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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2,080

유뽕이 시리즈 65 - 버스나들이


BY 박예천 2010-09-09

 

        버스나들이

 

 

 

시내버스 번호와 행선지를 정확히 외우는 유뽕이.

가끔 헷갈리는 경우 녀석에게 물어보면 단박에 알려줍니다.

“유뽕아! 7번은 어디가지?”

“7번! 설악산에 가는 버스!”

“음.....,그럼 9번은?”

“9번! 양양시장에 가는 버스!”

오히려 버스 번호를 물어보던 엄마가 얼른 생각나는 게 없어 망설입니다.

“우와! 잘 아네. 또 몇 번 있더라. 맞다! 3번은 어디가지?”

“3번! 학교도 가고, H콘도에 가는 버스!”

정말 대단한 기억력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엄마! 99번은 어디가요?”

행선지를 모르면 엄마에게 물어오기도 합니다.

덕분에 엄마는 일부러 버스정류장마다 인쇄된 지명을 메모하거나 외우고 다닙니다.

녀석이 물어올 때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스레 답해주기 위해서지요.

“어.....99번? 그건 시청에 가지!”

“55번은 어디로 가요?”

“중앙시장!”

“505번 버스는 어디로 가요?”

“ㅇㅇ아파트 가는 버스야!”

이쯤 되면 끝났을까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또 물어보네요.

“88번은 어디 가는 버스예요?”

요즘 따라 머릿속이 가물가물 건망증도 심해가는 엄마에게 물어오는 유뽕이.

모른다고 잡아떼면 또 징징거리며 ‘알어! 알어!’ 소리칠 것이 분명합니다.

할 수 없이 이 고장 토박이 아줌마에게 전화해서 알아냈지요.

“유뽕아! 88번은 S아파트에 가는 버스래!”

정말 대단하죠?

아직 시골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는 버스번호는 물어오지 않아 다행인데,

조금 전에도 눈빛을 빛내더니 툭 던지는 한마디.

“엄마! 33-1번은 어디 가는 버스예요?”

모릅니다. 엄마도 그건 모른답니다.

대답해줄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되묻기 작전으로 대신했습니다.

“정말 그건 어디 가는 버스일까?”

이쯤해서 녀석의 집요한 질문은 피할 수 있었지만, 당장 내일부터가 문제입니다.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 물어올 테니 어떻게 하든 알아내야 한답니다.

 

벌서 일주일 전부터 엄마의 귓속에 외쳐왔지요.

“3번 버스 타고 H콘도에 가요!”

이미 설악산도, 시청도, 양양시장도 버스번호와 행선지 확인하며 직접 견학(?)했습니다.

이제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요구합니다.

날짜까지 정해주며 꼭 가야한답니다.

“엄마! 28일 토요일, 3번 버스 타는 날!”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기도를 좔좔 읊어댑니다.

“하나님!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도와주세요. 내일은 3번 버스타고 H콘도 가요!”

마치 엄마가 들으라는 듯 또박또박 외우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인데도 일찍 일어나 부풀어있습니다.

평소 아침엔 달래며 엄포 놓아도 꾀만 부리더니 오늘은 스스로 다 합니다.

치카푸카 이도 잘 닦고, 엉터리 고양이세수로 얼굴 주변만 간신히 닦았네요.

척척 옷 챙겨 입고 밥 먹은 후 큰소리로 인사까지 하다니요.

“잘 먹었습니다!”

 

아침밥 먹고 유뽕이와 3번버스 타러 갑니다.

건방진 녀석은 보도를 걸어가면서 역시나 엄마 팔짱 끼거나 어깨에 손 올립니다.

버스정류소 의자에 앉아서도 싱글벙글 좋아 표정이 함박웃음입니다.

엄마를 마주보고 앉아 양손 잡고는 아이처럼 말합니다.

“엄마! 쎄쎄쎄 해요.”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한 듯 쳐다봐도 엄마와 유뽕이는 철부지 아이처럼 푸른 하늘 은하수, 아침바람 찬바람에 신나게 합니다.

“유뽕이는 버스비 얼마 내는 거지?”

“오백 원이요!”

벌써 여러 번 타서인지 금방 알고 있습니다.

부릉부릉 저만치서 기다리던 3번 버스가 옵니다.

알아서 척척 요금 통에 잘 집어넣고 자리 찾아 앉더니 창밖을 내다봅니다.

엄마 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들이 넘쳐나게 있네요.

종점에 내려 길게 이어진 가로수 길을 걸었습니다.

오색 단풍이 들면 또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엄마는 속으로만 했습니다.

다음엔 녀석 말고 다른 남자(?)랑 왔으면 하거든요.

 

집에 돌아와 유뽕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랑 쫄면을 해먹었습니다.

바쁜 하루가 지나고 깊은 밤입니다.

