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좋아!
손가락에 힘이 없는지 글씨도 늦게 배운 유뽕입니다.
여섯 살이 넘도록 연필로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일에도 진땀을 흘렸지요.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 경험하게 했습니다.
가위질도 시켜보고 점토나 찰흙도 주물럭거리며 놀았지요.
무엇이든 처음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서서히 종이 오려대고 찰흙을 길게 꼬아 ‘똥’이거나 ‘뱀’이라며 만들어 놓기까지 또래친구들 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답니다.
이제 유뽕이는 가위손이 되었지요.
무엇이든 오려대는 통에 집안에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거울을 쳐다보며 미용실놀이 한다고 제 머리를 깎아 놓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미술학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셨지요.
“유뽕 어머니 죄송해서 어떻게 하지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저도 몰랐어요. 다음부터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
엄마는 유뽕이가 큰 사고라도 당한 줄 알았습니다.
속눈썹 잘 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녀석의 눈 주위를 쳐다보았습니다.
미술학원 거울 앞에 다가서서 공작가위로 속눈썹을 바짝 깎아 버렸답니다.
선명하던 유뽕이 눈은 뭔가 허전해져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종이 오려붙이고 열심히 색칠하여 버스를 만들기도 합니다.
거리에 달리는 차들 중에서 유뽕이는 버스가 제일 좋은 모양입니다.
“어? 강원여객이네! 와! 동해상사다. 금호고속이네!”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인데도 열심히 회사 이름을 읽으며 좋아라 합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는 거실에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었지요.
유뽕이는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보나마나 안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강아지 견우를 쓰다듬고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물 한 컵 마시러 주방 쪽으로 가려던 엄마 눈에 커다란 입체그림 한 폭이 보였습니다.
맘껏 낙서하라고 걸어둔 벽면 보드칠판에 유뽕이 작품이 환하게 그려져 있었지요.
한눈에 봐도 버스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달랑이는 손잡이, 반듯한 의자가 다 보였어요. 그리고 조그맣게 그려 넣은 벨 아래에는 ‘정차합니다’라는 글씨도 써 넣었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지나치는 순간에도 유뽕이 머릿속엔 뭔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나 봅니다.
아빠는 얼른 일어나 사진기에 유뽕이 그림을 담았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이 한순간 지우개로 사라진다면 아까운 일이니까요.
(그림의 일부분만 보이네요ㅠㅠ 전체적으로 보면 더 훌륭한데....^^)
유뽕이는 하나씩 둘씩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버스를 좋아해!, 아이스크림 좋아해!, 엄마도 좋아해!”
좋아하는 명단에 엄마도 끼어있어 다행입니다.
비록 버스, 아이스크림 다음에 간신히 나온 순번이지만 기억 속에 엄마가 있어 대 만족입니다.
엄마 얼굴 한번만 그려달라고 애원해보지만 꿈쩍도 않는답니다.
완벽하게 버스그리기를 끝내면 엄마의 초상화도 그려줄 날이 오겠지요.
유뽕아!
이왕이면 주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탱탱한 볼 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그려다오
제발!
2009년 9월 17일
유뽕이의 버스내부 그림 지켜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