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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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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28 - 엄마, 안녕!


BY 박예천 2010-09-09

    

             엄마, 안녕!

 

 

 

깨끗이 나은 줄만 알았는데 유뽕이 설사가 다시 시작됩니다.

화장실 들락거리며 실수해 놓은 팬티를 손수 빨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미안했는지 홀라당 벗어 세면기에서 주물럭거립니다.

괜찮다고 말해도 기운 없을 녀석이 빨래까지 합니다.


병원 다녀와서 학교를 결석하고 하루 종일 엄마와 쉬고 있었지요.

지난 일주일동안 세 번이나 파랑새반에 못 갔습니다.

곧 일박이일 캠프를 떠나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유뽕이와 함께 가기로 한 통합 반 친구도 있어서 빨리 회복을 해야 한답니다.

엄마는 정성들여 죽을 끓여 먹입니다.

멀건 죽만 먹으려니 맛이 없었나봅니다.

점심으로 한 그릇 상에 올려주니 인상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전기밥통을 가리킵니다.

“엄마! 쿠첸밥 줘요!”

밥솥이름 불러대며 된밥을 달라고 합니다.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지요.


저녁나절부터 약 잘 챙겨먹은 유뽕이 똥꼬가 뽀송해집니다.

걱정되긴 했지만 엄마는 유뽕이 캠프 배낭을 꾸렸지요.

속옷과 세면도구 각각 비닐봉지에 싸고 매직으로 ‘전 유뽕’이름을 썼습니다.

가방앞주머니에 만원을 접어 유뽕이 과자 값으로 넣었지요.

안심이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다짐하듯 녀석에게 확인시킵니다.

“유뽕아, 잘 봐! 잠 잘 때는 잠옷바지 입는 거야. 여기 양말보이지? 치약으로 치카치카도 꼭 해야 돼! 그리고....,”

정말이지 유뽕이가 기억해야할 것들이 넘치게 많습니다.

차라리 엄마가 배낭 속에 들어가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밤중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파랑새반 친구 효진이래요.

“유뽕이네 집이죠? 저기요, 같이 가기로 한 기락이가 전화번호 모른다고 저보고 해보래요.”

효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엄마는 기락이네 집으로 전화합니다.

“기락아! 전화 해 달랬다며? 왜 그러는데?” 

“저기요...., 유뽕이 이젠 안 아퍼요? 캠프 못 갈까봐서요.”

“아냐, 갈 수 있어. 대신 기락이가 유뽕이 좀 잘 챙겨줘 부탁한다.”

유뽕이 덕분에 서울근교 놀이동산에 가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될까봐 걱정 되었나봅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엄마는 슬그머니 한숨이 나옵니다.

유뽕이가 들었는지 크게 소리칩니다.

“한숨 쉬지 마!”

“미안! 근데, 유뽕아 너 캠프 가서 한밤 자고 올 수 있지? 누구랑 잘거지?”

“기락이랑 현정이랑 잘 거예요.”

현정이는 다리가 불편한 이학년 도움반 동생 이름입니다.

“아니, 남자끼리 자는 거야. 현정이는 여자잖아. 유뽕이는 남자니까 기락이랑 형아들과 자야 돼!”

“싫어! 현정이랑 잘 거야!”

녀석이 죽어도 현정이를 잠자리친구로 이름붙입니다.

자기가 오빠니까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혼숙(?)을 하겠다는 유뽕이에게 열심히 이해시키려니 슬슬 지쳐갑니다.

여자랑 자겠다고 종알거리다 쿨쿨 잠이 들었네요.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목요일 아침.

배낭 챙겨들고 엄마는 유뽕이와 학교 갑니다.

도움반에 여러 친구들이 벌써 와 있네요.

기락이도 귀 밑에 멀미밴드 붙이고 유뽕이를 반깁니다.

여러 번 같은 말 반복하며 엄마는 기락이에게 유뽕이를 당부합니다.

친구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키로 서있는 유뽕입니다.

작은 친구에게 부탁하려니 힘겹지 않을까 또 미안해집니다.


유뽕이가 좋아하는 ‘뉴통일관광’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거리에 다니는 버스회사이름은 거의 다 외우고 있는 녀석이지요.

지나가는 버스만 보면 멀리서도 회사이름을 다 외워버립니다.

“와! 파고다관광이다, 한아름관광이네!”

유독 교통기관 중 버스만 좋아한답니다.

