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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70 - 유뽕이의 겨울나기


BY 박예천 2011-03-03

    

     유뽕이의 겨울나기

 

 

 

지난겨울은 매끼마다 가족식사 챙겼던 엄마만큼이나 유뽕이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아빠는 학교 보충수업으로 바빠서 놀아주지 못했으니까요.

녀석에겐 따로 대화나 마음 나눌 친구가 없기에 길고 긴 방학이 꽤나 무료했을 겁니다.

엄마는 녀석의 방패막이가 됩니다.

잦은 투정과 떼쓰는 일로 성가시게 해도 다 받아줍니다.

 

“엄마, 버스타고 분당에 가요!”

“오늘은 우리별천문대 가고, 하남시랑 김포에도 갈 거야!”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친척집 이름과 행선지가 다 동원됩니다.

잠자리에 들며 중얼중얼,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징징 거립니다.

딴엔 방학인데 아무 곳에도 놀러가지 않으니 이상했던 것이지요.

알아듣게 설명하느라 엄마는 진땀 흘리며 간신히 녀석의 언어로 이어붙이기를 합니다.

중간에 내용은 다 빼먹고, 갈 수 없다는 결론에만 눈망울을 적시며 서럽게 웁니다.

덩치는 산만해지고 양 볼에 멍게마냥 여드름도 몇 개 솟아났건만, 하는 짓과 생각크기는 만날 애기랍니다.

원하는 대로 나들이를 떠나지 않자 먹는 것이나 장난감 사달라고 조릅니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먹을거리는 다 구색 맞춰 사오랍니다.

“보들보들 치즈라면 다섯 개 사자!, 소방차랑 연두색 버스 택배아저씨가 가져올 거야!”

장난감자동차도 종류별로 말하고, 갖가지 동물인형까지 요구합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다 들어주자니 주머니사정이 빤한지라 답답한 한숨만 나왔지요.

 

어쩌다 하늘이 구멍 난 듯 폭설이 쏟아지는 날이면 오히려 다행스럽답니다.

앞마당과 옥상을 돌아다니며 녀석이 놀만한 장소가 제공되니까요.

마당 있는 집에 이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소복하게 싸인 눈을 털어내고 뭉쳐보며 유뽕이는 집안으로 들어올 줄 모릅니다.

철제 난간은 즉석 기찻길이 되어 손으로 만든 눈뭉치 기차가 칙칙폭폭 달려가지요.

털 장화가 질퍽하게 젖고 궁둥이는 축축해져도 좋아라 뒹굴며 놉니다.

 

휴일인 삼월 첫날.

선뽕이 누나의 즉석제안으로 엄마도 이글루 만들기에 동참했습니다.

커다란 연두색 눈삽은 엄마 장비고, 누나는 앙증맞은 모종삽으로 윤곽을 다듬어 갑니다.

눈을 퍼 담아 한곳에 높은 산으로 쌓았습니다.

정밀한 부분은 손으로 긁고 두드리기를 몇 분, 핑구네 집처럼 동그란 모양이 점점 형태를 갖춰갑니다.

강아지 견우도 한 몫 거들겠다고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네요.

아빠는 땀 뻘뻘 가족들 틈에서 베짱이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이쪽 봐라, 여기 좀 서봐라 등등. 사진만 찍습니다.


   (이글루 앞 눈사람 몸을 둥글게 다듬는 누나와 엄마입니다^^

    뒷쪽에 영랑이도 엑스트라로 출연했네요....ㅎㅎㅎ)

 

와! 드디어 완성.

훌륭한 집 한 채가 마당 중앙에 세워졌습니다.

유뽕이는 엉금거리며 기어들어가 앉아보고, 엄마와 누나도 손가락 브이자로 세워 사진사 아빠의 주문사항을 들어줍니다.

 

6학년 첫날인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유뽕이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마당으로 달려갑니다.

이글루 뒤쪽으로 달려가더니 야금야금 모종삽으로 구멍을 냅니다.

근사한 눈 터널이 유뽕이 손에서 만들어졌네요.

녀석은 납작 엎드려 터널 속을 기어 다닙니다.


            (눈으로 만든 집 안에 들어가 유뽕이 먼저 찰칵!!!)

 

긴긴 겨울 몸 굵어진 만큼 유뽕이 생각도 꼭꼭 여물었으면 하는 맘으로......,

엄마는 마당중앙 눈 터널과 인간자동차(?)를 잔잔히 쳐다봅니다.

 

 

 

2011년 3월 2일

마당에 만들어 놓은 눈 터널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