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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8 - 태극기 휘날리며


BY 박예천 2010-09-09

 

 

        태극기 휘날리며

 

 

 

 

유독 한 가지 물건이나 사건에 집착성이 강한 유뽕이.

그런 성향 때문에 웃지못할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유치원 다닐 무렵.

태극기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에 엄마가 문구점에서 작은 걸로 하나 사다주었습니다.

플라스틱 국기봉이 시원치 않았는지 곧 부러지고 말아 기다란 나무에 다시 매달았지요.

잠잠했던 유뽕이의 태극기 사랑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며칠 전 주말부터 유뽕이는 태극기를 찾습니다.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는 유뽕이가 땀 뻘뻘 흘리며 뭔가에 열중해 있는 모습을 봅니다.

나무로 바꿔준 국기봉이 망가졌는지 종이를 돌돌 말아 투명테이프로 붙여대느라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다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튼튼하게 묶어주었지요.


“엄마!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말을 마치자 유뽕이는 바람을 찾아다닙니다.

여름엔 종일 선풍기 앞에 태극기를 들이대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엄마는 알고 있지요.

유뽕이의 생각 속에서 태극기는 날마다 펄럭여야 한다는 사실을.

“유뽕아! 겨울이라 선풍기 없어. 그냥 손으로 이렇게 흔들어보자.”

쉽게 단념할 녀석이 아닙니다.

“엄마! 부채해줘!”

부채라도 찾아와 부쳐달라는 말입니다.

책꽂이위에 놓았던 부채를 들고 바람이 된 엄마가 팔이 떨어져라 부쳐댑니다.

몸살이 오려는지 으슬으슬 한기가 돌고 두통과 콧물까지 겹쳐 아프기 시작하네요.

엄마는 누나에게 부채를 넘겨줍니다.

“선뽕아! 네가 바람 좀 만들어 줘라. 엄마 어지러워 좀 누울게.”

착한 누이가 바람주도권을 물려받아 열심히 거실에서 바람이 일어나게 합니다.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풀썩 침대위로 쓰러집니다.

얼마 전부터 온몸에 기운이 없어지고 피곤하다 느꼈는데 봄맞이 몸살인가 봅니다.

스르르 잠이 오려는데 갑자기 아빠가 소리쳐 부릅니다.

“여보! 나가 봐. 유뽕이가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구.”

몸을 일으키기 힘들 정도로 늘어져있는데 자꾸 채근하며 부릅니다.

간신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지요.

어느새 부채질하던 누이도 사라졌고 유뽕이모습도 보이질 않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되묻는 엄마.

“어딜 보라는 거예요? 유뽕인 어디 간 거야?”

“내방 앞 베란다 창문을 보라구!”

 


입이 떡 벌어질 광경이 엄마 눈앞에 들어옵니다.

우리의 애국소년 유뽕이가 창문에 달린 방충망도 걷어 제치고

알록달록 내복만 입은 채로 배를 불룩 내밀고 서있습니다.

국기꽂이에 태극기 자랑스럽게 걸고 불어오는 찬바람을 온 몸으로 들이마십니다. 키가 작으니 의자를 동원해서 올라섰지요.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무더기가 유뽕이 마음이 흡족하도록 태극기를 펄럭여줍니다.

입이 귀에 걸려라 행복한 표정입니다.

아파트가 일층인지라 지나가던 행인들이 좋은 구경이라도 되는 듯 쳐다봅니다.

슬쩍 집안을 들여다보는 아저씨도 있더군요.

저건 뭔 짓이야 하는 얼굴입니다.

부모들은 뭐하기에 아이혼자 창문열고 애국자가 된 걸까 하는.

오늘이 국경일인가 고개 갸웃거렸을지도 모릅니다.

다음날 또 하자는 약속 걸고 간신히 유뽕이를 거실로 유인했습니다.

 


역시나 약속은 함부로 남발하면 큰일 납니다.

어제의 약속을 기억해내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태극기 찾습니다.