배웅하려는 엄마를 외면하고 신이 나서 버스에 오릅니다.

서운해진 엄마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유뽕아! 잘 갔다 와. 엄마한테 인사 안 해?”

뒤돌아보지도 않고 목소리만 크게 외치며 냉큼 버스계단을 밟네요.

“엄마, 안녕!”


부르릉 버스가 떠났습니다.

빈차 운전하며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거세게 차 유리를 때립니다.

녀석에게서 해방되어 맘껏 자유를 누려보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엄마의 날이었습니다.

뭔가 알맹이가 쏙 빠져나간 허전함에 가슴이 먼저 들썩입니다.

엉엉 큰소리로 울어버렸지요.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잠시 눈물이 정신없이 쏟아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녀석이 벗어놓은 잠옷이 방바닥에 있습니다.

유뽕이 냄새가 나서 또 눈가가 뜨거워집니다.

고생길 군대 보낸 어머니들도 있다는데, 유뽕이엄마는 참 한심스럽네요.

갑자기 넘치도록 많아진 시간에 엄마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설거지를 해도, 청소하고 난 뒤에도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 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엄마의 전부는 유뽕이 녀석이었던 것을.

오늘 하루가 무지하게 길게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2009년 5월 21일에.

유뽕이 캠프 떠나보내며.


0개
모퉁이 2009.05.22 16.10 신고
큰댁 조카가 군대갈 때 형님이 따라가지 못했대요.다른 부모들은 부대까지 따라와서 눈물보이고 부둥키고 하는데 이 놈은 의연하게도 혼자 떠나게 되었는데 지가 눈물 보이면 엄마가 더 맘 아릴까봐 눈물을 꾹 참고 버스가 떠나려하자 엄마있는 곳으로 돌아보는데 그때 마침 같이 배웅나온 다른 부모 가족들과 잠깐 이야기 나누는 엄마(울형님)을 보게 되었다네요.그때사 왈칵 눈물이 나오더랍니다.내가 군대가는데 엄마는 웃고 있다고 생각했나봐요.저 엄마한테는 그 말을 못하고 내게 말하더라구요.형님이 들었으면 참 마음 아팠을 겁니다.유뽕이는 씩씩하네요.엄마 안녕~하고 울지도 않았잖아요.ㅎㅎ 잘 다녀오고 많이 클겁니다. 빈 자리가 허전했을테지만 까이꺼 이틀인데요 뭐...ㅎㅎ 남의 일에는 이렇게 웃지만 내 일이 되면 걱정되는 맘 알 지 요...  
  예천 2009.05.22 20.12 수정 삭제 신고
유뽕이 녀석 저녁에 학교 도착했기에 마중 나갔지요.
엄마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는 배신자랍니다 ㅎㅎㅎ
어쩐일인지 아프지도 않고 잘 놀더라는 선생님 말씀입니다. 물론 먹는것도 무지하게 잘 먹더랍니다. 에혀....엄마가 옆에 없어야 녀석이 사람꼴 되려는지요.
댓글 감사드리고, 편안한 주말 되시기 바랄게요^^
  
시선 2009.05.21 23.49 신고
캠프가서 잼있게 잘 지내고 있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배신은 얼마든지 때려도 괜찮지 않나요? ㅎㅎ 울둘째딸도 이박으로 갔답니다. 좀전에 잘있다고 전화왔는데 아주 신이났네요. 지언니는 아파서 학교도 몬가고 집에있는데ㅎㅎ 그래도 조금은 생기를 찾은듯 집안에서 돌아댕기네요. 아침만해도 널부러져 자고 있더니....유뽕이 잘 지내다 돌아올거에요. 모자 상봉이 그려지네요.ㅎㅎ  
  예천 2009.05.22 11.01 수정 삭제 신고
어제는 비가 내려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맑음이네요.
배신을 자주 때려주는 아들덕분에 여유가 생겨주니 괜찮은셈이지요ㅎㅎㅎ

시선님 방에 댓글을 보니, 포항사신다고 했는데.....
저는 왜 님께서 서울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생각해보니....., 막연하게 저만 속초라는 외딴지역에 있는듯 했고,
아컴의 모든분들이 서울에 사실것이라 여겼나봐요.
살구꽃님은 대전이라 하시고...언젠가 알게 된 것도 같은데,
제가 왜 이리 멍청해져 갈까요? ㅎㅎㅎ

