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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51 - 유리 닦아요!


BY 박예천 2010-09-09

        유리 닦아요!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오기로 정해졌던 날.

엄마와 아빠는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바빴지요.

버릴 것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중요한 물건들은 잘 챙겨두느라 그랬답니다.


“여보! 우리 저것들은 다 버리고 갑시다. 자리차지만 하고 녀석도 다 컸으니까 그치?”

엄마가 아빠를 향해 가리킨 곳엔 장난감 버스며, 기차, 비행기 등등.... 유뽕군의 애장품들이 쌓여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유뽕이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잽싸게 몸을 날린 유뽕이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제 품에 장난감들 주섬주섬 안아다 쇼파 위에 쌓아놓습니다.

혹시라도 버릴까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그 다음 날엔 읽지 않는 책들을 버렸습니다.

금세 커다란 책장이 텅텅 비었네요.

이때다 싶었는지 멀찌감치 딴 짓을 하며 놀던 유뽕이가 또 달려옵니다.

역시나 한쪽으로 밀어놓았던 제 장난감들을 빈 책장 안에 빼곡하게 장식(?)해 둡니다.

녀석에게 중요한 이삿짐은 오로지 장난감무더기뿐인가 봅니다.

애지중지하는 꼴이 안쓰러워 이삿짐 속에 온갖 장난감탈것(?)들을 포함시켰습니다.

버릴까말까 했던 장식장 한 곳이 유뽕군 전용장난감 진열장으로 결정되었지요.

거실을 들어서면 구색 갖춘 가구나 전자제품 사이에 우뚝 서있는 장난감전용장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생각 같아선 냅다 집어다 엿장수라도 주고 싶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녀석이 저리도 좋아하는데.


이사를 오자마자 온 거실바닥에 늘어놓고 난리가 났습니다.

비행장도 만들고 터널과 주차장까지 또 설치할 계획인가 봅니다.

살살 달래어 마당으로 내보냈지요. 토끼도 보고 뛰어 놀아라 하고요.


얼마쯤 지났을까.

집안 정리를 하던 엄마의 귓가에 ‘뽀드득, 뽀드득’세찬 소리가 들립니다.

어쩌다 ‘삐익!’하며 듣기 싫기도 합니다.

우물가에 빨아 세워놓은 대걸레를 들고 정성껏 유리창 닦고 있는 유뽕군.

참으로 표정만큼은 진지하기만 합니다.

줄줄 유리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립니다.

나머지 물기로는 흙 묻은 계단난간도 닦고 다시 유리창도 문지릅니다.

이건 유리창 닦기가 아니라 거의 낙서하기 수준이지요.

거저 생긴 일꾼이 엉망으로 청소를 하니 보고만 있을 엄마가 아니지요. 철물점에서 사온 유리 닦기 도구를 건넵니다.

“자, 유뽕아! 이걸로 해보자. 잘 봐! 이렇게 닦고 쭈욱 밀어내는 거야 할 수 있지?”

“네에!”

대답만큼은 씩씩한 자원봉사자입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한나절 내내 유리창만 닦습니다.

마당까지 물이 줄줄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빠는 이미 흙발자국이 성큼성큼 난 계단과 난간 쪽을 보며 허허 웃으십니다.

동네 개들만 수시로 드나들며 일궈놓은 밭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며.

정작 큰 강아지는 우리 집 유뽕이라며 엄마도 덩달아 깔깔댑니다.


그날이후.

유뽕군은 틈나는 대로 아침이나 점심때나 저녁이거나 그저 유리창만 닦습니다.

뭐든 한 가지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게 녀석의 성격이거든요.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있다가도, 창 앞에 어른어른 거리는 사람이 불쑥 등장하면 유뽕입니다.

비오는 날에도 잔뜩 흐려 추운 날도 결근하지 않습니다.

알록달록 내복둥이 녀석은 유니폼처럼 걸쳐 입은 채 배를 볼록 내밀고 열중합니다.

뽀드득 소리가 이젠 거의 빠드득 이가는 소리로 들릴 정도입니다.

달랑 유리창 닦는 도구하나 헹궈내려고, 수돗물은 좔좔 넘치게 틀어놓고 잠그지도 않네요.

텃밭을 짓밟던 흙발 때문에 우물가는 질척한 흙탕천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처 하수구를 빠져나가지 못한 흙덩이가 벌겋게 고여 있답니다.

그동안 넘치는 에너지를 아파트집에서 참고 참았다가 이제야 터뜨리는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열심히 닦아대다가는 우리 집 유리창이 전부 비닐처럼 얇아질까 걱정이네요.

아무래도 강력 철제창문으로 교체해야 되겠습니다.

천만예요! 절대 그런 일은 없답니다.

힘주어 닦다가 유리창이 닳고 닳아 녀석이 툭 튀어 들어오게 된들 유뽕이만 행복하면 그만이지요.

