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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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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69 - 똥 멋


BY 박예천 2010-10-05

 

         똥 멋

 

 

 

유뽕이가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동안 티브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윤지후머리를 하고 다녔지요.

귀 옆으로 내려오고 뒷머리도 목을 덮는 사자 갈기였습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추석 전 미용실가서 다시 멋있게 다듬었지요.

어제 낮부터 엄마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주문합니다.

“엄마! 면도칼로 여기 윙 밀어요!”

놀란 엄마는 녀석이 면도를 하겠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일곱 살 때인가, 화장실에 꽂혀있던 아빠 면도칼로 턱 밑을 쓱쓱 밀다 피 흘리곤 했거든요.

진짜 남자가 되고 싶어 면도부터 해보겠다는 요구사항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뭐라고? 면도 하겠다고?”

다시 되물어 봅니다.

“아니요. 여기요! 거칠다 할 거예요.”

감각치료실에서 구둣솔을 손으로 만지며 ‘거친 느낌’ 배웠던 기억 되살려 말합니다.

뒤통수를 가리키며 까슬까슬 짧게 밀고 싶다는 것이지요.

 

유뽕이 누나는 제발 동생한테 촌스러운 머리 좀 해주지 말라 합니다.

귀가 다 보이고 짧은 머리는 싫다며, 곧 중학생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하니 초등생 시절엔 긴 머리 휘날리게 해주랍니다.

누나가 원하는 대로 유뽕이는 일년 넘게 긴 머리 소년(?)이었지요.

거울보고 물 발라가며 귀 옆으로 머리카락 넘길 정도로 온갖 똥 멋을 다 부리고 다녔습니다.

잠결에도 엄마가 머리 매만지면, 자기 손으로 더듬더듬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더군요.

그랬던 그가.

변심했습니다. 바리캉 윙윙 밀어 달랍니다.

그냥 해보는 말이겠거니 무시해버렸습니다.

 

오늘 학교공부가 끝나고 교문 나서며 엄마를 보자마자 머리 깎으러 가잡니다.

“머리 윙 하러 갈 거예요!”

“어? 유뽕이 어떤 머리 할 건데? 윙~ 다 밀어버린 대머리?”

장난스런 엄마 말에 대머리가 뭔지도 모르고 대답하는 유뽕이.

“네에. 대머리 할 거예요!”

“외할아버지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가 대머리인데, 그거 할 거야?”

외할아버지라는 말에 깜짝 놀라 정색을 합니다.

“아니, 아니야! 대머리 안 해요.”

이제야 짧은 머리라는 걸 알아차린 척 하는 엄마입니다.

“그래. 미술학원 끝나고 미용실 가자!”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단골 미용실에 들러 원하는 머리모양을 말하니 안타까운 표정 짓는 미용사.

애써 기른 머리를 단번에 밀어버린다니 섭섭했나 봅니다.

미용사는 의자에 앉은 유뽕이에게 재확인 합니다.

“너, 이젠 머리 이렇게 귀 뒤로 넘길 수 없어. 그래도 깎을 거야?”

“네에...., 깎을 래요!”

드디어 녀석의 삭발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짧아진 머리가 조금은 어색한지 손바닥으로 자꾸 쓰다듬네요.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치즈스파게티를 만듭니다.

얼마 전부터 유뽕이가 해달라고 노래를 불렀거든요.

중간고사에서 2등한 누나도 축하해줄 겸 지글지글 프라이팬을 렌지에 올립니다.

잠깐사이 유뽕이가 사라졌는가싶더니 아빠 방에서 뭔가 들고 나옵니다.

시력에 상관없는 멋쟁이 안경을 잘생긴 코 위에 올리고 갖은 폼 다 잡네요.

한 때 멋 좀 부리느라 아빠가 꼈던 안경입니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가며 얼굴표정도 만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온 동네 여자들(?)에게 넘치도록 매너 좋은 아빠를 닮으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부전자전만 같네요.

“와! 유뽕이 머리는 대머리 아저씨 같네. 그치?”

놀리는 엄마 말에 징징거리며 대답합니다.

“아니야! 이건 형아 머리잖아. 형아 될 거야!”

자신은 형아가 될 거라며 자신감에 들뜬 태도를 보입니다.

녀석에게 여자 친구라도 생긴 것 아닐까요?

저녁 내내 거울 앞에서 똥 멋 부리는 유뽕이를,

누가 좀 말려줘요!

 

헌 이도 빼버리고 오늘은 낡은 머리칼도 깎았습니다.

좀 전에 형아 이가 나올 거라며 치카푸카 이도 닦고 나옵니다.

갑자기 의젓해진 유뽕이 모습이 어쩐지 낯설기만 한 밤입니다.

가슴 가득 뿌듯함이 밀려오네요.

 

 

 

 

2010년 10월 5일

똥 멋에 빠져 있는 아들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