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
소근육 발달이 되지 않은 유뽕이 때문에,
엄마는 시시때때로 가위를 쥐어주며 연습시킵니다.
종이를 오리게 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미용실 가는 날.
엄마와 유뽕이가 한판 전쟁을 치르는 날입니다.
머리카락이 널브러진 바닥을 뒹굴며 악을 쓰거나 나중엔 토하기도 합니다.
세 사람정도 힘을 모아 유뽕이를 꼭 잡아주어야 머리 깎기가 가능했지요.
석 달에 한번쯤 그날이 되면, 가슴에 숙제더미가 눌려있는 기분이었답니다.
이제 그 일들은 추억이 되어갑니다.
기대하지 않은 유뽕이의 행동들이 보여 질 때 마다 뜨겁게 벅차오르곤 합니다.
늦게나마 가위질을 익힌 유뽕이가 날마다 엄마를 놀라게 한답니다.
요즘 유뽕이는 가위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기 스타일 구상에 바쁩니다.
올봄에 향기로운 꽃가지를 내밀었던 풍란 잎 새가 송송 썰어져 있기도 합니다.
정성들여 가꾸며 날마다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였건만,
어느새 유뽕이녀석이 침엽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잎이 동그스름한 풍란 잎이 소나무 잎처럼 날씬해져버렸지요.
가위손의 활약이 점점 대범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화분 밑에 떨어진 풍란 몸 부스러기를 치우는데,
떡 벌어진 엄마 입은 턱이 빠졌는지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화초 망가뜨린 걸 혼내야하나,
가위든 것을 기뻐해야하는지 사건발생 일주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답니다.
어제아침, 누나 방에서 부리나케 뭔가를 들고 주방 쪽으로 내달립니다.
식탁에 앉더니 간식용 소시지를 싹둑싹둑 썰어댑니다.
공작용 가위를 들고 소시지를 쥐똥마냥 잘라놓는 것입니다.
접시에 소복하게 쌓인 소시지 가루(?)를 집어먹기 시작합니다.
꽤나 즐거운 표정이 됩니다.
가위질로 건방을 떨어대는 단계까지 돌입했다는 얘기지요.
문제의 ‘가위사건’이 일어난 것은 소시지 난도질범행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녀석의 귀가시간에 맞춰 평소대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을 들어서는 승합차가 보입니다.
내리자마자 슈퍼로 줄행랑을 칠 것이 뻔하기에, 주머니 속에 잔돈을 넉넉히 챙겨왔습니다.
차문이 열리고 폴짝거리며 내리는 유뽕이 얼굴이 보입니다.
아~! 저 밤톨이는 누구란 말입니까.
앞머리부터 정수리부분까지 쥐 파먹은 모양으로 잘려나간 머리를 하고 있으니.
분명 저것은 장인의 솜씨가 아닙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보낸 장문의 편지가 없었다면,
폭군에게 시달렸거나 고문당한 희생자로 여겼겠지요.
색종이 오리기 시간에 잠시 다른 아이 활동을 도와주는 순간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거울 앞에서 제 머리 스스로 깎는 미용사놀이를 해 본 것이지요.
짜식! 이왕지사 손을 대려면 말끔한 스포츠형으로 하던지.
아들의 머리모양을 지켜보며 그저 어이없이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하루해가 넘어가는 지금.
엄마는 슬슬 두려움 섞인 기대감에 떨기 시작합니다.
가위손 아들의 창작예술을 지켜볼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들아! 제발, 살아있는 것은 오리지 말아다오.
정말 버려야하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시원스레 잘라내 주렴.
밤톨이의 귀가시간이 임박해지고 있습니다.
간식으로 감자전이나 부쳐놔야겠습니다.
부침개는 가위로 오려먹지 말기!
2005년 7월 첫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