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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304

유뽕이 시리즈 34 - 겁먹는 게 아니었어


BY 박예천 2010-09-09

  

       겁먹는 게 아니었어!


 


 

유뽕이는 동물울음소리와 기계소리를 아주 무서워합니다.

특히 소 울음소리와 미용실 머리 깎는 기계의 진동을 싫어하지요.

방학동안 집에서 뒹굴며 놀고 있는 유뽕이 머리카락이 길어졌습니다.

틈만 나면 유뽕이 귀에 대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엄마입니다.

“유뽕아! 오늘 미용실 갈까? 머리가 빗자루 같네.”

“싫어, 안가!”

단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내기 걸어도 꿈쩍하지 않네요.

머리카락이 자꾸 길어지면 사자머리 되고, 눈앞을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며 유뽕이 눈높이에 맞춰 열심히 설명해주었지요.

드디어 지난 주말 유뽕이가 마음을 굳힌 모양입니다.

엑스포광장에서 오토바이 태워준다는 엄마의 사탕발림이 통했어요.


미용실 의자에 앉았습니다.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거울을 보며 혼잣말만 계속합니다.

“움직이면 안 돼, 괜찮아, 따갑지 않아!”

미용사가 할 말을 유뽕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안심하려고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입니다.

자기 속에 갇혀있는 아이니까요.

중간에 몇 번 보자기속 손으로 눈을 비벼대는 바람에 난처했지만 끝까지 잘 견뎌냈습니다.

머리를 말끔하게 감고 나니 예전 엄마가 소녀시절 좋아하던 군인장교머리스타일이 되었네요.

유뽕이가 직접 만원 지폐로 계산하고 인사를 하게 했지요.

미용실문 열고 몇 발짝 걸어 계단을 내려오려는데 유뽕이가 던진 말에 엄마는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겁먹는 게 아니었어!”

정말 멀쩡한 녀석처럼 말했습니다. 속으론 놀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지요.

“그래, 이젠 괜찮지?”

유뽕이는 엄마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땅바닥을 향해 다음 말 이어갑니다.

“거봐, 안 무섭잖아!”

모두가 인터넷동화이거나 게임 속 대화들인 것을 엄마는 잘 알고 있지요.

어떻게 유뽕이 머릿속에 들어온 말들이든 적절하게 사용되어서 벅찬 것이 엄마 맘입니다.

몇 년의 언어치료에서 얻지 못했던 결실이 이제야 드러나는 모양이네요.


(작년에 찍은 사진이예요. 맨앞에 유뽕이 그리고 누나...뒷분들은 행인1,2....^^)

 

 

여름태풍이 속초에도 비를 뿌립니다.

엄마와 유뽕이는 집안에 꼭꼭 숨어 있어야 했지요.

갑갑한지 하루 종일 짜증을 냅니다.

엄마도 몸살과 배탈이 겹쳐 지쳐 가는데 유뽕이는 엄마에게만 투정부립니다.

심심한 엄마가 훌라후프를 돌립니다.

동그라미 안쪽에 볼록볼록 돌기가 달린 뱃살전문 훌라후프이지요.

곁에서 지켜보던 유뽕이가 엄마를 격려합니다.

“엄마 잘 컸네, 이뻐 죽겠어!”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들어 ‘이뻐 죽겠다’는 말을 곧잘 합니다.

뭐든 예뻐 죽겠답니다. 미워죽겠다는 공격적인 말보다 유순하여 다행입니다.


잠시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거실에서 끙끙 거리는 유뽕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왜 안 돼? 이거 안 돼!, 아이 아퍼!”

이따금씩 거실바닥에 뭔가 패대기쳐지는 소리도 납니다.

얼굴과 머리에 땀범벅이 된 유뽕이가 난리도 아닙니다.

커다란 엄마의 훌라후프를 돌려보려니 여린 뱃살도 아프고 돌아가지도 않아서 신경질을 부리는 중이지요.

엄마는 해보겠다는 녀석의 맘이 대견해서 냉장고 옆에 세워진 매끈한 훌라후프를 갖다 줍니다.

“유뽕! 잘 봐, 이렇게 허리하고 엉덩이를 크게 동그라미 그리는 거야!”

시범조교 엄마가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맘처럼 되지 않자 자꾸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립니다.

“싫으면 하지 마! 힘들면 안 해도 돼! 다음에 하자.”

“훌라후프 할 거예요!”


욕심이 너무 없어 걱정인 유뽕이었습니다.