아컴의 위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아니, 인터넷의 힘일까요.
한 공간 안에 머물 수 있게 되니 말이지요.
시선님과의 인연도 참으로 감사하지요.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기를 바랄게요.  
솔바람소리 2009.05.21 20.52 신고
고난의 연속이라고 아시는지요.
딸아이가 학원가고 난 시간에 국세청에서
날아온 공문에... 발끈+동동+좌불안석+망연자실...
혼자 별별짓거리(?) 다하다고 있었네요.
아이들만 데리고 멀리 떠나버릴까...
생각만 했습니다. 생각만... ㅎ
오늘 기다리던 어느 분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네요.
따로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살짝 미안한 마음이지만
이해해 주실분이셔요.
예천님께는 제가 두서 없는 별쓰절떼기 없는 말들을
쏟아놓고 마네요. 푼수떼기처럼...

분명 유뽕이 돌아와서는 더 많이 의젓한 모습으로
하루만에 보는 엄마에게 안기기보다 냅다 큰절을
하지 않을까...ㅎ
그런 과정들이 엄마는 자식을 떠나보낼 수 있기를,
자식은 부모 품을 떠날 수 있기를 준비하는 과정일거에요.

지금쯤 예천님은 유뽕이 걱정에 식사나 제대로 하셨나몰라요.
일부러 잠시 들어와서 살짝 글들이나 보다가 나가렵니다.
편한 밤 되시어요.
혹여... 오늘 아저씨와 하늘의 별을 따시지는 않으시려나...?
유뽕이 동생 생기는 것은 아닐까...?
잠시 19금 생각하며 나갑니다요.  
  예천 2009.05.21 22.37 수정 삭제 신고
솔님!
짧은 인생 돌아보니 저 역시도 나름 힘겨운 삶이었네요.
물론 더한 상황에서 이겨내며 인고의 세월을 사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제가 보아하니,
솔님은 아마도 평생 글을 놓지 못한채 부여잡고 끙끙 거릴분 같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과의 아픔들이나 고난이 모두 님의 글을 채워 갈
소재들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내 살아온 경험도 형편없을 진대, 무엇이라 위로나 해결방법을 제시 할 수 있을까요. 그저 최악의 상황이 닥치게 될지라도 극단적인 생각은 금하라 하고 싶네요.
벼랑끝까지 다다른듯 보이는 삶에도 분명 한줄기 희망의 실타래가 보일겁니다. 글이라도 놓지 마시기를 감히 떼써 봅니다.

울 유뽕이는 엄마를 외면한 채, 아주 잘 지낸다는 속보(?)가 전해졌지요.
사파리월드도 가고, 물개쇼를 보며 신이났답니다.
짜식! 배신을 때리는 군요. 엄마없으면 한순간도 못살듯 징징거리더니....ㅎㅎ

같이사는 아자씨와 별따는 일 절대 없을 겁니다.
둘 다 자기일로 정신줄 놓고 몰두해 있거든요....새벽까지요.
뭔 기력으로 별을 딴답니까 ㅎㅎㅎ
이렇게라도 웃으십시다요^^
가끔 발도장이라도 살아있다는 표시로 찍으시오....명령이욧!!!  
살구꽃 2009.05.21 17.08 신고
ㅋ저도 울아들 4학년땐가.학교서 처음 수련회 갈때.눈물이 나데요..집안이 텅빈거 같고 그렇지요.. 사람이 든자린 몰라도 난자린 표가나잖아요.제가다 가슴이 먹먹해지네요..유뽕이가 가서도 아프지 않고,잘있다 와야 할텐데요..울다르놈 요즘 학교서 10시30에 오면,잠자리는 12시도 넘어서 잡니다.저도 덩달아 늦게자구요..오면 허리아프다,손목이 아프다.. 그래내가 젊은놈이 머가그리 아픈데도 많냐구 퉁박주면서.주물러 줍니다요. 벌써 하루가 다가고,또 저녁할때가
돌아왔네요..저녁을 또 멀해 먹는담..ㅎ 벌써 유뽕이가 그리울걸요..^^  
  예천 2009.05.21 22.27 수정 삭제 신고
자식은 평생 부모의 근심거리라는 생각이 맞는 듯 합니다.
내내 걱정하고 있다 참지 못하고 오후에 전화를 넣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선생님으로부터 답을 듣고 나니 좀 안심이 되더군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낮동안 신나있는 것 같은데, 밤이 되면 잠이나 쉽게 들지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예민한 잠버릇이 있어서요.
에효....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