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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468

유뽕이 시리즈 38 - 머리띠


BY 박예천 2010-09-09

            머리띠

 


 


유뽕엄마는 뽀글파마를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선뽕이 누나와 아빠가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날 얼굴엔 주름이 자글거려도 단발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옆 가르마 쭉 타서 양쪽 턱에까지 반듯하게 내려온 머리가 찰랑거립니다.


밤에 잠자리 들기 전,

유뽕이 곁에 누운 엄마는 손 모으고 기도한 후, 옛날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기분이 좋은 날엔 유뽕이의 애창곡 찬송가를 도돌이표 붙여 불러주기도 하지요.

옆으로 누워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참 많이도 컸습니다.

마주보고 서서 뽀뽀 할 때 전에는 허리를 구부렸는데 이제 엄마만큼 키가 자랐어요.

똑바로 쳐다봐도 유뽕이 눈이 엄마 눈 속에 쏙 들어옵니다.

 



어젯밤에도 엄마는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녀석의 졸린 눈 속에 엄마 머리카락이 얼굴 위에 헝클어진 게 보였나 봐요.

한 손으로 슬쩍 걷어 올려 주네요.

지그시 쳐다보는 유뽕이를 보니 살짝 징그럽게 자란 총각 같았습니다.

예전 엄마나이 스물 몇 살  연애할 때, 용팔이(?)도 머리카락을 곧잘 넘겨주었지요.


저녁상을 물린 시간이었을까요.

거실 의자에 앉은 엄마는 산에서 주워 온 밤을 까고 있었지요.

아빠는 주방에서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 까는 일은 엄마 몫입니다.

밤알을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고개 푹 숙이고 사각사각 칼질을 했습니다.

순간, 쿵쾅거리며 거실 화장실로 유뽕이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언제나 비데 있는 안방화장실만 고집하는 녀석인지라 의아한 엄마가 물었지요.

“유뽕! 거긴 또 왜가는 거야? 물장난 하거나 욕조에 거품풀기 없기!”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유뽕입니다.

벌떡 일어나 뭘 찾는지, 어떤 장난을 구상중인지 알고 싶었으나 엄마는 귀찮아졌지요.

밤톨 까는 일에 슬슬 재미가 붙어가고 있었어요.

추석 때 할머니 좋아하시는 밤 송편을 빚을 생각이랍니다.


몇 초쯤 흘렀을까요.

유뽕이가 살금살금 다가온다고 알아차리려는데 엄마 등 뒤에서 뭔가 불쑥 내밀고 있네요. 

누나가 쓰는 연두색 머리띠였습니다.

화장실 머리핀 바구니에서 집어 온 것이지요.

아무 말도 없이 엄마머리에 강제로 끼워줍니다.

밤 깎느라 고개 숙인 엄마의 단발머리가 또 너풀대며 얼굴을 가렸나봅니다.

거추장스럽게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을까요.

유뽕이가 어설프게 끼워준 머리띠는 양쪽 귓등에 걸려 아프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아닌 척 엄마는 과장된 연기를 하지요.

“우와! 유뽕아 고마워. 엄마 머리띠 하라고 가져다 준거야?”

유뽕군이 단단하게 올려준 머리띠 때문에 가뜩이나 동그란 엄마 얼굴은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머릿결에 동백기름 바르고 홀라당 넘긴 아줌마 같았지요.

추석도 되기 전에 두둥실 보름달이 유뽕이네 거실에 먼저 떴습니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우리 집 거실에 떴지.

    

어느새 연인처럼 커서 엄마를 챙겨주는 유뽕이.

간혹 엄마 옷 앞섶에 단추가 열려 있으면 잽싸게 달려와 끼워주고,

바짓단이 말려있으면 또 풀어서 내려놓습니다.

제 딴에도 고생하는 엄마에게 고마웠나봅니다.


오늘, 연두색 머리띠 하나로 엄마는 꼴까닥 행복한 하루랍니다.

효자 아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네요.




2009년 9월 28일

유뽕이가 엄마 머리띠 챙겨준 날에.



0개
모퉁이 2009.09.29 12.58 신고
예천님이 이렇게 남겨놓은 일상이 유뽕이에게 훗날 큰 선물이 될 것 같아요. 녀석의 몸짓이 살풋 느껴집니다. 머리띠 그거 위치 잘 못 잡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거...ㅎㅎㅎ 밤소를 넣은 송편 맛있겠는데요? 미리 뜬 보름달 상상해 봅니다.^^  
  박예천 2009.09.30 20.32 수정 삭제 신고
유뽕이시리즈를 열심히 이어가고는 있는데...,
모두가 개인적인 제 삶이고 보니 읽는 이들의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을 듯 해요.
그저 유뽕이를 위해서 씁니다.
나중에 녀석이 읽고 이해나 하게 될지요.
모퉁이님 글이 정겨워 늘 따뜻하게 읽고 있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