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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31 - 홀로서기


BY 박예천 2010-09-09

       

          홀로서기 

 


엄마는 또 새로운 모험을 꾸미고 있습니다.

몸 키가 커가는 유뽕이를 언제까지나 아기처럼 돌봐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일주일에 세 번 유뽕이는 인지학습지도를 받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생님 댁에 엄마차를 타고 가지요.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상가건물에 있는 미술학원에 갑니다.

지금껏 잘 태워주던 엄마가 생각을 바꿉니다.

결심하고 선생님과 작전을 꾸밉니다.

“선생님! 오늘은 유뽕이한테 혼자 걸어서 미술학원까지 가라고 해주세요! 차가 오가는 길이긴 하지만, 위험한 상황도 피해갈 수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제가 몰래 숨어서 뒤따라 가볼게요. 걱정 하지 마시고요!”

“네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보지요!”

걱정 마시라는 말씀에 힘을 주어 전했지만, 사실은 엄마 가슴이 더 콩닥거립니다.

무엇이든 처음 경험하는 일에 두려움이 큰 법이거든요.


선생님 댁 앞에 세워두던 엄마차를 저만치 보이지 않는 옆 동으로 숨깁니다.

시멘트벽 계단 난간사이에 기대어 유뽕이가 나오는지 바라봅니다.

시간이 되자 쪼르르 녀석이 튀어나오네요.

습관처럼 두리번거리며 엄마차를 찾는가 싶더니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갈까 걱정했는데 미술학원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몰래 미행(?)하던 엄마는 영화에 나오는 형사가 되어 이쪽저쪽 세워둔 차들 사이로 몸을 숨겼지요.

행여 들키면 어쩌나 길옆 자동차 곁으로 몸을 바싹 붙여가며 뒤따라갑니다.

지나가던 아줌마 한 분이 엄마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가네요.

뭔가 죄짓고 숨어 다니는 꼴로 보였나봅니다.


벌써 유뽕이는 아파트를 두동이나 지났습니다.

중간에 샌들 찍찍이가 헐거워졌는지 다시 동여매느라 엎드려 끙끙 댑니다.

달려가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참았지요.

다시 걷는 유뽕이.

한 동만 더 지난 후 길을 건너야 합니다.

조금 위험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지하주차장이 연결되는 곳이지요.

평소 유뽕이는 터널이나 지하실에 공포심이 컸습니다.

이런! 가던 걸음을 멈춘 녀석이 갑자기 지하주차장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게 아닙니까. 무서운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들어갑니다.

이쯤에서 나서야 할까 엄마는 고민되었습니다.

순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가 보이네요.

삐이-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보이자 몸을 움찔하며 유뽕이는 다시 걸어나옵니다.

숨어 지켜보던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지요.


유뽕이가 다시 걸어갑니다.

이제 오가는 차 피해 길을 건너기만 하면 됩니다.

후다닥 재빠르게 뛰어가는 녀석이 보이네요.

성공입니다. 미술학원 혼자가기 프로젝트는 기대이상의 결과였습니다.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인지 땀인지 뜨끈한 것이 엄마의 얼굴을 타고 내려옵니다.

서둘러 인지학습 선생님께 문자메시지를 넣었습니다.

유뽕이 성공적으로 미술학원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이 선생님 덕분입니다.”

금방 답장이 옵니다.

“축하드려요! 어머니가 고생 많으셨지요.”

서로의 수고라며 공을 돌립니다.

그렇게 유뽕이는 모두가 키워냈습니다.


미술학원 선생님께도 전화로 말씀드렸지요.

“오늘 유뽕이 칭찬 많이 해주세요. 혼자 걸어서 갔어요!”

피아노 선생님에게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따가 유뽕이 여기 오면, 미술학원 혼자서 간 거 꼭 칭찬해주세요!”

역사적 사건이 있어진 날 인 듯 엄마는 신이 났습니다.

아빠에게도 문자를 날립니다.

“퇴근해서 유뽕이 보면 꼭 칭찬해줘요. 미술학원 혼자 갔다구요!”

기특한 일을 하면 곧바로 칭찬 해줘야합니다. 그래야 효과가 크지요.


오늘은 두 번째 반복훈련입니다.

숨어 지켜보던 엄마가 잠시 한 눈 팔고 있는 사이 유뽕이가 사라졌습니다.

며칠 전 연습을 한 덕분인지 녀석은 쏜살같이 달려갔지요.

벌써 미술학원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왔답니다.

유뽕이 대단하지요?

다른 아이들에게 숨 쉬기 만큼이나 평범한 일들이 유뽕이에게는 역사적 사건이 됩니다.

매일의 삶들이 다큐드라마를 찍는 심정이 되지요.

하나씩 둘씩 홀로서기를 해가는 유뽕이가 대견합니다.

엄마는 하늘이 뚫어져라 소리쳐 외치고 싶답니다.

유뽕이 만세! 만만세!!!


 





2009년 6월 24일

미술학원 두 번째로 혼자 간 날에.




2개
초록이 2009.06.25 20.09 신고
유뽕이! 참 듬직하고 귀엽고 ,,,예천님도 대단하세요
전에 어느 동화책에서 비슷한 미행스토리를 읽은 기억이 나 미소합니다 ^^  
  박예천 2009.06.25 21.45 수정 삭제 신고
영혼을 울리는 동화 한 편 써보고 싶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꿈으로만 끝나버렸는지....저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네요 ㅠㅠ
어쩌면, 제 영혼에 덕지덕지 때가 끼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유뽕이와 저의 삶이 동화이려니 위로하며 살지요...^^  
  초록이 2009.06.26 08.47 신고
쓰실수 있어요 ,,, 우리가 살날이 구만리입니다보통 80까지들 사니까
쿨쿨 잠자는 희망과 자신감을 깨워 여전히 꿈을 꾸길 바래요
덕지덕지 ,,이런소리 하지말고 가장 소중한 인생의 친구인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시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감히 꿈꾸는데 ,,,ㅎㅎ
예천님의 영혼을 울리는 동화를 기대해 보는 금욜입니다 ^^  
모퉁이 2009.06.25 16.37 신고
"유뽕이 참 잘 했어요~~~ " 저도 칭찬 한 마디 보태고 싶네요. 예천님과 유뽕이의 모습이 그려져 가슴이 뜨겁습니다.  
  박예천 2009.06.25 21.43 수정 삭제 신고
정말 우리 유뽕이 잘했지요.
어제는 많이 더웠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을 녀석이 안쓰러웠어요.
그래도 냉정해져야 하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더군요.
평생 곁에 있어 줄 수 없기에....  
솔바람소리 2009.06.25 11.34 신고
후에 꼭 유뽕이 시리즈가 책으로 출판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유뽕이의 한발 앞선 발전에 저 역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 자리에 계신 분이 예천님이기에 가능한 일들일거에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예천님이라면 화장실 변기에 포말들이 피어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 없으신 분을 곧 개조 시킬 수도 있는 분이셔요.
더위 잘 이겨내시구요.  
  박예천 2009.06.25 21.41 수정 삭제 신고
책으로 엮어내기엔...많이 부끄러운 삶이지요.
그저....제가 견뎌내기 위한 깃점으로 삼고 싶어 유뽕이 이야기를 씁니다.
이렇게라도 퍼 옮기지 않으면 아름답게 쏟아내는 녀석의 말들이 사라질까봐요.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지요.
제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고요...ㅎㅎㅎ
오늘 정말 덥더군요. 유독 더위를 못견뎌 하는데 걱정입니다.
솔님도 건강 잘 챙기시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