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년 12월 9일 (목)
아들아!
오늘로 네가 태어난 지 9개월이 된다.
정말 모든 것이 꿈만 같구나.
네가 생긴 날부터 오늘이 있기까지가
아직도 내겐 신기하고 벅찬 날들이다.
쌔근거리고 옆에서 자고 있는 널 본다.
등을 돌리고 자는 네 어깨가 듬직하다.
얼마나 감사한지.
사내아이답게 씩씩하고 단단하다.
아빠는 어제 너에게 ‘악동’이라 했다.
제법 말썽을 부리는 네가 대견한가보다.
아빠방의 물건들을 마구 던지고 찢고 한다.
탐색하느라 방마다 헤매고 다닌다.
크게 소리치기도 하고.
아빠 컴퓨터를 켜놓으면 좋아라 그 방으로 가서
장난거리를 찾는다.
디스켓을 뽑고 종이를 찢고 한다.
너는 이불을 덮지 않고 잔다.
추울까봐 덮어주면 발로 차버리고 잔다.
데굴데굴 구르며 어른처럼 잔다.
이렇게 잘 자면 키도 쑥쑥 크겠지.
키가 자라듯 지혜도 커다오.
아빠가 늦는구나.
회식이 있다던데.
전화도 되지 않는다.
밤 열두시 반이 다 되어간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아빠가 안와서 그런가.
잘 자거라 아가야.
* 99년 12월 15일 (수)
20세기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오늘 유뽕이 위에 이가 나온 걸 처음으로 봤다.
왼쪽 이부터 보였다.
엄마처럼 비뚤게 나오면 안 된다.
과자를 주면 이로 아삭 깨물어 먹기도 한다.
짜~~식!
아랫니는 4개월 때 나왔는데......
무척 귀엽다.
아직 배를 들고 기어 다니지 못한다.
예비군 훈련 낮은 포복 자세다.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꼭 너 같은 아이를 낳게 되면 알거야.
* 99년 12월 20일 (월)
속초는 춥고 외롭구나.
엄마는 자꾸 눈물이 난다.
바람이 차게 불어 슬프고,
네가 너무 예쁘게 커서 눈물겹다.
찬바람이 이 동네 물기를 다 마르게 한다.
그래서 너는 밤에 잠을 못자는 구나.
코가 막혀 우느라 깨어난다.
엄마도 너를 안고 달래느라 함께 못 잔다.
유뽕아!
건강하렴.
네가 없었으면,
난 지금 속초에 있지 못했을 거야.
너로 인해 버티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