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해!
우리 집 달력당번은 언제나 부지런한 유뽕이 차지랍니다.
매달 말일쯤이면 잊지 않고 미리 달력을 척척 넘겨놓습니다.
아빠가 주유소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는 가족들 기념일이 빼곡하게 적혀있지요.
고집스런 유뽕이는 아빠달력 무시하고, 교회달력을 그 위에 겹쳐놓아야 한다며 우겨댑니다.
자기 맘대로 걸어 놓고는 새로운 기념일들을 적습니다.
삼월 달력.
빨간색 굵은 매직으로 숫자 밑에 뭔가 표시한 것이 보입니다.
‘유뽕이 생일’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있네요.
3월 9일인 오늘이 바로 녀석의 생일이랍니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물어봅니다.
“유뽕아! 생일날 뭐 해줄까? 뭐 받고 싶어?”
“선물!”
이제는 생일의 의미를 좀 알까 싶은 맘에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어?? 선물? 그래. 선물로 뭐 해줄까?”
“케이크 사줘요! 초코케이크!”
녀석의 머릿속 생일엔 그저 먹는 것만 최고인가 봅니다.
“아니, 케이크는 외숙모가 보내주셨으니까. 다른 거 갖고 싶은 거 말해봐!”
내심 엄마는 장난감 이름이라도 외쳐주기를 바랐습니다.
“돈가스 먹어요!”
역시 푸짐하고 배부르게 먹어야 하는 것이 생일잔치가 맞기는 하지요.
저녁은 아빠가 한 턱 쏜다고 했으니, 엄마도 뭔가 해주고 싶은데 녀석이 말뜻을 모릅니다.
조르다시피 설명하고 이해를 반복시킨 후에 얻어낸 유뽕군의 요구사항.
“연필 깎기 사줘요!”
선심 쓰듯 내놓는 대답에, 돈 써야하는 엄마가 오히려 고마워하는 꼴입니다.
오늘아침,
덜 깬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유뽕이 곁에 가서 엄마는 힘차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유뽕이, 생일 축하 합니다!”
흡족한지 눈감은 채 입만 씩 웃습니다.
급히 차린 아침상엔 미역국도 없네요.
싫어하는 음식 억지로 먹이느니 좋아하는 것 먹게 하자는 엄마생각이었습니다.
근사한 저녁 외식을 기약하며 교문 앞에서 찐한 뽀뽀를 해주었지요.
녀석을 학교에 보내놓고 커피한잔 끓여 마시며 엄마는 생각에 잠깁니다.
‘그래...., 오늘처럼 쌀쌀한 봄기운이었지!’
유뽕이 낳던 그 날 회상하며 먼 하늘바라기를 해봅니다.
누구네 자식도 그러했겠지만, 참으로 사연 많고 감격스러웠던 지난날들이었습니다.
‘녀석에게 장애가 없었다면...’이라는 물음표 정해놓고 답을 찾으려니 떠오르는 게 없네요.
유뽕이가 장애아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그토록 목이 터져라 여린 풀포기와 코끝에 스치는 바람결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봄이면 향기가 난다고 녀석의 얼굴을 꽃 대궁에 들이대지 않았을 겁니다.
흐르는 물줄기에 발 담그고 시원하다 말해주며, 유뽕이 자맥질 묘기에 감동할 줄도 몰랐을 겁니다.
바스락거리는 떡갈나무 잎 무더기를 마구 밟으며 소리에 귀 모으는 연습도 필요 없었을 겁니다. 마른나무 등걸마다 손 비비며 이것이 거친 느낌이라고 입에 침 마르도록 수다 떨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차갑다, 춥다!’ 느낌의 입김이 온통 얼어 하얗게 부서지던 겨울 날.
계절변화를 온 몸으로만 배워야 하는 수고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녀석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가슴 도려내도록 아팠던 부부간 위기도 참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오직 엄마만의 삶을 챙기면 그만이었을 테니까요.
아들의 평생도우미가 되기 위해 꾸역꾸역 건강에 좋은 음식만 찾아먹지도 않았을 겁니다.
자식보다 오래 살겠다는 헛된 욕심도 부려보게 만든 유뽕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몇 천만번을 되돌려 머리 굴려 봐도,
녀석이 장애아로 태어난 것조차 엄마에겐 축복입니다.
아름다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행복의 기준이 어떤 방향인지 제대로 가르쳐준 유뽕이니까요.
이렇게 귀한 아드님 생일에 선물로 겨우 연필깎기라니.
뭔가 근사한 이벤트라도 낮 동안 계획해야겠습니다.
오목조목 잘 생긴 하나님 작품.
내 아들 유뽕이가 있기에 마침내 엄마 인생이 완성작입니다.
온전히 감사한 하루입니다.
유뽕아!
생일 축하해.
고맙고, 사랑한다!
2011년 3월 9일
아들 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