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맹견사육허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69

유뽕이 시리즈 64 - 어깨동무 내 동무


BY 박예천 2010-09-09

   

           어깨동무 내 동무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개학한지 사흘째, 유뽕이는 학교에 갑니다.

아침이면 날마다 놀던 방학기운이 남아 투정도 부려보고 게으름을 피웁니다.

그래도 학교는 반드시 가야하는 곳으로 알고 있어 다행입니다.

거세진 빗줄기 피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갑니다.

군데군데 고인 물웅덩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 도장 한 번씩 찍어주는 유뽕이.

옷이 젖든지, 신발 안이 축축하든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습니다.

특유의 팔자걸음 터벅거리며 교실로 들어갔지요.

 

일주일 중 수요일인 오늘은 녀석이 제일 바쁜 날이랍니다.

아침수업을 시작으로 네 곳이나 들락날락 해야 하니까요.

학교- 인지치료실- 미술학원- 피아노.

4교시뿐인 수업 끝날 즈음, 시간에 맞춰 교문 앞으로 갑니다.

넓고 통통한 엄마 몸 부피를 가려줄 파라솔만한 우산 하나.

유뽕이도 또 하나.

일층 현관 앞에서 만난 유뽕이는 엄마를 본체만체 합니다.

만날 보는 얼굴이라 그럴까요.

녀석에게 우산 하나 건네고 질퍽한 운동장 가운데를 걸어갑니다.

“유뽕아! 엄마 뒤에서 발자국 보고 잘 따라와야 돼. 발 첨벙첨벙하면 양말 젖어요. 알았지?”

“알았어요. 엄마!”

언제나 대답만큼은 똑똑하고 크게 잘 합니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지나가는 버스 보랴, 중앙현관 쪽에 번쩍거리는 전광게시판 보랴 바쁘네요.

대답은 엄마 뒤 꼭지에 달아놓고 몸은 저만치 엉뚱한 방향으로 걷습니다.

꼭 옆으로 걷는 꽃게가족 같습니다.

 

우와! 오늘은 정말 비가 많이 옵니다.

달리는 엄마차 안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던 설악산 울산바위도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좌우로 손사래 치는 와이퍼가 재미있는지 까르륵 웃기도 하고 제 맘대로 손잡이 작동시켜 빠르기를 조절합니다.

인지치료실 선생님 댁 앞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엄마는 커다란 우산 펼쳐들었지요.

어쩐지 오늘은 우산 한 개 같이 쓰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아이처럼 엄마가 더 신나게 빗방울만큼 재잘거렸습니다.

“유뽕아! 비가 주룩주룩 오네. 정말 많이 온다. 그치?”

대답대신 아들은 엄마 곁으로 다가와 말없이 어깨에 손을 올립니다.

누가 시킨 것 마냥 어깨동무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키가 간장에 졸아붙듯 작아진 걸까요?

올여름 폭염더위에 물기 말라 쪼그라들었을까요?

유뽕이 어깨가 엄마랑 나란히 있습니다.

연인처럼 녀석의 허리를 휘감고 나긋하게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습니다.

 

눈높이 맞추며 이야기 하기위해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 엄마가 힘들까봐,

봄 햇살 쬐고 여름 빗소리 들으며 외할머니 댁 옥수수마냥 키가 컸습니다.

작아진 실내화를 사러 갔다가 엄마는 또 놀라자빠질 뻔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엄마발바닥 마주대면 남는 부분 없이 꼭 들어맞았었는데,

240미리도 작아져 발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방학동안 유뽕이가 컸습니다.

구슬땀 턱 밑에 매달고 여름손님들 치르느라 눈길 줄 틈 없었는데,

녀석 혼자 쑥쑥 키 높이 자랐습니다.

 

밤에 잠들기 전 기도하기를.

아들의 키가 자라듯 생각깊이도 같이 커 주었으면 했지요.

전부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속내도 잘 여물어 갈 것이라 믿으며.

솔솔 가을바람 나부끼는 그날이 오면,

엄마는 아들과의 멋진 데이트를 꿈꾸고 있답니다.

어깨위로 척 두른 녀석의 팔을 부여잡은 채 설악의 단풍든 길로 갈 것입니다.

비선대로 갈 것인지 흔들바위 세차게 밀다 올 것인지 유뽕이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일입니다.

어깨동무 내 동무 함께 갈 벗이 있음에,

살아갈 의미도 걸어갈 이야기도 생겨 줍니다.

 

지금 어깨동무 녀석은 뭐하고 있냐고요?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엄마 옆에서 연필 꾹꾹 눌러가며 일기 쓰고 있답니다.

3번 버스 타고 H콘도에 가고 싶다고 맨 끝줄에 써 놓았네요.

 

백날 천 날 놀러 다니고만 싶은 유뽕이.

함께 갈 어깨동무들, 버스 타러 오세요!

우리 가을맞이 하러 갑시다.

내리는 빗속에 가을도 쑥쑥 커가겠지요?

 

 

 

2010년 8월 25일

방학동안 키 큰 유뽕이 느끼던 날에.

