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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63

유뽕이 시리즈 40 - 다람쥐도 키우자


BY 박예천 2010-09-09

          다람쥐도 키우자!

 


우리 집은 온통 유뽕이 놀이터입니다.

여기저기 장난감자동차와 비행기가 세워져 있고 녀석이 그린 그림들은 벽에 잔뜩 붙어있지요.

어제는 신호등 빨간색과 초록 불을 색칠하고 오려 의자기둥에 붙였습니다.

흰둥이 강아지를 향해 큰소리로 외칩니다.

“자, 초록불이예요. 견우 건너가세요. 초록불은 계속, 쭈욱 가요!”

유뽕형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견우가 멀뚱히 앉아 꼬리만 흔들어댑니다.

할 수 없이 설거지하던 엄마가 손을 들고 뚜벅뚜벅 건너갔지요.


한참을 자동차와 신호등 그리기에 바쁘던 유뽕이는 이제 동물그림에 흠뻑 빠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엄마는 유뽕이를 향해 “유뽕! 화요일 책가방엔 무슨 과목이지? 혼자 해볼까?”라고 합니다.

책꽂이의 책 살펴보며 유뽕이는 책가방을 열지요.

과학책 챙기다가 책장을 넘겨봅니다. 중간쯤에 녀석이 좋아하는 동물그림이 있네요.

책가방 싸던 일 멈추고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그림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요즘 보고 그리는 일을 곧잘 하거든요.

얼핏 보니 다람쥐와 곰돌이를 제법 잘 따라 그렸습니다.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모양입니다. 자꾸 들여다보며 “다람아! 도토리 먹어라!" 혼잣말을 합니다.

실망주고 배신하는 사람보다는, 늘 한결같은 동물들이 더 좋은가 봐요.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치카치카 하고, 말끔하게 세수를 마쳤고, 뽀송뽀송 베이비로션도 발랐지요.

유뽕이는 커다란 스케치북을 들고 침대위로 올라갑니다.

뚫어져라 그림을 쳐다보는가 싶더니 엄마에게 한마디 합니다.

“다람쥐도 키우자!”

“어? 어떻게 키우지? 우리 집이 좁은데....,”

엄마의 대답은 안중에도 없이 다음 말을 이어갑니다.

“곰돌이도 키우자!”

세상에나! 좁은 아파트를 동물원으로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얼마 전엔 토끼 두 마리 키우자고 말하더니 다양하게 동물이름을 말하네요.

예전 우리 집에서 키우던 토끼 ‘영랑이’와 ‘설악이’ 이름을 부르곤 했지요.

엄마는 유뽕이 옆에 누워서 쉽게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유뽕아! 우리집에 다람쥐가 오면 뭘 먹이지?”

“다람쥐 우유 먹어라 해요!”

“이런, 다람쥐는 도토리 먹잖아. 우리 집엔 도토리가 없어. 다람쥐들은 산에서 사는 거야. 나뭇잎 이불을 덮고 자야한대. 그리구 우리 집에 오려고 찻길 건너다 자동차랑 꽝 하면 사고 나잖아. 그럼 다쳐서 아플 거야. 그치? 다람쥐는 산에서 살라고 하자. 응?”

열한 살이나 된 유뽕이에게 엄마는 아기말로 설명해줍니다.

엄마 말이 어려웠을까요?

한참이나 눈동자를 굴리던 유뽕이가 오래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불쑥 말합니다.

“우리 집에 곰돌이 키우자!”

유뽕이가 스케치북에 그린 곰은 판다도 아니고 아기 곰도 아니었어요.

가슴에 하얀 반달이 그려진 시커멓게 커다란 형아 곰이었습니다.

차라리 귀여운 다람쥐를 허락할 걸 그랬습니다. 몇 배나 덩치 큰 곰돌이로 바꿀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뽕이가 잘 알아듣게 다시 이야기를 해줍니다.

“곰돌이는 우리 집이 좁대. 산에서 막 뛰어놀고 싶대. 날씨가 추워지면 굴속에서 쿨쿨 잠도 자야한대. 이다음에 동물원 가서 만나자!”

엄마는 이쯤에서 유뽕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천만예요. 유뽕이는 거창하게 선포합니다.

“다람쥐랑, 곰돌이랑 이사 가자!”


이럴 수가!

유뽕이가 토끼나 닭을 키우자고 할 때마다 못 알아듣겠거니 여기며 대충 말했었지요.

“이담에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동물들 키우자. 유뽕이 좋아하는 토끼랑 염소랑 오리, 꼬꼬닭 많이 키우자!”

지키지도 못하는 공약을 하다니요. 엄마도 못난이 국회의원 아저씨와 다를 게 없었네요.

이사 가자는 유뽕이 말에 그냥 ‘이담에..., 이담에.....’라고만 대답했는데 걱정입니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건데.

비록 어린아이 같은 수준이지만, 엄마랑 대화를 주고받게 된 유뽕이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당장 복덕방에 집을 알아봐야겠네요.


첫째 조건은,

동물원 하기에 안성맞춤인 집으로!



 


 

2009년 10월 12일

유뽕이와 동물 이야기 하던 날에.

   

0개
헬레네 2009.10.14 12.15 신고
유뽕이와 엄마가 그림속 동화의 나라에 나오는 요정들 처럼 느껴짐은 어인 일인가요 사랑과 평화가 한가득 뿌려지는 성안에 멋진 왕자를 상대로 가만가만
노래하는 예천님이 떠오르겠는데요 .  
  박예천 2009.10.14 21.59 수정 삭제 신고
아이고 헬레네님~!
바쁘실텐데...제 글에 하나씩 댓글을 달아주시다니...ㅠㅠ
썰렁한 글방에 갑자기 훈기가 도는군요...^^

유뽕이녀석이 님 덕분에 왕자님(?)로 신분상승 했네요...ㅎㅎㅎ
아들의 느린 성장이 저를 순수한 삶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가장 깨끗한 심성으로,
유아 동화를 하듯 설명해야 겨우 알아듣거나 흘려버리거나 하지요.
영원한 동반자이지요...태진아의 노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