘먹었습니다.
점심 먹으러 들린 아빠를 향해 비장한 어조로 말했지요.
“자기야! 오늘 몇 시에 퇴근해? 일찍 끝나면 보건소 예방접종실로 달려와서 유뽕이 좀 꽉 잡고 있어 주라! 응?”
다섯 시 반이나 되어 수업이 끝난다는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연약(?)한 엄마 혼자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만 같은 불길함이 엄습합니다.
그 날의 주사 맞기 대소동을 잠재워주신 인지치료실 선생님께 전화 걸었지요.
“선생님! 이따가 유뽕이 공부하러 갈 때, 주사 잘 맞으라는 말 좀 해주세요. 예전 생각이 나서 걱정 되거든요!”
공부가 끝나자마자 보건소로 갈 작정하고, 엄마는 차안에서 심호흡을 합니다.
전쟁터에 아들을 입대시키는 사람처럼 지그시 눈 감고 손 모은 채 기도했지요.
한 시간 후 공부를 끝낸 아들이 나오고 뒤에 선생님도 오십니다.
“유뽕어머니! 만약 유뽕이가 주사 맞기 싫다고 하면, 선생님이랑 주사 열 대 맞을래?, 엄마랑 주사 한 대 맞을래? 물어보세요!”
녀석에게 선택권을 주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주사 열 대를 맞고 싶을까요.
과연 전문가다운 처방입니다.
보건소로 가는 차안.
묻지도 않는 말을 유뽕이가 먼저 합니다.
“여기 주사 아야! 맞을 거예요. 노란 장난감 사 주세요!”
엄마가 맞을 주사 대신 맞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연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과연 녀석이 오늘 한번으로 주사 맞기를 성공적으로 끝내줄까요?
보건소에 들어서자마자 긴장한 얼굴빛이 역력합니다.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니까요.
“괜찮아! 안 아파! 금방 나을 거예요!” 등등.
벌써 다른 학교 아이들이 한 줄로 늘어서 팔뚝에 약솜을 문지르고 나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유뽕아! 저기 봐. 친구들도 울지 않네. 너도 잘 할 수 있지?”
겁나는지 대답도 없네요.
드디어 유뽕이 차례입니다.
엄마는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녀석을 앞으로 밀었지요.
“어머니! 잡아 주셔야죠!”
직원인 듯한 한 사람이 다가와 엄마랑 양쪽에서 녀석을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냥 두세요! 자기 스스로 팔을 내밀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아라는 사전설명을 괜히 했구나.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과도한 관심과 보호가 오히려 유뽕이에게 공포심으로 다가 올 것만 같으니까요.
순간, 왼 팔에 소독약을 묻히려 하자 유뽕이가 씩씩하게 말합니다.
“아니요, 오른 쪽 맞을 거예요!”
기특하게도 자기가 맞고 싶은 팔을 선택하여 말한 것입니다.
곁눈질로 주사바늘을 쳐다보며 긴장하려는 순간, 잽싸게 주사를 놓더군요.
비명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오기도 전에 예방접종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답니다.
참으로 장한 내 아들 유뽕군.
다음 친구가 팔을 내미느라 분주하건만, 또 한마디 하더군요.
“밴드 붙여주세요!”
밴드는 유뽕이가 오래전부터 정한 만병통치약입니다.
다들 그냥 가는데, 녀석만 속초시 보건소표 캐릭터 밴드를 붙이고 신나게 나옵니다.
드디어 유뽕군이 해냈습니다.
다음 예방접종 때는, 녀석 혼자 보내는 것이 엄마의 목표랍니다.
불철주야 생업에 임하면서도 유뽕이시리즈를 읽어주시는 애독자 여러분들!
대한민국 전국각지에 살면서도 오가며 녀석의 팬클럽(믿거나 말거나) 회원이 되어주셨던 아줌마들!
사실 그까짓 주사 한 방 맞은 일이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유뽕어미의 가슴 깊숙이 울컥 차오르는 희열을 아실 테지요?
한 고개 넘고 나면 또 저만치 높은 언덕이 혀를 널름거리지만요.
푯대를 향해 가는 걸음이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혼자 걷는 게 아니었더군요.
같이 가실 거죠?
유뽕이랑 지금처럼.
2011년 6월 13일
유뽕군 주사 맞기 아주 쉽게 성공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