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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551

유뽕이 시리즈 16 - 나사 돌려요!


BY 박예천 2010-09-09

          

         나사 돌려요!

 

 


엄마는 멋진 남자를 좋아합니다.

특히 기계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 홀딱 반해버리지요.

얼굴에 기름때 묻히고 땀 흘리며 컴퓨터나 가전제품 분해하는 아빠모습도 매력적이라고 말한답니다.

전등불 잘 갈아주고 고장 난 물건 척척 고쳐주는 남자가 최고래요.


그런 엄마의 속마음을 잘 아는지 유뽕이는 요즘 따라 아빠물건에 자주 손을 댑니다.

먼 곳에서 근무하느라 일주일에 한번 보는 아빠는 유뽕이의 만행(?)을 모르지요.

아빠 서재의 문을 여는 일은 엄마도 주저하며 내키지 않아한답니다.

유뽕이는 불쑥 들어가 아무 물건이나 집어 들고 나옵니다.

특히 십자드라이버를 자주 만지작거립니다.

며칠 전부터 유뽕이는 드라이버를 들고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집안 곳곳에 나사 있는 곳만 찾아다닙니다.

문짝 옆 손잡이 걸리는 금속부분에도 나사가 있네요.

힘껏 풀어놓습니다.

쇳덩이가 덜렁거리며 금방이라도 떨어 질것만 같습니다.

엄마는 하이소프라노음성으로 유뽕이 째려보며 드라이버를 뺏어들지요.

다시 조여 놓고 제자리에 가져다 두라고 타이릅니다.


유뽕이의 십자드라이버는 공포의 도구가 되어갑니다.

엄마는 우리 집에 나사가 이렇게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유뽕이가 풀어놓은 곳을 따라다니며 조여 댑니다.

녀석의 배가 나오면서 바지도 조이는 걸 싫어하더니 전부 풀어놓을 작정인가 봅니다.

아빠서재에 가구들도 모서리마다 나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책꽂이가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연구하는 자세로 몰입하며 나사를 풀어놓습니다.

드라이버에 집착하는 녀석의 짓궂은 장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엄마가 힘에 부쳐 헉헉거립니다.

  

일주일전 일입니다.

아침 일찍 잠이 깼는지 유뽕이가 엄마 곁에 없습니다.

늦게 잠든 엄마 눈이 떠지질 않습니다.

꿈속인 듯 몽롱하게 침대위에서 뒹굴 대고 있었지요.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설악산 흔들바위가 유뽕이네 거실로 내려앉았나 싶을 정도였지요.

엄마는 잠이 확 깨는 기분이어서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달려갔습니다.

이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 뭡니까.

바로 유뽕이 발 앞에 거실 장식장 유리가 덜컥 누워있는 겁니다.

다행이 발등 찍히지 않고 유리도 깨지지 않았지만,

엄마 가슴이 깨져 둥둥 북을 치고 있었지요.

소리치거나 하면 유뽕이가 놀랄까봐 겉으론 태연한척 녀석에 손에 들려있던 십자드라이버를 빼앗았습니다.

“괜찮아 유뽕아! 엄마가 고쳐놓을게. 잘 봐!”

우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속으론 유뽕이 꿀밤을 열대는 더 때렸답니다.

‘으이구! 쥐방울만한 녀석! 아빠 오시면 다 이를 테다.’


그렇습니다.

탐구심 강한 우리의 유뽕군!

장식장 유리문 경첩을 발견한 것이지요.

두 개씩 박혀있는 나사를 완전히 풀어놓았더군요.

덕분에 유리문은 거실바닥 위로 넓적하게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녀석의 마음도 알만합니다.

조여 놓은 나사가 얼마나 갑갑하게 느껴졌으면 땀을 뻘뻘 흘리며 풀어놓고 다녔을까요.

유뽕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란 그저 너그럽고 헐겁기만 하답니다.

오랜만에 크게 웃어 본 아침이었지요.




2009년 1월 28일 잠든 유뽕이를 쳐다보며.

0개
오월 2009.01.31 11.34 신고
늘 긴장의 연속이시겠어요 우리 유뽕이 다칠까 걱정됩니다
잘 감시하세요 ㅎㅎㅎㅎ 새해 복도 많이많이 받으시고요.  
  박예천 2009.01.31 14.01 수정 삭제 신고
그러게요....다행이 아무 사고 없이 잘 견뎌주고 있답니다^^ 하늘이 돕고 있겠지요. 늦었지만 저도 인사드립니다. 오월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ㅎ  
헬레네 2009.01.30 00.09 신고
님이 가야금을 배운것은 현의 미세한 떨림을 느낌으로 배우며
마음을 다스리는법도 함께 배우라는 어느분의 계시가 있었던건 아닌지요 .  
  박예천 2009.01.30 00.19 수정 삭제 신고
계시라는 말씀은 좀 거대한 표현같습니다. 다만 우연찮게 가야금을 접하게 되었고 현을 뜯다보니 가야금속에 인생이 묻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매력이 느껴질 만큼 끌리는 악기였습니다. 눌리고 쫓기며 살아 온 제 인생에 쉼을 가져다 준 것이 가야금 이었죠. 실력이 늘어 간다는 것 보다 제가 위로받고 있다는 강한 힘에 이끌려 현을 뜯습니다. 듣는 사람이 어떤 느낌 갖게 될지 모르나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맘이 편안합니다. 농현...살면서 얻어야 하는, 제 전 부로 울며 겪어야 할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통돼지 2009.01.29 11.54 신고
유뽕이의 관찰력이 날카롭군요. 엄마의 눈이 가전제품 고치는 아빠를 볼때 유난히 반짝거린걸 알아차린 거지요. 아빠만 멋지다 하지 마시고 유뽕이도 멋있다고 해주실걸...
예천님은 득도 하신게 틀림없습니다. 유리문이 넘어져 있는걸 보고도 웃으시다니요. 아니, 신은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시험을 주신다는게 맞습니다요.  
  박예천 2009.01.29 23.58 수정 삭제 신고
통통님 오셨군요. 역시나 유뽕이 팬은 님 뿐이라니까요 ㅎㅎㅎ 댓글 썰렁한 제 글들은 단골손님 통통님 덕분에 겨우 연명하네요.. 고맙습니다. 고객님!^^ 참,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몸이 좀 불편하셨던 것으로 아는데....괜찮으시죠? 모습 뵌 적 없지만 참 다정다감하신 분 같습니다. 건강하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