또다시 창문열고 의자위에 올라가 배를 내밀 작정인가 봅니다.

특수치료실 갈 시간이 임박해오자 슬슬 유뽕이를 달랬습니다.

“엄마차 타고 가면서 펄럭하자. 창문 열고 태극기 내밀면 되지!”

순순히 따라나서며 태극기는 꼭 챙깁니다.

아파트단지에서 시동 걸자마자 조수석 창문을 내리는 유뽕이.

태극기를 차창 밖으로 내밀며 좋아라 웃습니다.

오한이 나고 목안이 따끔거리는데, 차안으로 휑하니 들어오는 바람이 뼛속깊이 스밉니다.

“이 녀석아! 엄마 춥다. 엉엉엉!”

거짓으로 우는 척하니 신호대기 중에만 차창유리를 올려줍니다.

차가 출발하자 다시 열리는 창문.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죄다 한 번씩 힐끗 쳐다봅니다.

엄마는 이미 두꺼운 얼굴 된지 오래인지라 정면만 보고 굳세어라 운전합니다.


태극기 사랑 유뽕이 녀석으로 인해 며칠 동안 애국심에 달뜬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차라리 선풍기를 설치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해봅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누가....., 이 노래가사 좀 바꿔 주세요!



2009년 2월 9일에 애국자 유뽕엄마.

 

0개
헬레네 2009.02.11 21.31 신고
대단한 유뽕이 3.1 절이 다가 오는걸 아는겁니다 .
올해는 어려운 경제 때문에 다들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는 유뽕이의
생각에 박수를 ,,,,,,,,,  
  박예천 2009.02.11 21.52 수정 삭제 신고
푸하하하!!! 헬레네님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해석을 하시다니...저도 님의 풀이 믿고 녀석을 대견해 하렵니다. 생각맑은 유뽕에게 늘 배우며 사는 어미랍니다^^  
오월 2009.02.10 23.30 신고
아고 1층이라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슴이 철렁 했어요 우리의 멋진 2대8 아저씨 제발
위험한 짓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마을마다 집집마다 펄럭이는 태극기 웃고 갑니다 ㅎㅎㅎㅎ  
  박예천 2009.02.11 00.05 수정 삭제 신고
아~~~! 오월님. 몸살끝이라 그런지 늘어지네요. 잠이 오질않아 글이라도 엮어볼까 자판을 두드리니 진액이 다빠진 느낌입니다. 여기저기 눈팅만 하고 있네요. 유뽕이 곁에가서 다시 잠이나 청해볼까봐요. 글이 안써질 땐 탱자탱자 놀면 되죠 그쵸? ㅎㅎㅎ 편한 밤 되세요. 님의 글 읽었어요... 따뜻한 분!!!  
라리 2009.02.10 13.59 신고
^^ 유뽕이 최고네요 뭐^^
엄마가 좀 몸이 고달프고 많이 괴롭지만...ㅎㅎㅎ
너무 귀엽네요.
그나저나 너무 태극기에 집착해서 사고나 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네요.  
  박예천 2009.02.10 14.24 수정 삭제 신고
라리님...귀여운 꽁쥬님은 잘 크고 있는지요? 자식 바라보는 어미 마음 모두 같을 겁니다. 유뽕이의 눈높이에서만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세상이 참 아름답기만 할텐데....늘 이런생각 합니다. 유뽕데리고 오후 치료길 떠납니다. 댓글 감사드려요....엄마들 파이팅~!!!! 아자아자!!!  
통통돼지 2009.02.10 10.03 신고
ㅎㅎㅎ 유뽕이가 아직 2절 가사는 모르나 보네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펄럭입니다'
가르쳐 줄까요 말까요? ㅋㅋㅋ  
  박예천 2009.02.10 13.48 수정 삭제 신고
켁!!!@.@ 제발요 통통님. 2절에도 또 펄럭여야 한단 말입네까?ㅋㅋㅋ 오늘 현재까지는 태극기를 찾지 않네요.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아직 차창너머 바람이 차거든요.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