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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447

유뽕이 시리즈 23 - 점점 멀어져가네


BY 박예천 2010-09-09

       

           점점 멀어져가네




아들아!

엄마가 세상 끝날 까지 네 곁에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래서 눈물겹지만 때로 차갑게 너를 밀쳐내는 연습을 하지.

홀로서기를 익혀야 험한 세상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휴일아침에 소시지반찬 먹고 싶다며 떼를 썼지?

처음으로 집 앞 슈퍼에 혼자 다녀오라는 말에 넌 마구 울었어.

주머니에 지폐를 넣어주며 여러 번 달래서 밖으로 내보냈다.

무엇이든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유독 공포심을 느꼈지.

어쩌겠니. 하나씩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하는 거야.

네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서 알아내는 일상생활이 학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거란다.

천천히 숨 고르고 반복해서 시도해보자.


차들이 오가는 길에 너를 내보내놓고 엄마도 실은 두려움에 떨었다.

몰래 숨어 뒤를 따라갔지.

평소 연습한대로 우리 유뽕이는 왼쪽 오른쪽 살피더니 길을 건너더라.

잘했다!

슈퍼로 들어가서는 무조건 소시지를 두리번거리고 찾았어.

한 개 집어 들더니 뚜벅거리며 계산대 앞으로 와서는 앞 손님이 돈을 치를 때 까지 잘 기다렸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을 뿐, 넌 필요한 물건을 고를 줄 알고 값을 치르기도 했다. 기특했단다.

돌아오는 길 역시나 숨어서 뒤따르는 엄마 가슴이 벅차올라 숨이 가빴던 걸  모르겠지?


엊그제 월요일부터 엄마는 너의 홀로서기 두 번째 연습을 시작했다.

인지학습 선생님 댁 가는 길 말이야.

공부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엔 혼자 잘 오면서, 늘 올라갈 때 엄마 손 놓지 못하는 너.

9층 아파트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 가는 것에 공포심이 느껴졌나 보다.

월요일에 유뽕이 너 마구 소리치며 울었지.

엄마가 다시 불러 차분히 귓속에 말해주니까 울음 멈추고 들었지?

“유뽕이는 혼자 갈 수 있지? 이제 진짜 착한 형아 되어서 잘 하지?”

울먹이는 와중에도 엄마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았어.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고 천천히 크는 유뽕이지만 퇴행하지 않고 전진한다는 걸 확신했지.

9층에 계신 선생님께 서둘러 전화를 드리고 혼자 찾아오는가 알려 달라 했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말씀에 안도의 한숨 쉬었고 또 언덕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풀어졌단다.


수요일인 오늘도 너를 밀쳐냈다.

처음보다 순순히 떨어지며 엄마에게 ‘안녕!’까지 하더라.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너.

문이 닫히는데 왜 엄마 가슴에선 쿵하고 돌덩이가 떨어지는 걸까.

점점 멀어져가는 아들이 낯설게 보이더라.

몸에 붙은 혹이 커져도 영원히 내 몸 일부인줄로만 알아 왔는데.


엄마는 마음이 가볍고 깊이가 없어 그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 변덕을 부렸단다.

피곤하고 예민해지는 날엔 너를 한없이 귀찮은 혹 덩이로 여겼다가,

기분 좋은 날엔 가장귀한 보석이었노라 입 맞추고 안아주었지.

자격도 없는 여자가 덜컥 어미가 되었으니 성품도 엉망이란다.

말이 없으나 속 깊은 유뽕이가 엄마 좀 용서해다오.

간사한 게 엄마 맘이구나.

홀로 일어서야 한다며 등 떠밀어 놓고는,

곁에서 멀어져 가는 너를 바라보며 왈칵 눈물 쏟다니.


유뽕아!

그래도 엄마는 네 앞에서 눈물 들키지 않았다.

네가 잘 해냈듯이 멀어져가는 너를 서운하다 말하지 않을게.

오늘 정말 대견했고 잘 했다!

고맙다 내 아들 유뽕!



2009년 4월 15일에

엄마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유뽕이 느끼며.

0개
통통돼지 2009.04.16 18.17 신고
기특한 유뽕이 입니다.
유뽕이가 엄마에게서 한 발씩 멀어져 세상으로 나아가면 그 뒷모습은 작아지는게 아니라 점점 커져 갈겁니다. 엄마의 빈 가슴을 두배, 세배의 사랑으로 채워 줄겁니다.  
  박예천 2009.04.16 20.07 수정 삭제 신고
저녁은 맛있게 드셨는지요?
방금 유뽕이 시리즈 24편을 지어볼까 어쩔까 컴을 켰는데....왕팬이신 통통님 글이 있네요.
유뽕이는 행복한 녀석입니다.
이렇게 아컴 아줌마들의 응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으련만.
꼭....잘 되어가는 모습 보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상황보고를 하는셈 치고 유뽕이 이야기는 계속 써야 겠네요..ㅎㅎㅎ
핑계가 그럴싸하지요?
댓글 감사드리며....편안한 저녁 맞으시길....  
헤린 2009.04.16 16.35 신고
예천님이 자격없는 엄마시라면 나같은 것은 의붓 엄마도 아닌 거죠. 에혀...
새끼 생각하면 왜 이리 가슴이 아린지...
뭘 먹어도 잠이 들어도 뭔 생각을 하고 있어도 연필 꼭지 빨며 수학을 풀고 있어도 왜 이리 새끼는 짠한 존재인지... 이거 저 청승 떠는 거 맞죠?
유뽕이 어무이, 쵝오!!!^^ 유뽕이도 쵝오!^^  
  박예천 2009.04.16 20.04 수정 삭제 신고
여자라서 행복해요!!! 언제?.....엄마가 되게 해준 녀석이 있어서죠.
님도 그러실 겁니다.
저같은 부실한 존재에게 새 이름을 지어준 딸과 아들 덕에 못먹어도
배부르고 든든하지요.
청승 많이 떨어도 괜찮습네다.
이럴 때나 해보는 짓이니까요..ㅎㅎㅎ
우리....엄마덜 힘냅시다....빠샤!!!  
햇반 2009.04.16 16.21 신고
유뽕이의 홀로서기를 기대합니다
님의 사랑과 정성이라면 당연히 유뽕이도 마음이 놓입니다^^  
  박예천 2009.04.16 20.01 수정 삭제 신고
아...햇반님.
늘 짧으나 깊이 있는 글로 작가글방을 채워 주시는 분.
아들이 홀로서기 잘 하도록 차근히 노력할게요...댓글 고맙습니다.  
시선 2009.04.15 22.57 신고
기특한 유뽕이...꼬~옥 안아주고 싶어요. 그리고 유뽕엄마도....
가슴이 뭉클~ 눈물이.... 유뽕엄마 책임지셈~

유뽕인 다 알거에요. 엄마의 마음을......
예천님~ 우리 유뽕이 세상과 맞서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또 힘내셔야죠?
우린 엄마잖아요........  
  박예천 2009.04.15 23.53 수정 삭제 신고
시선님! 많이 피곤하시죠?
유독 님의 바쁜일상이 가슴에 걸림이 되곤 합니다. 동병상련의 맘일까요.
그래서 유뽕이와 저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읽으시는지도.
지켜보는 시선님과 같은 분들이 곁에 계셔서 힘을 얻습니다.
저....괜찮아요. 녀석이 잘 버텨주리라 믿는답니다.
시선님도...힘내세요! 기를 팍팍 넣어드릴게요...빠샤, 빠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