누군가와 경쟁심도 지니지 못한 아이어서 엄마는 속앓이만  해왔지요.

무엇인가 동기부여가 있어야 학교생활에서도 즐거울 것이고 의욕이 생길 것이라는 전문가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우리의 유뽕군이 달라졌습니다.

오후 내내 훌라후프와 한판승부를 겨룹니다.

긴긴 여름해가 꼴깍 넘어가고 거뭇하게 어두워졌는데도 거실에서 뺑뺑이만 돌립니다.

저녁밥으로 돼지고기 넣고 김치볶음을 했지요.

늦게 오시는 아빠와 학원에 간 누나가 없어 엄마랑 둘이서 밥을 먹습니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거실로 달려가는 유뽕입니다.

훌라후프는 유뽕이 볼록한 배에서 다섯 번을 돌지도 못하고 거실바닥에 주저앉네요.

다시 동그라미를 빠져나와 밥 한술 떠 넣고 왔다 갔다 반복합니다.

“밥 다 먹고 해! 우리 아들 잘 하네!”

아!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칭찬을 미리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저녁밥 대충 먹은 유뽕용사가 거실에서 훌라후프 패대기치느라 여념이 없네요.

오후에 엉엉 울던 소리도 사라지고 그저 반복훈련중인가 봅니다.


유뽕이는 오늘, 또 한 가지의 겁을 덜어내는 일을 해냈습니다.

주문처럼 외쳐놓은 말이 효험이 있었네요.

‘겁먹는 게 아니었어!’

경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데, 하나하나 부딪혀보니 별게 아니라 여겼나봅니다.


정말이지 뭐든 겁만 내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뛰어들어 해보지도 않고 말이지요.

유뽕이는 몸도 맘도 축 늘어진 엄마에게 또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가슴가득 세상 헤쳐 나갈 용기를 심어주네요.



2009년 8월 11일

유뽕이가 훌라후프 도전한 날에.

0개
플러스 2009.08.13 20.02 신고
오랜만에 아컴에 왔더니.. 작가방 조회수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자두 얘기 쓰신 이야기에 작가방 조회수 답지 않게 육백이 넘어가는 조회수라니..무슨 큰 일이라도 있는 얘긴가 놀라서 클릭했네요..
그런데 그 밑에는 조회수 천이 훌쩍 넘는 것도 있고.. 작가방에 뭔 일 있었던 거는 아니겠죠..

예천님 글 잘 쓰시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불어난 엄청난 숫자에 홍수 난 마을 보듯 깜짝 놀랐던 플러스였습니다. ^^

시원한 파도랑 노니는 사진 속의 인물이 예천님이 아니셨군요. ^^
더운 날씨 속에서도 잘 지내고 계시죠?  
  박예천 2009.08.14 02.17 수정 삭제 신고
아! 플러스님 오랜만이군요.
조회수 말입니까? 그거 저도 의아한 일이라 여겼지요.
나중에 눈여겨 보니 아컴 메인창에 사진과 함께 글제목이 소개 되더군요.
그러니 당연 여러님들이 클릭을 하시게 되었고 조회수가 상당수 늘었을 겁니다. 저의 글이 좋아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ㅎㅎㅎ

플러스님! 자주 작가글방 나들이 오세요.
다른 님들도 참 그립습니다.
가을이 깊어져야 나오시려나......,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평범한 말을 남기네요....ㅎㅎㅎ
님도 남은 더위 잘 이겨내시길 빌어요.  
헤라 2009.08.13 18.34 신고
오랜만에 정겨운 글 읽고 갑니다..감정이 메말라 고민이었는데 즐거워요  
  박예천 2009.08.14 02.14 수정 삭제 신고
헤라님!
조금이나마 졸작이 님에게 도움을 드렸다면...., 오히려 제가 감사한 일이지요.
읽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초록이 2009.08.12 14.38 신고
훌라우프 돌리기에 도전하는 유뽕이가 대견하네요
하얀 파도 포말이 다시 동해로 달려가고 싶게 하구요
밤새 억수로 많이 오던 비가 오후 들어 그치고
매미소리만 가득한 오후입니다

정갈한 글씨체가 읽는 맛을 더해주네요 ^^  
  박예천 2009.08.14 02.13 수정 삭제 신고
제 글방에 꼭 오셔서 댓글 주시는 초록님의 배려깊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네요.
이제 가을 맞이할 날만 남았습니다.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