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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7 - I like soup!


BY 박예천 2010-09-09

                     

            알 락크 슾!

 



유뽕이가 힘들었을 겁니다.

주말에 원주 할머니 댁에 다녀오고,

연이어 월요일부터 이어지는 빡빡한 스케줄.

그리고 식목일도 거르지 않고 등산을 했지요.

수요일오후,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아픈 것 같다는 군요.

태권도도장을 하루 쉬게 했습니다.


그날 밤부터 유뽕이의 열감기가 시작되었지요.

새벽 두시쯤 토하기 시작하더니, 설사까지 겸합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아침에 소아과에 갔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장염을 동반한 열감기랍니다.

그런 것은 유행을 따라하지 않아도 되건만.


몸이 아프니 평소에 야생마였던 녀석이, 유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몸속의 것을 다 쏟아낸지라 푹 쳐져서 끙끙 앓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겨우 보리차로만 연명합니다.

정성들여 찌운 살이 이번감기로 다 날아갑니다.

측은하고 가엾어 대신 아프고 싶은 게 어미의 마음입니다.

이틀밤낮을 앓던 녀석이 오늘 오후부터 식욕을 찾았는지,

슈퍼에 가자고 합니다.

좋아하던 망고주스 한 병과 오백 원짜리 쵸코과자를 집어 듭니다.

간신히 오물거리며 먹더니 다른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더군요.


무얼 먹여야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미음이니 죽이니 끓여줘도 도리질만 합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열이 좀 내리니 엄마를 향해 외칩니다.

“엄마, 알락크 슾 해줘!”

첨엔 뭔 말인가 알아들을 수 없어 다시 되물었죠.

분명히 알락크슾(I like soup!)이었습니다.


누나의 유치원 시절.

영어시간에 나누어준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외국인 발음입니다.

장난삼아들으며 따라하더니,

불쑥 스프가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거라도 먹겠다는 표현이 대견해 엄마는 알락크슾을 끓입니다.


기운을 차린 유뽕이가 컴퓨터를 켭니다.

잠시 후,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달려오더니 손수건을 달라고 징징댑니다.

물을 흘렸나 생각하며 손수건을 쥐어주고 슬쩍 엿보러 와보니,

모니터를 힘차게 닦습니다.

처음엔 화면이 지저분해 청소라도 하는가 싶었지요.

자세히 살펴보던 엄마는 깔깔 웃습니다.

인터넷동화가 나오는데, 그림 속에서 까마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웁니다.

그 눈물을 닦느라 손수건이 필요했던 거지요.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더니,

슬픔을 닦아낼 줄도 알게 되었나봅니다.

엄마는 늘 이렇게 아이 때문에 울고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