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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73 - 위험한 메시지


BY 박예천 2011-05-30

 

      위험한 메시지

 

 

 

엄마 휴대전화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유뽕입니다.

처음엔 살살 달래며 빼앗거나 꾸중을 하며 못하게 했습니다.

새로운 기계에 대한 관심이고, 친구도 없는 녀석인지라 적당한 한도 내에서 허락을 하게 되었지요.

무엇이든 관심분야에 대한 흡입력이 대단해서 금세 모든 기능을 익혀버렸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냅니다.

작은방에서 거실로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만날 같은 말이지만 천만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내용이지요.

따뜻한 부자지간 대화인지 아빠도 주거니 받거니 녀석에게 문자로 질문을 합니다.

‘지금 뭐해? 내일 어디 갈 거야?’등등.

그러면 신나서 답을 보내며 몰두해 있습니다.

 

여기저기 엄마가 저장해 놓은 번호로 문자메시지나 사진도 보낸답니다.

앞뒤 문장이 맞지 않는 내용을 받은 상대방이 의아해 하며 답신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누구냐? 뭔 말이냐? 등등 말이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가까운 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작은엄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00이모! 만나러 가고 싶어요!’

‘나중에 7월에 00권사님 집에 놀러 갈 거야. 사랑해요!’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사방에 메시지를 날립니다.

사전에 엄마가 부탁을 했기에, 이미 문자메시지 받은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거나 유뽕이 눈높이에 맞는 답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그래. 유뽕아! 이모도 아주 많이 사랑해!’

‘7월에 꼭 놀러 와라! 나도 보고 싶어!’

참 미안하고 고맙게도 엄마인 제 맘에 힘을 실어주십니다.

녀석이 유일하게 어느 대상을 향하여 대화 시도하는 계기인가 싶어, 엄마는 일찌감치 여러 님들께 양해를 구했지요.

다들 미안해하지 말라며 괜찮다고 엄마 안심시키는 문자를 보내옵니다.

 

사건은, 어젯밤 늦은 시간 일어났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거실에서 티브이 보는 중이었고, 누나도 자기 방에 있었지요.

저 멀리 엄마 방에서 급하게 달려 나오는 유뽕이.

손에는 역시 하얀 휴대전화가 들려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 전화 받으세요!” 합니다.

문자메시지를 찍다가 전화벨이 울리면 들고 뛰어오는지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받았지요.

“여보세요?”

“네. 여기 소방서 상황실인데요. 방금 신고를 받았습니다!”

“네? 뭐라고요? 그럴 리가!”

“문자도 왔는데요. 내용은 ‘소방관 아저씨 불났어요! 빨리 오세요. 얘 좀 혼내 주세요!’라고 써있네요.”

“어머, 죄송해서 어쩌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들이 장애가 있는데 장난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죄송해요!”

엄마는 죄송하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답니다.

전화를 끊고 보낸 메시지 저장함을 열어봅니다.

평소 녀석이 실수는 하지 않을까 일부러 저장해 놓거든요.

아까 전화에서 말했듯이 구구절절 메시지를 보냈지 뭡니까.

최근통화기록을 보니 소방서 119에 다섯 번 넘게 전화를 걸었네요. 심지어 112에도 한 번.

아! 정말 죽을 맛이라는 기분이 이런 것이군요.

잠시 후, 또 전화가 옵니다.

더럭 겁이나 엄마는 아빠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줍니다.

차분하게 용서를 구하는 아빠 목소리.

“아.....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지적장애가 있는데요. 인터넷 동화 보다가 호기심에 장난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주의시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녀석 덕분에 엄마 아빠는 한밤중 죽을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문자메시지 알림음.

내용은 한결 같습니다.

유뽕이가 신고한 숫자만큼 답신이 오는데, ‘지적장애인의 장난전화였음이 신고 접수되었음.’라고 찍혀있습니다.

여러 번 뽀롱 뽀로롱 거리는 휴대전화 메시지알림음이 울립니다.

 

벌써 알고 있는 사실인데,

엄마 가슴팍에 ‘지적장애인’이라고 달구어진 인두로 화인을 찍어댑니다.

나쁜 사람들! 내부에서 확인한 후 단 한번만 보낼 일이지.

 

엄마는 그랬습니다.

유뽕이가 살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피해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키우겠다고.

기대를 빗나간 녀석을 쳐다보니 맥이 빠지네요.

이참에 휴대전화 잠금장치 단단히 해두고 오래 잊었던 긴 한숨을 내 쉽니다.

다시는, ‘지적(知的)장애인’이라고 지적(指摘)받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개 깊은 속초의 오늘아침 기운이 꼭 엄마 속내만 같네요.

 

 

 

2011년 5월 30일

어젯밤 유뽕이 장난문자 떠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