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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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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48 - 기말고사 1등?


BY 박예천 2010-09-09

          기말고사 1등?

 



오늘은 유뽕이네 학교에서 4학년 기말고사를 보는 날입니다.

시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녀석입니다.

1학년 때는 시험지에 잔뜩 낙서나 그림만 그렸답니다.

문제의 뜻도 내용도 모르는 유뽕이에게 시험 보는 날이란 그저 길고 지루하기만 한 날이지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 나아져 객관식 괄호 안에 뭔가 적어냈더랍니다.

자기 이름이거나 문제의 한 문장을 베껴 놓았지요.

엄마는 그저 대견하다 했습니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잘 참아낸 시간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작년 시험에서 드디어 객관식 괄호 안에 번호쓰기를 해냈습니다.

아무번호나 생각나는 대로 연필 굴려 쓰듯 옮겨놓았을 겁니다.

그래도 잘했다 칭찬해주었습니다.

아 글쎄, 유뽕이 보다 못한 점수를 받은 친구가 있었다니 잘 찍은 것이지요.


아침밥을 먹은 유뽕이는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옷 챙겨 입는 것을 도와주며 엄마가 물어봅니다.

“유뽕이 오늘 시험 몇 점 맞을 거야?”

“백점 맞을 거예요!”

“우와! 정말? 그럼...., 몇 등 할 건데?”

“1등 할거예요!”

목소리만 듣자면 전교일등쯤 맡아놓은 씩씩한 자세입니다.

엄마의 차안에서도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걱정이라곤 없는 표정이지요.


드디어 교문 앞에 다 왔네요.

“이따가 짜장볶이 사주세요!”

텔레비전 광고에서 봤던 인스턴트 컵라면만 사달라며 주문합니다.

머릿속엔 온통 먹을거리만 가득한 녀석이지요.

차에서 내려 가방을 등에 매달아 주려는데 친구 재원이를 만났네요.

유뽕이보다 엄마가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재원이 안녕? 근데, 재원이는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오늘 수업해?”

“아뇨. 미리 대비를 해야죠!”

아하! 쉬는 시간 내내 다음과목 훑어보겠다는 모범 학생입니다.

이를 어쩌란 말입니까.

1등하겠다던 유뽕군의 엄마는 달랑 가방에 연필 여러 개 잘 깎아 담은 필통만 넣었거든요.

시험기간 이틀 동안 오전에 마친다는 말에 필기도구만 있으면 되겠거니 했지요.


“엄마, 안녕! 빠빠이!”

유뽕이가 운동장 가로질러 교실을 향해 달립니다.

텅 빈 가방 속에 들어있을 필통도 녀석의 달음박질 맞춰 덜커덩거립니다.

이 세상에 우리 유뽕이가 1등 할 시험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수한 눈동자 빛 뽐내기, 가장 깨끗한 말로 이야기 나누기대회 같은 시험이 있다면 당연히 녀석이 1등감인데 말이지요.


유뽕이가 자꾸 커가는 게 두렵습니다.

엄마가 나이 먹고 늙어 가며 힘없어지는 것도 싫습니다.

영혼 맑은 녀석이 헤쳐가기 벅차도록 세상은 자꾸만 탁해지니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만약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이번 기말고사에서 유뽕이가 1등하면 어쩌지요?

참...., 꿈도 야무지지요?


고루 퍼지는 겨울 하늘의 햇살이 마냥 공평하기만 한 아침입니다.




2009년 12월 8일

유뽕군 기말고사 1등하겠다는 날에.

0개
봉자 2009.12.18 17.10 신고
봉자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유뽕이가 공부 1등하는 게 나은지
가장 깨끗한 말로, 가장 순수한 눈빛으로 1등하는 게 나은지요.
낫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만,
지금 형편 같으면 공부 1등이 더 나을 것 같네요.
유뽕이는 나서부터 지금껏 지겹도록 눈빛 1등, 깨끗한 말 1등은
도맡고 있으니까요. 봉자 말이 맞지요?  
  박예천 2009.12.23 00.59 수정 삭제 신고
그야말로 버르장머리 없는 바다새가 되었네요.
봉자님 다녀가신 줄도 모르고 이제서야 답글을 쓰다니요.
용서하소서...ㅎㅎㅎ

봉자님 표현에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이미 따놓은 일등인데....부질없는 신세한탄을 하고 말았네요.
인생선배님께 넉넉한 여유를 배웁니다.
다녀가심에 감사드리며....봉자님 말씀 다 맞습니다요...ㅎㅎㅎ  
아트파이 2009.12.08 11.35 신고
무엇보다 조금씩 발전하는 유뽕이를 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적응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고 있잖아요.

아마 저희가 쉽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행동도 유뽕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고 또 성취감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아주 잘 하고 있고 무엇보다 든든한 엄마의 지원과 사랑때문이라도 아주 잘 커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삶의 무게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것입니다.

