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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627

유뽕이 시리즈 25 - 뾰족방귀


BY 박예천 2010-09-09

        

             뾰족 방귀

 

 


신나게 놀았던 하루가 저물고 벌써 밤이네요.

엄마는 소곤거리며 유뽕이의 눈을 쳐다봅니다.

잠들기 전 둘이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녀석이 엄마 곁에 자기베개를 바짝 붙이고 다가옵니다.

코를 벌름거리거나 눈 깜빡이는 모습까지 다 보입니다.

낮 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자장가삼아 노래도 불러줍니다.

오후에 아빠와 갔던 동산이야기를 물어봅니다.

흰둥이 견우까지 등에 짊어지고 야생화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오늘 찍은 유뽕이와 견우 사진입니다^^)

 

아빠는 산을 좋아하십니다.

덩달아 유뽕이도 아빠 손을 잡고 험한 산에도 거침없이 올라가지요.

아홉 살 때 대청봉 정상에 오를 정도였답니다.


오늘도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살갗을 간지럽게 합니다.

점심으로 엄마가 만들어준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봄나들이 갔지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서야 아빠와 유뽕이가 돌아옵니다.

“어이! 배고파 죽겠어. 밥 줘!”

엄마만 보면 아빠도 유뽕이 처럼 애기가 되는 모양입니다.

저녁메뉴는 봄나물비빔밥입니다.

잔치국수 말았던 사기그릇 네 개에 고추장과 나물 넣고 고소한 참기름도 떨어뜨렸습니다.

달걀프라이 한 개씩 얹어 쓱쓱 비볐지요.

아빠와 누나, 유뽕이까지 볼이 미어져라 모두 잘 먹네요.


배불리 먹고 누웠더니 엄마도 스르르 잠이 쏟아집니다.

유뽕이를 토닥이다가 그만 부글거리던 뱃속에서 가스가 새어버렸네요.

“뽀~옹!”

잠들려던 녀석이 반짝 눈을 뜨더니 한마디 합니다.

“어? 뾰족 방귀네!”

방귀에도 모양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고 엄마가 물었지요.

“엄마 방귀는 뾰족 방귀야? 그럼 유뽕이 방귀는 무슨 방귀지?”

“유뽕이 방귀는 동그란 방귀!”

순간 엄마가슴이 뜨끔했답니다.

뾰족하게 날카로운 엄마성격을 말하는 것 같아서였지요.


동그란 방귀 유뽕이가 드디어 잠이 들었습니다.

녀석은 꿈속에서 자기가 만든 접시얼굴을 떠 올릴지도 모르겠네요.


어제 저녁 때 일입니다.

“엄마 접시 줘!”

엄마가 딴청을 하자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커다랗고 하얀 과일접시를 들고 옵니다.

가위와 풀도 준비하고 흰색 종이를 싹둑거리며 오려놓네요.

입으로 뭔가 중얼거리며 열중합니다.

“눈썹!”

반달 같이 꼬부라진 종이를 오렸지만 흰 바탕 접시라 눈에 띄질 않습니다.

얼른 항아리 뚜껑을 가져다주었지요.

“유뽕아! 여기에 붙여봐, 흰색이 잘 보일거야.”

좋아라 오려서 붙이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끙끙거리는가 싶더니 거실 책장위에 떡하니 올려놓습니다.

만족스러운 작품이라 생각되었나봅니다.

우와! 사람 얼굴이었네요.

동그랗게 웃고 있습니다.

방귀도 뾰족하게만 뀌는 엄마를 닮지 않고 서글서글한 눈매에 동그란 얼굴입니다.

동그란 방귀 뀌는 유뽕이 얼굴인가 봐요.

 


(유뽕이가 만든 접시 얼굴이지요. 뒤에 사람은 엄마랍니다^^)

 

유뽕이 만큼만 동그랗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속마음이 동그랗고 너그러우면 방귀도 동그랗게 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네요.

얼굴 동그란 녀석이 침대 위를 둥글둥글 굴러다니며 잠들었습니다.

뾰족 방귀 엄마도 슬슬 졸음이 쏟아지네요.