 

0개
그대향기 2010.08.28 19.29 신고
자랐구만요..ㅎㅎㅎㅎ
세월을 공짜로 보내진 않을 겁니다.
엄마 친구로 엄마의 든든한 남자로 자라주는 유뽕청년.
캬~~~~
멋진 유뽕.  
  박예천 2010.08.28 21.57 수정 삭제 신고
네에...그 청년이 아주 저를 볶아 먹을라구 하네요..ㅎㅎㅎ
힘이 넘쳐야 견딜만큼요.
아자아자~~~~내 남자친구는 열 두살이당....ㅋㅋㅋ
웃자고 해보는 소리입니다^^  
모퉁이 2010.08.28 08.50 신고
유뽕이 시리즈는 웃으면서 읽지만 짠한 전율이 일어요.
글로 보는 녀석의 몸짓 행동들이 눈에 보이는 듯 그려지고
그걸 바라보는 엄마 마음 또한 가슴에 그려져요.
  
  예천 2010.08.28 09.00 수정 삭제 신고
방금, 달빛 이야기에 주신 댓글에 꼬리 남기고 오는 길인데...ㅎㅎㅎ
금세 여기로 오셔서 유뽕이를 만나고 계셨네요.
녀석이 주는 메시지는 날마다 변화하며 저를 벅차게도,
가슴 내려앉게도 합니다.
휴일인데도 지금 유뽕이는 밥 먹고 치카치카 하네요.
오늘은 3번버스 타고 콘도가야 한답니다..ㅠㅠ
다녀와서 후기(?) 올릴 게요....ㅎㅎㅎ  
오월 2010.08.26 06.57 신고
신발을 240 어느새 다 자랐네요
그 어린 유뽕이가~~
모처럼 와서 또 궁금해서 이렇게 들여다 보고
잘 계시구나 하고 고개 끄덕이고 갑니다
오늘도 비소식이 있어요
늦은 장마 유뽕이도 장맛비에 모든 것들이 더
쑥쑥 자라길 바랍니다  
  박예천 2010.08.26 09.15 수정 삭제 신고
정말 금방 시간이 흘러버렸어요.
그 어린 유뽕이가 말이지요..ㅎㅎㅎ
덩치도 산 만큼 커졌고, 남자가 되어버렸답니다...ㅋㅋ
더위가 사라진 것은 좋은데,
사람마음 간사하다고 금세 햇살이 그립네요.
지금도 보슬보슬 잔비가 내립니다.
그래도 저는.......비가 좋아요!
차분하게 옛 추억들을 퍼 올려 주는 듯 해서요.
댓글 고맙습니다^^  
햇살 2010.08.26 00.50 신고
비가 많이 왔나보네요...
여긴 제가 낮잠 잔 사이 비가 잠시 쏟아졌던지 밖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답니다..
온통 땅이 젖어있어서...ㅎㅎㅎ
아이들은 방학 사이 훌쩍 자라나 봅니다...먹고 놀아서 그런가?ㅎㅎ
아이들이 훌쩍 제 키를 따라잡고 손도 발도 더 커지고...마음 한 켠 든든하고 대견스럽다가도 좀 서운해지기도 합니다...
님 계신곳이 설악산과 가까운 곳이군요...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랍니다...
올 가을 예쁜 단풍이 벌써 그리워 지네요^^*  
  박예천 2010.08.26 09.12 수정 삭제 신고
맞아요 햇살님!
아이들이 훌쩍 크면 대견하기는 한데...,
어쩐지 엄마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서운하지요.
업기에도 안아주기에도 너무 커버린 아들.
그저 든든한 친구 하나 얻었다 여기며 삽니다....ㅎㅎㅎ

아침마다 아들을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설악산을 봅니다.
사계절 변화하는 산을 바라보며,
느끼고 감탄하고 그러지요.
좋은 곳에 살게 된 것도 감사하구요^^
설악산 단풍소식 접하면 잽싸게 전해드릴게요.  
살구꽃 2010.08.25 22.17 신고
ㅎ유뽕이가 키가 많이 자랐나 보군요. 어깨동무 하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
상상이 되면서 웃음이 납니다.ㅎ 오늘은 더위가 한풀 꺽였네요.. 추석도 이제 한달 남았고요.ㅎ 울아들도 조금있음 야자 끝나고 옵니다.ㅎ 유뽕이도,
울아들도 , 그저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면서 이만 물러가유..좋은꿈 꾸시고 잘주무셔요..ㅎ  
  박예천 2010.08.26 09.09 수정 삭제 신고
네에...아들과 저는 가끔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 끼고 잘 걸어요.
걷다가 어깨동무 내 동무 미나리 밭에 앉았다! 하면서 놀지요..ㅎㅎㅎ
지나가던 사람들이 좀 쳐다보긴 해도 유뽕이가 좋아라 하니까 저도 신이나서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꽃님도 아들 보면 듬직하게 생각되지 않던가요?
저만 그런가요...ㅎㅎㅎ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더 바랄 게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