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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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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5)


BY 박예천 2010-09-10

 

* 98년 9월 2일 (수) - 날씨: 맑음 (가을 냄새가 짙어진 날)

 

 

아가야!

어제 너의 아빠랑 의견 다툼이 있었단다.

엄마가 덕이 부족한 것인지 아빠는 화가 났구나.

화가 나면 말이 없고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너의 아빠를 볼 때면

엄마는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단다.

할머니가 안 계신 이층 방에서,

아침엔 뒤꼍 닭장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죽여 울었다.

 

너를 위해 밝고 너그러운 생각만으로 살려 하는데도,

뜻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엄마가 어제아침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어.

사과도 하고 편지도 적었는데,

아빠는 침묵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으니 참 난감하다.

 

 

아가야!

너는 엄마의 그런 우울한 생각 속에서도 건강히 자라고 있으리라 믿는다.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슬퍼졌지만,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스스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려 애썼단다.

밥도 먹기 싫어 굶으려 했지만 나 때문에 너 까지 배고프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모성의 시작인가보다.

이렇게 엄마는 너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며 산다.

예전의 나의 엄마가 나를 가질 때부터 느꼈던 그 모든 마음들이 되풀이되고 있겠지.

나를 낳으신 내 어머니가 그립고 위대하게 여겨진다.

 

아침에 울어댔던 눈가가 따끔거린다.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리고 내 남편이기 이전에 너의 아빠인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해야지.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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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일 오후에.

 

아까 저녁에 말이야.

바깥에 있는 수돗가를 청소하느라 쪼그리고 앉아 있었거든.

가끔 나는 네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어.

네가 생기기 전에 가뿐했던 몸인 것으로 착각을 해서 무리를 할 적도 많지.

앉아 있거나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급한 상황이라 마구 뛴다거나.......그래.

수돗물을 잠그고 또 그렇게 힘주며 일어난 거야.

그 순간이었어.

왼쪽 아랫배쯤이었을까?

뭔가 뭉클거리는 기분이 들었단다.

벌써 네가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겁이 나기도 했고, 너한테 많이 미안해졌어.

무리를 할 때마다 너한테 영향이 가는 걸 잊었나봐.

그래서 네가 그렇게 느껴주기 위해 몸부림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

 

오늘은 많이 졸리다.

어제 세 시간 밖에 잠들지 못했단다.

네 아빠가 화가 나 있어서 신경을 잔뜩 쓰느라 그랬나보다.

아가야......, 이제 자러 갈 거야.

늘 함께 호흡하듯이 나는 너와 이야기한단다.

네가 움직이며 몸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드 듣고 있지.

꿈속에서라도 만나보고 싶다.

 

안녕....., 오늘밤엔 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