봄밤은 여름으로 깊어가느라 동그란 하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2009년 4월 18일에 뾰족 방귀 뀌다 유뽕이에게 들킨 밤에.

2개
라리 2009.04.20 17.56 신고
특별하고도 특별한 아이입니다.
동그란 방귀... 뾰족방귀...
저도 덩달아...
뾰족하다못해 여기저기 삐죽삐죽 모양새 없는 방귀 뀌는
제가 보여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비오는 오늘 바깥나들이도 못나가고 방바닥을 딩굴거리며 재미나게
노는 딸아이를 보며 참으로 민망해집니다.
저에게 기적과 살아나갈 힘을 주는 아이 앞에...
언제쯤이나 부끄러움없이 당당해질 수 있을런지...
언제나 부족하고 무지한 엄마입니다.  
  박예천 2009.04.20 20.26 수정 삭제 신고
라리님~!
어느 엄마도 자식앞에 자신있고 떳떳하다 여기는 사람 드물겁니다.
부족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겠지요.
저도 마냥 부족한 사람입니다.
날마다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며 시행착오 거듭하며 ...살지요.
우리 그렇게 삽시다.
실수 투성이여도 노력하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리라 믿으며.  
통통돼지 2009.04.20 15.52 신고
유뽕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것이 틀림없습니다.
엄마의 뾰족 방귀도 톡톡 다듬어 둥글게 만들어 주잖아요.
유뽕이 앞에선 가스 배출도 맘놓고 못하겠네요. 남편 앞에서 힘들게 방귀 튼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강적을 만나다니...
반가운 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분위기 죽이네~~
  
  바다새 2009.04.20 20.24 수정 삭제 신고
아무래도 유뽕이 어록을 따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불쑥 내밀어 놓는 녀석의 말들에 뜨끔해질 때가 많으니까요.
하늘에서 저에게 보내준 천사가 녀석인가 봅니다.
정신차리고 살라고...일침을 놓아주는 역할을 합니다요.
비.......정말 많이, 오래도 오네요.
이 비그치면....신록의 푸르름이 더 깊어지겠지요? 댓글 감사드려요.  
초록이 2009.04.19 15.20 신고
사실 오후에 밖에서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일이라기보다는 기분이 좀 꿀적지근해서 돌아 왔는데 ,,,바다새님의 포근한 글을 읽고나니 싸악 가셨어요 ^^ 방귀를 그리 묘사하다니 참 재미있고 순수하네요 동그란 하품~
유뽕이어머니도 금방 순수에 전염되시고 **^^** 유뽕이 귀엽네요  
  박예천 2009.04.19 21.43 수정 삭제 신고
저를..바다새로 불러주시니 친근함이 전해옵니다.
유뽕이 이야기는 녀석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한 글자도 덧 입히지 않고요.
초록이님 기분이 유뽕이로 인해 개운해지셨다니 저도 덩달아 힘이 납니다.
유뽕이에게 꼭 전할게요. 아컴 아줌마 한 분이 귀여워 한다고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시선 2009.04.19 00.47 신고
아~ 글이 넘 예뻐요~ 아빠와의 봄나들이에 울 유뽕이가 신이 났네요.ㅎㅎ 유뽕이 누구 닮았어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ㅎㅎ 행복해 보여서 저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유뽕아~ 알러뷰~~^^  
  박예천 2009.04.19 01.30 수정 삭제 신고
아! 시선님....피곤하실텐데...댓글까지 주셨네요. 우선, 감사드려요.
주말마다 아빠는 유뽕이를 데리고 산에 갑니다.
속초에 이사 온 것도 유뽕이 때문이지요.
자연을 벗하게 하는 것이 치료에 좋다는 우리 부부의 결론입니다.
산에 다녀오면 참으로 신기하게 유뽕이는 정리되어 깔끔한 말을 하지요.
맑은 공기가 치료약인가봐요^^
시선님도 속초로 이사오세요....몸도(?) 마음도 넉넉해진답니다.
편한 밤 되시구요!
꼬랑지~ 모두들 유뽕이는 우리부부의 업그레이드 작품이라고 하네요. 둘 다 닮았다는 말이겠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