엄마는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지는데, 유뽕이 녀석 인터넷 검색중입니다.

버스이미지 띄워놓고 또 놀러갈 계획 중인가 봅니다.

엄마 얼굴 쳐다보더니 발표하는 소리.

“엄마! 1번 버스는 어디가요?”

 

으악~!

이제 버스는 그만 타고 싶은데, 어쩌지요?

 

 

 

 

2010년 8월 28일

버스타기 좋아하는 얄미운 유뽕이 고발하다.

 

 

1개
날개. 2010.08.30 16.05 신고
예전에 본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레인맨"이 생각납니다.
서번트 증후군이었던 레이먼의 놀라운 숫자 기억력....

너무나 순수한 유뽕이....그리고 엄마의 일상을 잔잔하게 적은 글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
예천님.....감사합니다...이렇게 가슴이 맑아지는 글을 읽게 해 주셔서요....^^*
  
  예천 2010.08.30 20.38 수정 삭제 신고
날개님!
반갑습니다. 혹시 에세이방에서 뵙던 분 맞나요?
외국에 사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레인맨 저도 봤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도 훌륭했지요.
울 아들은 발달장애아 입니다.

녀석은 순수한데 엄마인 제가 때가 많이 끼었는지,
가끔 지쳐서 징징 거려요...ㅎㅎㅎ
노력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답니다.
그런 날은....땅 속으로 꺼지거나 동굴에 숨고 싶어지기도 해요.
대단한 모성도 못되는 사람이 글속에서만 잘난척을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댓글 주신 날개님께 제가 더 감사합니다.
실은......오늘, 많이 울고 싶어지는 날이라서요.....^^
가슴이 따뜻해졌다는 말씀에....큰 힘이 됩니다.  
선물 2010.08.29 10.37 신고
우리의 대단한 유뽕군에게 좀 더 욕심내보라고 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부담이 되고 짐이 되어 지친다면 안되겠지요. 유뽕이에겐 정말 무궁무진 재능과 가능성이 있어보여요. 편안하게 욕심낼 수 있다면 예천님이 많이 연구하시는 것도 좋겠지요. 유뽕이의 계속되는 멋진 성장을 지켜보겠습니다.  
  예천 2010.08.29 20.35 수정 삭제 신고
아휴....그러니까 그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인데도 속을 알기 힘들더라구요...ㅠㅠ
다른 분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저는 좀 더 어렵네요.
우선 의사소통이 안 되니 그렇겠지요.
기도 하면서...기다려 봅니다. 주실 것을 기대 하면서 말이지요...ㅎ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그대향기 2010.08.29 07.22 신고
집중력이 대단한 유뽕군.ㅎㅎㅎ
뭔가 큰 일을 해 낼 것 같은 기대감??
스스로 우쭐해 할만한 뭔가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뭘까요?
유뽕이가 신나하고 파고들만한 ......
유뽕이가 즐거워 하면서도 잘 해 낼 프로젝트를 하나 주세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집중하고 잘 할걸요?
역발상을 이용하자는 거지요.
유뽕이가 해 낼만한 사건들을 .....
세계사 공부나 우리나라 국사 연대기 같은거는 너무 어려울까요?
유뽕이의 집중력이면 충분히 해 낼 것도 같은데....
엄마의 훌륭한 지도법도 있으시고.ㅎㅎㅎ

  
  예천 2010.08.29 20.32 수정 삭제 신고
하긴 그것이 엄마의 몫입니다.
녀석의 잠재력을 일깨워 주는 것도,
재능을 찾아내어 잘 키워 주는 것도 엄마가 할 일인데....
아직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없네요.
이것저것 시켜보고는 있는데 말이지요.
저는 결코 훌륭한 엄마가 못 됩니다.
영화 말아톤이나, 수영선수 진호네 엄마같은 억척스럽지 못할 듯 해요.
시간이 더 가기전에 발견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오월 2010.08.28 23.49 신고
만약에 만약에 저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무척 부러웠을
예천님의 글들~~~~
그래도 유뽕이로 인해 게으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어요
엄마를 살살 꾀를 부려 조종? 하는데요 ㅎㅎ
꾀가 말짱한 유뽕이~~~~  
  예천 2010.08.29 00.16 수정 삭제 신고
녀석이 캠프라도 가느라
일박하는 날은.....집안이 텅 빈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요...ㅎㅎㅎ
참 모순이죠?
힘들다 힘들다 엄살 피우면서도,
막상 녀석이 없는 날을 못 견뎌 하는....ㅎㅎㅎ
늦은 시간 오월님도 잠 못 이루시는 군요.
저도 이리저리 배회(?)하며 가을을 베고 눕다 엎어지다
빈대떡만 부쳐댄답니다..ㅋㅋㅋ
유뽕인 옆에서 쿨쿨 난리가 났습니다.
버스꿈을 꾸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