믿으세요. ^^ 지금 글을 보면서 유뽕이는 충분히 가능한 아이입니다. ^^ 시험에서 1등은 별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나중에 유뽕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일에 일등이 되면 되는것이겠지요. 그 분야에서는 그 어떤 조건보다도 하고 싶어하고 노력하는 것이 좌우할 것임으로 유뽕이는 아마 가장 잘 해 낼 것입니다.^^

그쵸? ^^  
  박예천 2009.12.08 11.55 수정 삭제 신고
저는요....글을 쓰는 일보다 가끔 님의 댓글에 감동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 많은 글들을 정독하시며 하나하나 글을 남겨주시는지요.
분명 보통일은 아니거든요. 진심어린 맘으로 느낌을 적는 일 말이지요.

그렇지요? 유뽕이만 행복하면 되는 것이지요?
유치원시절에 말입니다.
성탄발표회를 하는데....담임선생님이 은근히 그러더군요.
단체 무용을 따라하지 않으니 집에 데리고 있어줬으면....하고요.
겉으로 태연하게 웃으며 목례를 하고 돌아오는길 내내 울었네요.

겨울이라 그런가요?
자꾸 예전일이 불쑥 떠오릅니다.
아~~~점심 먹고 기운내야 겠습니다.
님도 맛있는 점심 드시고 남은 오후도 행복하세요!
댓글 감사드리구요.  
  아트파이 2009.12.08 15.23 신고
어떤 말이든 단정적으로 말을 하면 안되지만 그건 유치원 담임이 잘못 행동하신것 같습니다. 조금 더 훌륭한 분이셨으면 아마 단체 무용이 힘들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함께 성탄발표회를 하도록 했을 겁니다. 그때 돌아오는 발걸음이 많이 힘드셨을겁니다. ㅠ.ㅠ 십분 이해가 됩니다.
제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오기라도 버티고 견디어 내지만 자식 관련 일이라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부모지요. 예전에는 눈물도 많지 않았는데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눈물도 많이 늘었답니다. 안쓰럽고 조심스럽고 미안하고... 사랑하고, 애틋하고... 그래서 자식을 키워봐야 한다고 하나 봅니다. 아이를 싫어하던 제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주변에서는 신기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예천님은 저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서 유뽕이를 님에게 보내신것 같습니다. 그만큼 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씨가 흐리네요... 마음이 괜히 울적해지는데... 님도 기분좋은 오후 보내시기 바래요. ^^ 댓글 하면서 가끔은 마음 상하시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쓰게 되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여주시겠지 하는 마음입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박예천 2009.12.08 21.25 수정 삭제 신고
본의 아니게 댓글이 또 이어집니다ㅎㅎㅎ
님께서 제 마음을 콕 찍어낸듯 하여서요.
장애 아들을 키우면서 첨엔 팔자타령도 해보고 왜 하필 나일까 등등.
비관적으로 죽고 싶은 맘도 들었네요.
기도하면서 그 과정을 뛰어넘고 보니 아들은 축복이었습니다.
님의 표현대로 세상 어떤 어머니도 할 수 없고,
오직 저만이 가능하기에 선택되어 보내진 선물.....그랬습니다.
오히려 당당했고 자신감에 들떠 살았지요.
그래도 인간인지라....아주 가끔, 진짜루 어쩌다 한 번 무너집니다.
다행인 것은 오뚜기처럼 금방일어나요 ㅎㅎㅎ

진심은 통한다는 일념으로 댓글을 주시는 님의 따스한 뜻을 봅니다.
저역시 그런 삶으로 지탱하고 있답니다.
어쩐지 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엿보여 기분좋게 웃어봅니다...ㅎㅎㅎ
위로의 댓글에 큰 힘을 얻습니다.....고개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혜영 2009.12.08 10.37 신고
일등할 시험 있을겁니다..유뽕이를 잘 지켜봐 주세요...사람은 누구나 잘하는건 한가지씩 타고 난다 합니다 ..정상적인 수업으로 훈련이 힘든 장애아동들도
꾸준히 반복적인.. 자신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을 받으면 오히려 정상인보다 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군요...물론 전문적인 손길을 필요로 하겠지요..
우리 유뽕이 정상인보다 뛰어난 뭔가가 있을겁니다 ..전에 보던 그 그림솜씨도 좋다고 느꼈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고심이 더 늘어가는거 정말 공감이 갑니다
물론 예천님은 장애아동을 기르는 입장에서 더 힘들다는것도 알구요
기운내십시오.. 언젠가 유뽕이가 큰일 낼일이 벌어질껍니다 ^^  
  박예천 2009.12.08 11.50 수정 삭제 신고
혜영님!
제 글방에 자주 오시니 아주 친근한 이웃같습니다^^

아침에....녀석을 보내는데 많이는 아니고요, 쬐끔 우울했었어요.
곧 한 살 나이를 더 먹는구나 생각하니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속마음도
생기구요.

녀석과 보내는 일상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거북이 걸음입니다.
진도가 없는 듯도 보이고 때론 주저앉기가 일쑤인 날들....
그래도 유뽕인 저의 전부입니다.
녀석으로 인해 버텨온 삶이니까요.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