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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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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25)


BY 박예천 2010-09-12

 

* 99년 2월 13일 (토) - 날씨 : 맑음

 

어제는 정말 참기 힘든 하루였단다.

너 때문이라는 말을 하기 싫지만, 사실은 너로 인해 몸이 말이 아니게 아픈 날이었다.

오전부터 아파오던 오른쪽 아랫배가 밤새도록 오늘 아침까지 계속해서 걷지도 못하도록 쑤셔왔다.

지금에서야 조금 가라앉아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지.

 

아가야!

몸을 뒤척일 수도 없게 배가 아프더구나.

그래서 나는 자꾸 너에게 말했지.

도와 달라고 말이야.

속에서 네가 움직여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게 사정을 하게 되더구나.

내 말이 어제는 들리지 않았는지 아픔은 그칠 줄 모르더라.

 

언제나 여기에 글을 적으며 내가 힘들었다느니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며,

마치 너에게 다시한번 상기시키려는 나의 의도적인 바람이 섞이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본다.

그러나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나중에 커서 알게 되기를 바란다.

네가 그저 쉽게 마구 자라는 잡풀처럼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빠와 엄마의 철저한 계획아래 네가 생겼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하게 주신 우리 가정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엄마가 열 달 동안 너를 몸속에 넣고 다니며 힘들었던 이야기며,

낳을 때의 엄청난 통증까지도 네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나중에 커서 이해하게 될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적어놓은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엄마는 알게 되겠지.

 

아가야!

비록, 몸이 무거워 행동하거나 일하기 힘들더라도 제발 아픔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왼쪽 손목은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는데 엄마의 일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은 바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자꾸 신경질이 늘고 우울증에 빠지려 한다.

원래 성격이 늘어지거나 하는 편이 아니라서 할 일이 있으면 바로 하고 싶거든.

그런데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편안한 맘을 지니고 싶지만 어른들도 계시고 마음대로 쉴 수도 없는 현실.

누워있지 말고 자꾸 운동을 하라는 할머니 말씀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운동을 하려해도 몸이 따라줘야 하지.

속상하게 생각되기도 하더구나.

늘 누워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움직이거나하면 배가 뭉치고 딱딱해져서 불편하면 편안하게 잠시 누워있는 것인데.

그렇게 있으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는데도, 너의 할머니는 그럴수록 움직이란다.

의사의 말은 다 이론이고 실제 경험한 사람 말이 맞는다는구나.

내가 딸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역시 며느리의 자리가 그렇게 서러운 자리라는 생각을 하니 참 처량한 기분마저 든다.

같은 여자인데.

당신도 시집와서 똑같은 처지를 경험했을 텐데. 어쩜 나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말이다.

 

아가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너의 할머니에 대한 선입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너에게는 아주 잘해주실 하나뿐인 할머니가 되실 거야.

단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적다가 잠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오고, 지금은 남편을 따라 필리핀에 있는 친구.몸이 아파 수술을 하느라 잠시 귀국하여 오늘 퇴원을 한다는 구나.

그 친구가 너의 안부를 묻는다.

아기가 건강할 것과 오른쪽 배가 아프다는 말에,

아들일 것이라는 우스운 말을 한다.

 

지금 거실에서 할머니는 화투장을 길게 늘어놓고 무엇인가를 하신다.

운수라도 보시려는 걸까.

 

아가야.........

이제 그만 적기로 하자.

오늘은 여러 말이 길었지?

부디 내가 좀 피곤하거나 아프더라도 넌 내속에서 씩씩하게 자라주기 바란다.

알았지?

그래서 우리 서로 눈빛을 마주 대하며 손 꼭 잡아 보자구나.

 

오늘밤은 많이 아프게 하지 말아다오.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