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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68 - 새 이가 나올 거예요.


BY 박예천 2010-10-05

 

      새 이가 나올 거예요.

 

 

학교가 끝나고 인지치료실 가는 월요일 오후.

차창을 열면 깊어진 가을바람이 코끝으로 들어옵니다.

길옆에 이어진 밭들마다 콩꼬투리가 여물고 한 아름 포기 안은 배추들도 보입니다.

엄마는 차들이 한가한 도로를 달리며 우리 집 텃밭에 커가는 배추, 무의 크기와 비교하고 있답니다.

새로 생긴 임대아파트 단지를 지나칠 때 유뽕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네요.

멈춰 서서 녀석이 원하는 것으로 골라주었습니다.

와플 모양인데 속에 아이스크림이 채워진 것이었어요.

조수석에 앉아 한 입씩 깨물어 먹고 있습니다.

선생님 댁 아파트 주차장입구쯤 왔을 때입니다.

오물거리던 입속에서 뭔가 집어내더니 기어 앞부분 통에 툭 던집니다.

무슨 작은 돌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지요.

먹기 싫은 캔디가 들어있던 것일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었습니다.

차가 멈추면 확인해봐야지 했지요.

조금 더 가다가 이번엔 유뽕이가 뭔가를 달라고 말합니다.

“엄마! 휴지 주세요!”

운전 중이라 멈추기는 그렇고 왼쪽 문 사물함에 들어있던 휴지 몇 장을 꺼내 주었습니다.

입가를 닦으려는 줄 알았지요.

뭉쳐든 휴지를 입 안으로 넣고 꾹 누릅니다.

잠시 후 내려놓는 것을 보니 피가 묻어있습니다.

아하! 아이스크림 먹다 이가 빠진 모양입니다.

 

주차장에 차 세워놓고 좀 전에 던져놓은 유뽕이의 툭! 소리의 원인을 찾아봅니다.

역시나 어금니 한 개였습니다.

“어머! 유뽕이 이가 또 빠졌네!”

엄마는 기쁜 마음에 던진 말인데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앞 쪽만 향하고 중얼거립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이가 빠져요!”

제 딴에는 이가 썩어서 빠졌다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당황해하는 얼굴입니다.

“괜찮아. 새 이가 나올 거야!”라고 안심을 시켜줘도 마음 놓지 못합니다.

빠진 이를 다시 붙이라고 합니다.

입속으로 넣는 시늉을 하면서.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엄마가 묘안을 짜냈지요.

“유뽕아! 이건 오래 되어서 냄새나거든. 자 맡아봐! 그리고 다시 붙일 수가 없어.”

녀석에 코끝에 빠진 어금니를 들이밀었습니다.

정말 비유상하는 냄새가 났을까요.

다짐하듯 다음 말을 합니다.

“깨끗한 이가 될 거예요!”

그 대답이 우스워 엄마는 차 안에서 깔깔 웃었습니다.

선생님 댁에 들여보내며 귓속말로 알려줍니다.

“유뽕아! 선생님 집에 화장실 있지? 거기 가서 컵에 물 받고 가글해? 그럼 피 안 나올 거야.”

치료실로 들여보내놓고 엄마는 읽던 책을 펼치며 시간을 보냈지요.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녀석은 어금니 사라진 빈자리에 혀를 밀어 넣곤 합니다.

많이 허전했나 봅니다.

자신의 큰 부주의로 이가 빠졌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는지 운전 중인 엄마 옆얼굴 쳐다보며 계속 같은 말만 합니다.

“깨끗한 이 될 거야!”

평소에 이를 닦으라고 시키면 짜증내거나 싫다고 소리치던 유뽕입니다.

뭔가 새로운 결의에 찬 얼굴이 됩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깨끗하게 닦아야 돼요!”

치카푸카 거울보고 스스로 이를 닦습니다.

경험만큼 소중한 가르침은 없네요.

 

어금니 빠졌던 굵직한 사건(?)있던 하루가 접히고 깊은 밤입니다.

일기도 잘 쓰고 잠자리에 들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또 말합니다.

옆에 누운 엄마가 들리게 또박또박 알려줍니다.

“엄마! 새 이가 나올 거야!”

그렇다고, 넌 이제 진짜 형아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아픔으로 얼룩진 긴 어둠의 날들도 그래서 견딜 만 한 것이라는 말은,

어려워 할 것 같아 속으로만 알려주었지요.

새 이가 나오듯,

새 날도 오는 법이라고 말이지요.

 

 

 

2010년 10월 5일.

어금니 빠진 아들의 새 이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