내일부턴 새참이라도 챙겨주며 부려먹어야겠습니다.

 

어이! 작은 전씨! 참 좀 먹고 하게나.





2010년 4월13일

만날 유리창 닦는 유뽕군 고자질 하고픈 날에.

0개
헬레네 2010.04.15 02.04 신고
유뽕이가 선견지명이 있는게지요 ?
좀 있으면 곷이 필텐데 잘 보이라고 ,,,,,,,,,, 효자 유뽕이 ~~
전군 ,,,,,, 새참 먹고 하게나 ~~~  
  박예천 2010.04.15 11.07 수정 삭제 신고
햐~~~!몰랐습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어쩐지 녀석이 닦아놓은 거실 유리창 밖으로
드디어 살구꽃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게 보입니다.
흠...오늘은 특별 새참이라도 준비해야 겠네요.
뭘주나?...ㅠㅠ  
모퉁이 2010.04.14 10.31 신고
에구~
원글에서는 유뽕녀석 짓거리(?)에 웃음짓게 하더니 댓글에서는 우웅~~ㅠㅠ

유뽕이네 유리창에 '유리조심' 써놔야 되는거 아닙니까?
친구가 아파트 분양을 처음 받고는 너무 좋아 베란다 구경 나가다가
거실 유리문을 머리로 들이받은 적이 있거든요.
유리가 없는 줄 알았다네요. ㅎㅎ  
  박예천 2010.04.14 13.01 수정 삭제 신고
네에...모퉁이님.
어찌 좋은 일만 있겠나요. 그저 우울하고 무거운 글은 접으려구요.
쓰는 저도...읽는 이들에게도 짐 하나 더 얹게 될까봐서요.

우리집 유리엔 써놓지 않아도 될 겁니다.
녀석이 적당한 명암으로 흙물을 들여놨으니까요..ㅎㅎㅎ
파리가 낙상 할 정도로 깨끗할 적이 있기나 할지요....^^
그 모든게 사람사는 냄새 같아서 적당히 즐기렵니다.
녀석과 함께 하는 삶동안 말이지요.  
아트파이 2010.04.13 18.39 신고
^^ 유뽕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예천님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네요...

아마 저라면 한마디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유뽕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더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엄마구나...글을 읽으면 뉘우칩니다....

울 아들에게도 더 넉넉하고 푸근한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이 성격이... 참 쉽지 않네요... ㅎㅎㅎㅎㅎ
그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유뽕이....... 참, 밝게 예쁘게 크네요... ^^  
  박예천 2010.04.13 19.53 수정 삭제 신고
유뽕이는 별명이지요.
얼마전 아기적 모습이 그리워 슬그머니 불러봤지요.
유뽕아~~~~!
잊지 않았는지 얼른 대답을 하더군요.

다혈질에 참을성 없는 저도 빵점엄마였습니다.
유뽕이가 서서히 저를 변화시켰지요.
기다림도 배우게 하고...., 작은 것에 기쁨이 있음을 알게 해주고요.
이래저래 고마운 녀석...어미로서 빚이 많습니다.ㅎㅎㅎ
님도 분명히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셨을 겁니다.
댓글에서 그런 심성들이 다 엿보이거든요....^^
늘..감사해요!  
봉자 2010.04.13 15.20 신고
거 작은 전씨, 그 집 유리창 다 닳고 없어지면
봉자네도 좀 보내줘요.
봉자네 창 꼬라지하고는....
먼지하고 때 낀 거 좀 해결합시다. ㅋㅋㅋ  
  박예천 2010.04.13 16.24 수정 삭제 신고
허허참...봉자님!
자격증 없는 청소기사 봉자님댁 출동했다가는,
하루 사이에 문틀만 남겨 놓을 것입니다.
오뉴월에 거적문 달고 사실겁니까? ㅎㅎㅎ
제발 참으십시오~!
속초분점에서나 부려먹을랍니다...^^  
정자 2010.04.13 14.59 신고
울 딸은 설겆이를 잘해요..근디유..지가 하기 싫으면 나를 부려먹는다네요..이거 누가 누굴 시켜먹는 건지 헷갈릴때가 있어요..헤헤..유뽕이는 고자질은 안하나 봅니다..울 딸 일름보라고 유명합니다..  
  박예천 2010.04.13 16.21 수정 삭제 신고
흐흐흐...정자님도 따님을 부려(?)먹습니까?
이거...아무래도 우리는 노동력착취의 본모습을 보이는 어무이들 같습네다ㅋ

유뽕이가 제발 일러바치는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전에는 친구들에게 자주 맞고 어떤 친구는 유뽕이 목을 조른다는......ㅠㅠ
말을 전하지 못하니 전혀 모른답니다.
매일 양말이 젖어와도 말을 안하고.
나중에 보니....실내화 바닥이 양쪽 다 쩍 갈라져 있더군요.
휴~~~~! 오늘은 정자님이, 아니 님의 따님이 많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