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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18

유뽕이 시리즈 61 - 뒤뜰야영


BY 박예천 2010-09-09

            

           뒤뜰야영

 

 

 

지난번 기차여행 갈 때 유뽕이가 그랬습니다.

엄마는 집에만 있으라고, 제발 따라오지 말아달라고.

엊그제부터 녀석은 또 그 말을 온가족들에게 당부합니다.

말만으로는 미심쩍었는지 각 사람들에게 잠들어야 할 공간까지 일러주더군요.

“엄마는 침대 자요, 아빠는 쇼파 자요, 누나는 이층침대 자요!”

“그럼 유뽕인 어디서 잘 건데?”

“텐트 자요!”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 나두 텐트에서 자고 싶은데.....”

“아니, 집에 있어!”

진짜 엄마가 따라나서기라도 할까봐 얼굴색이 변하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에라! 치사해서 안 간다. 이 녀석아.

엄마만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데이 했던 유뽕이가 변심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저 혼자 놀러간다며 배신을 일삼네요.

 

5학년 1학기를 마치며 유뽕이네 학교에서 ‘뒤뜰야영’을 한답니다.

학교 운동장 주변에 조별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는 겁니다.

일주일전 쯤, 가방 챙겨주다 안내문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지요.

뭘 알까싶어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니 정확한 날짜와 요일까지 짚어냅니다.

“16일. 금요일에 텐트 잠자요!”

“누구랑 잘 건데?”

물어보는 엄마의 애절한 눈빛도 외면한 채, 곧 죽어도 친구들과 선생님하고만 잠잔다고 합니다.

졸지에 찬밥덩이가 된 엄마는 녀석을 한참이나 째려봅니다.

 

하루전날, 조별 준비물이 적힌 종이를 받았습니다.

우와! 가져 갈 것이 굉장히 많네요.

먹을 식량인지 라면과 쌀도 있고, 비옷, 슬리퍼, 세면도구, 옷가지 등등.

아예 이삿짐 수준입니다.

더구나 공동준비물인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돗자리도 있고 그야말로 집 떠나는 방랑자의 짐입니다.

평소 애용하는 유뽕이 가방으로는 담을 수 없는 분량이네요.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콧소리 내어 아빠가 아끼는 명품배낭을 공짜(?)로 빌렸답니다.

작은 이불이 들어가려면 무조건 커야 했으니까요.

가방이 많으면 유뽕이가 챙기기 힘들 테니 무겁더라도 한 곳에 쑤셔 넣는 것이 좋겠다고 엄마는 생각했습니다.

보퉁이를 줄이느라 꽁꽁 여몄지만 커다란 봇짐이 두 개나 됩니다.

 

뒤뜰야영 당일.

아이들이 등과 어깨에 울퉁불퉁 짐을 지고 교문 앞에 나타납니다.

와르르 어느 친구가 지고 가던 짐 보따리가 쏟아지더니 프라이팬과 그릇들이 내동댕이쳐집니다.

아마도 부엌살림을 전부 들고 왔나 봅니다.

주섬주섬 흘린 그릇들 챙겨드는 아이는 힘겨워 땀방울을 흘리는데, 어쩌지요. 지켜보던 엄마는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유뽕이도 대여해 온 아빠배낭 메고 운동장을 낑낑대며 걸어갑니다.

교실까지 들어다주려다 엄마는 일부러 혼자 들고 가라고 등 떠밀었지요.

얼마쯤 걸어가려는데 같은 반 친구 현성이가 짐을 들어주겠다며 손 내미네요.

텐트에서 잠자고 싶은 맘이 얼마나 부풀었으면, 엄마 안녕도 하지 않고 쏜살같이 교실로 들어가 버립니다. 짜식 정말!

 

집에 돌아온 엄마는 모처럼 자유부인이 되었다며 교회 집사님들에게 떠벌였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유뽕이가 없는 집은 올림픽경기장 만큼이나 드넓고, 녀석이 사라진 방안은 파리들의 날개 짓 소리까지 들릴 지경으로 고요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 엄마는 또 쩔쩔매고 있었지요.

