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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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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72 - 엄마꺼!


BY 박예천 2011-05-25

        

            엄마꺼!

 

 

 

2011년 5월 24일 어제는,

유뽕이의 초등학교시절 마지막 봄 소풍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경기도 용인의 놀이시설에 간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학교로 향했지요.

며칠 전부터 녀석은 엄마에게 반복해서 다짐을 받습니다.

장난삼아 따라가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버스에라도 올라탈까 걱정되는지 엄마는 마당 있는 집에 가랍니다.

자기는 친구들과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징징거립니다.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이제 아들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대견합니다.

 

곧 중학교를 가야하는데 일반학교로 진학하지 못 한다면, 지금의 친구들과 나눌 일 년은 값진 시간이 됩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친구들과의 나들이를 챙겨주며 엄마는 가슴이 아려옵니다.

고맙고 미안했던 파랑새반 친구들!

매일 녀석을 태우고 육년 동안 통학한 엄마도 파랑새반 동기동창만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유뽕이가 커가는 것이 덜컥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입학당시 전교생이 백명 넘었는데, 올 해는 70명 남짓이라는 군요.

두 대의 대형버스에 나눠 타도 넉넉한 꼴이 되었습니다.

동네잔치라도 벌이듯 어머니회에서 전교생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덜렁덜렁 빈 가방만 메고 출발한 녀석에게 교문입구에서 한 보퉁이 먹을거리를 담아주십니다.

물 한 방울 준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과일까지 꼼꼼하게 챙긴 손길입니다.

이래저래 유뽕이네 학교가 끝내주게 훌륭한 곳이라고 떠벌이고 싶어집니다.

 

유뽕이가 요즘 관심 갖고 ‘큰 차는 대형!, 작은 차는 소형!’이라며 외치더니,

정말 집채만 한 대형버스 두 대가 교문 앞에 버티고 서 있네요.

배웅삼아 엉거주춤 있는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친구들 속에 묻혀 녀석은 꿈에도 그리던 이동수단인‘대형버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저녁 여섯시나 되어야 돌아온다는데, 엄마는 또 집안에서 안절부절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쩔쩔 매고 있습니다.

옥상에 버섯 말리던 걸 괜히 뒤집어보고, 마당가 계단 아래 미나리 밭도 헤쳐 놓습니다. 보일락 말락 코딱지만 한 잡초를 후벼 파느라 땡볕에 내내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청소기를 돌려놓고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바닥에 걸레질을 해도, 냄비들을 죄다 꺼내놓고 문질러 닦아놓아도 시간이 남습니다.

휴대전화도 없고 전화도 할 줄 모르는 녀석이니 중간에 소식이 올 리 만무이겠지요.

하루가 징그럽게 길고 길기만 합니다.

 

텃밭에 빽빽하게 솟아오른 열무나 솎아 김치라도 해야겠네요.

넓은 광주리에 그득하니 뽑아 채우고 얼마 남지 않은 쪽파도 모조리 털어냈습니다.

살구나무 그늘에 야외용 돗자리 펼치고 김치 거리를 다듬습니다.

그럭저럭 하루가 기울고 있습니다.

삐리리리....., 전화벨 소리.

유뽕이 일행이 홍천휴게소에 도착했다는 담임선생님의 연락입니다.

약 한 시간쯤 후에 학교 도착이라는 군요.

대충 다듬던 푸성귀를 일찍 퇴근한 아빠에게 넘기고 엄마는 유뽕이 마중을 나갑니다.

군대 첫 휴가를 나오는 아들이라도 보러 나가는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머리카락 땀에 젖은 아들이 드디어 빨간색 반티를 입고 그 좋아하는 대형(?)버스에서 내립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는 본 체 만 체 자기반 친구들을 따라 교장선생님 말씀 들으러 조회대 앞으로 달려가네요. 괘씸한 녀석!

미리 넘겨받은 배낭 속을 뒤져보니 간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더니 입맛을 잃었나봅니다.

앞 지퍼를 열어보려는데, 앙증맞은 종이포장이 보입니다.

삐뚤빼뚤 녀석 특유의 글씨체로 써 놓은 내용.

‘엄마꺼!’

집에 돌아와 후줄근해진 옷 벗기고 가방을 정리하려다 모른 척 물어봅니다.

“에이, 유뽕아! 너 엄마 선물도 안 사왔어?”

대답도 없이 뚜벅거리며 걸어오더니 배낭 앞지퍼 열고 종이봉투를 건네주네요.

최대한 호들갑을 떨며 말했지요.

“어머, 어머머! 이게 뭐야?”

“나비예요!”

기념품 코너에서 친구들을 따라한 모양인지, 누군가 시켰던 것인지 휴대폰 줄입니다.

엄마는 모조품 플라스틱 보석 비슷한 분홍나비 한 마리를 휴대전화에 대롱거리도록 달아놓습니다.

 

유뽕이 표현대로 정말 맞는 말입니다.

생전 처음 아들에게 받아본 선물‘엄마꺼! 휴대폰 줄,

부족한 아들이지만, 유뽕이도 평생 ‘엄마꺼!’입니다.

 

엄마꺼 유뽕군은 지금,

저녁밥 먹을 시간인데, 대걸레 들고 마당 수돗가로 나갑니다.

얘긴 즉, 세차를 하겠답니다.

물이 질질 흐르는 걸레를 짜지도 않고 거실 유리창만 몰두해서 닦고 있습니다.

녀석의 머릿속엔 큰 유리창이 버스 창문이라도 되는 가 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녀석이 미웠다 예뻤다 합니다.

어떤 짓을 해도 엄마꺼니까 다 용서해 주렵니다.

 

 

 

 

2011년 5월 25일

소풍 다녀온 유뽕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