겨우 한밤 자고 오는 건데, 손에 잡히는 집안일이 없어 방으로 마당으로 오가며 가만있질 못하네요.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고 학원 갔던 선뽕이 누나도 밤 아홉시가 다되어 들어왔습니다.

소강상태였던 장마기운이 다시 비를 뿌립니다.

아빠차를 타고 엄마와 누나랑 셋이 유뽕이 학교에 갑니다.

짠! 하고 나타나 깜짝쇼를 벌여줄 작정이었지요.

선생님 드릴 커피도 샀습니다.

교문 앞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운동장에 동그랗게 모여 있습니다.

가운데 장작더미가 있는 걸 보니, 그 유명한 캠프파이어 시간인가 봅니다.

보슬거리는 비 맞을까 온통 똑같은 모양 비옷을 챙겨 입어 유뽕이 찾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어머니회에서 단체로 준비한 것이랍니다.

휘적거리며 아들 찾아 삼만 리 하듯 두리번거리니 여기저기서 ‘유뽕이 저기 있어요!’라며 알려줍니다.

아, 찾았다 싶은 순간 모닥불이 점화되고 곧이어 불꽃놀이가 이어집니다.

저기 멀찌감치 아이들 틈에 입이 유난이 헤벌어지고 눈동자가 불꽃보다 더 빛나는 녀석이 보입니다.

바로 곁에 엄마가 다가와 어깨를 부여잡는지도 볼을 비벼대는지도 모르고 함성만 지르는 유뽕이.

아들은 빗속에 반짝이는 별빛이었습니다.

“유뽕엄마! 왜 이제야 왔어요. 아까 반별 장기자랑 시간에 유뽕이가 춤을 얼마나 잘 췄는데. 앵콜공연까지 했다구요!”

세상에나! 그 아까운 녀석의 엉거주춤(?)을 못 보다니요.

 

빗방울이 거세지자 타오르던 모닥불도 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도 매캐한 연기 자국을 남기며 사라져 갑니다.

아이들이 촛불의식을 준비한다며 줄맞추어 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갔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마지막 순서까지 함께 했습니다.

돌아 나오며 혹시나 하고 아빠가 유뽕이를 떠봅니다.

“유뽕아! 우리 집에 가서 잘까? 이제 그만 가자!”

“싫은데! 5학년 갈 거예요!”

자기 소속은 분명하게 아는 녀석입니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텐트에서 잘 수는 없었지만, 친구들과 냄비에 섞어먹은 라면과 밥이 오래 잊지 못할 추억음식이 될 겁니다.

펑펑 터지던 오색 불빛과 제 몸을 태우며 눈물 흘리던 촛불의식은 더욱 명료하게 기억 속으로 자리하겠지요.

 

뒤뜰야영이 끝나는 오늘.

녀석과 교문 앞에서 재회했습니다.

아빠무게 배낭을 메고 돗자리와 렌지가 들어있을 큰 가방도 질질 끌고 엄마 앞으로 옵니다.

절대 엄마는 먼저 다가가 짐을 받아들지 않습니다.

하루사이 커버린 아들이 저 혼자 자동차문을 열고 정리하도록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혼자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엄마는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대신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귓속에 대고 마구 퍼부었답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녀석은, 얼큰한 엄마표 김치찌개 정신없이 퍼먹더니 곧장 잠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걸 유뽕이도 알게 되었을까요?

고단하게 잠든 아들의 얼굴위로 잔뜩 떠다니는 글자들이 보입니다.

 

편안하다! 편하다! 편해!

 

 

 

2010년 7월 제헌절

뒤뜰야영 마치고 돌아온 날에.

 

 

0개
*콜라* 2010.07.21 16.44 신고
자기야... 아이들이 뒤뜰 야영 좋아하나보지? 했더니
응... 그래서 나도 우리 애 데리고 갈까 생각중이야.. 합니다.
우리 애 누구? 몇 인데?
응, 겉으로는 한 명인데 무게는 서 너명 몫이지...

이런, 내가 배가 좀 나오긴 했고 엉댕이가 크긴 하지만
꼭 이런 식으로 아픈데를 찔러야 직성이 풀린다니
유뽕이 참말 귀여워요. 아이들 다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거
그거 빨랑 포기 안하면 메누리한테 미움 받아요
ㅋㅋㅋㅋ
메렁~ 복수의 메렁~  
  박예천 2010.07.21 22.58 수정 삭제 신고
여보슈...배 볼록, 궁뎅이 함지박 아지매!
ㅋㅋㅋ 써 놓고 보니 내 얘기네....-.-;;
판도라님하고 맹근 일진에 낑가 줄테니
모여 봐요...아줌씨들도 뒤뜰야영 한 번
해봅세다...ㅎㅎㅎㅎ

아참...힘들겠당 ...ㅎㅎㅎ
캐나다는 먼 곳이니까 콜록아지매는
기냥 할 수 없이 빼놓고 우덜끼리 해야 겠당...ㅋㅋㅋ
메렁~~^^

유뽕이짜식..요즘 더워서 엄마만 들볶아요.
방학해서 지루한 것인지....휴~~  
살구꽃 2010.07.20 10.55 신고
글은 벌써 읽었었는데..ㅎ맘이 요즘 잠시 짜증이 많이나고 살맛도 안나고 그랬어요.. ㅠ 날씨가 너무 더운탓도 한몫했지요..ㅎ 유뽕이 야영 잘하고 와서 피곤해서 골아 떨어졌군요..저도 잘때가 젤로 좋던데요..ㅎ 암걱정 없이 ..때때로
신장병 땜에 우울해 지기도 하지만요..당장 어찌 되는건 아니지만..투석 단계가 만약에 온다면..앞일은 모르니요..약간 걱정이 돼요..며칠전에 동네 병원가서 또 혈압약 타면서리 소변검사 해보니.여전히 단백뇨,혈뇨가 나온다구 해서
대학병원엔 8,4일날 또 예약 돼있는데..그날 피검사도 한다고 하데요...참..
날도 덥고, 피부도 가렵고, 정말 여름이 싫고 제몸땡이도 싫고 그러네요..ㅠ
ㅎ그래도 살아야 겠지요..나보다 더한 사람도 사는데요..ㅎ그쵸..유뽕이
운동은 안시키나요..태권도 같은거 하면 좋을텐데요..살도 빠지고요..살이좀쪘다고 본거 같애서요...ㅎ  
  박예천 2010.07.20 11.18 수정 삭제 신고
그나저나 살구꽃님 건강 때문에 걱정됩니다.
우째 그리도 아픈 곳이 많은 겁니까?
하긴....저도 움직이는 종합병원이긴 해요..ㅎㅎㅎ
남편 왈...맨날 저를 고쳐서 다시 쓴답니다.
약 해 먹이고 치료해서 간신히 버텨간다고요.
검사받고 치료하느라 힘드시더라도 인내로 잘 견뎌내세요.
맘 강하게 먹고요.
육신의 병도 영이 강하면 다 이겨낼 수 있답니다.
저도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할 만큼 병치레 많이 했던 사람이거든요.
아셨죠? 꽃님 홧팅!!!  
새로미 2010.07.20 09.50 신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힘들긴 했겠네요. 하하...
예전에 우리 애들도 보이스카웃 걸스카웃 그런 거 하면서,
야영 다녀오면 하루종일 잠만 자곤 했어요.
어제는 안방에 깔아놓은 패드를 보고 살며시 웃음이 나오대요.
그게 바로 우리 딸이 야영 갈 때 갖고 갔던 거예요.
20년을 썼다니까요. 하하...
이제 이불도 바꾸고 다 바꿔야 하는데 저렇게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바꾸기도 쉽지 않네요.
아, 삼천포로 빠졌네요. ^^
행복한 아들과 함께 예천님도 더욱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박예천 2010.07.20 11.15 수정 삭제 신고
예...새로미님.
뭐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오래 간직하게 되더군요.
손 때 묻은 것들도 그렇구요.
유뽕이 녀석 방학했는데 심심해 난리네요.
아빠는 보충수업하느라 방학도 없구요....ㅜㅜ
저혼자 세끼 밥 해대며 지낼 생각에....휴~
그래도 행복합니다.
땀 흘리며 마련한 음식들 먹어 줄 새끼들이 있어서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오월 2010.07.19 13.31 신고
아들은 군대
딸은 8월에 졸업을 앞두고 독립해 산 지
어언 오년 ㅎㅎㅎㅎ 예천님 글 읽으며
겪었던 옛추억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참외 박스 따위를 들고
아이들 학교를 찾은 생각과 남의집 아이들은
의욕 적인데 움추려 있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했던
일들 ㅎㅎㅎ 예천님 고마워요 ㅎㅎㅎㅎ
새록새록 아련한 추억입니다  
  박예천 2010.07.19 13.41 수정 삭제 신고
장성한 자식들 타지에 떠나 보내고,
내내 어린시절 사연많게 키웠던 추억을 보듬고 계시군요.
어른들 말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더니,
만날 보시며 그때가 좋은거라고....다 크면 소용없다고 하셨죠.
저도 지금보다 녀석들 애기적이 그립답니다.
기저귀 갈아주며 뽀얀 궁뎅이 두들기던 그 때가 말입니다.
기차앞에서 또 유모차를 끌고 있네요..ㅋㅋ
댓글 고맙습니다.
눅눅한 장마 기운에 건강 잘 챙기시구요^^  
선물 2010.07.18 23.30 신고
하룻밤일 뿐이지만 유뽕이의 부재로 느껴진 고요함이 굉장히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귀가 후 유뽕이 얼굴에 떠다니는 글자들, 편하다,,, 예천님이 가꾸신 공간이 유뽕이에겐 가장 편안한 안식처일 거예요. 고마운 엄마,,,,예천님,  
  박예천 2010.07.19 07.47 수정 삭제 신고
근데요.....녀석이 고마운 엄마인 걸 자꾸 잊어버리네요..ㅋㅋ
하룻밤 조용했던 집안이 다시 난리가 났습니다.
말썽과 엄마를 들볶고 떼쓰는 통에 더운데 지쳐가고 있답니다.
열대야때문에 잠 못자서 그런지 아침부터 징징거려요...
선물님께 유뽕이를 일러바치고 있다니....ㅎㅎㅎ
댓글 고맙습니다^^  
백향목 2010.07.18 10.14 신고
어제, 비가 꽤 많이 왔었죠?
그 와중에 400명 가량의 마을 어른 분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교회행사를 치루느라 바빴던 하루였답니다

유뽕이에게 고단하다고 뿌듯한 추억으로 남을 하룻밤의 야영이 되었을듯 하네요

  
  박예천 2010.07.18 15.40 수정 삭제 신고
와...대단하십니다요.
이 더위에 40명도 아니고 400명 어른들께 좋은 일을 하셨다니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겠네요ㅎㅎㅎ

유뽕이녀석 졸린지 내내 잠만 자더군요.
오늘 교회 가서도 말썽부리고....ㅎㅎㅎ
녀석 데리고 성가대며 교사 하는 일이 만만치 않네요.
그래도 저역시 그 분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맘으로
기쁘게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헬레네 2010.07.18 03.24 신고
그학교 참 좋은 행사를 많이 하는군요 .
아이들의 마음까지 고려한 교육 바람직 합니다 .
나날이 발전하는 유뽕군이 대견하네요 .
유뽕이 홧팅 ~~~  
  박예천 2010.07.18 15.35 수정 삭제 신고
네에...유뽕이가 참 행복하게 지냅니다.
남편이 우스개소리로 그럽니다.
유뽕아! 4년만 그 학교 더 다니면 안되겠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