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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5 - 껍데기 찾아서


BY 박예천 2010-09-09

             

           껍데기 찾아서

 

 

 



유뽕이가 태권도도장에 다닌 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차량지도 사범님에게 몇 마디씩 물어보니 형편없는 수준인가 봅니다.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군요.

공 던지기를 하면 구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주워올 생각이 없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지만, 사실로 확인되니 힘이 빠집니다.

기분을 내색할 수 없음은 엄마라는 위치 때문이지요.


어제 오후, 선뽕이 누나와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태권도도장 위치한 건물을 지나치는데,

흘깃 시계를 보니 녀석이 그곳에 있을 시간입니다.

오전에 감각치료 끝내고, 유치원으로 갔다가 네 시쯤 다시 체육관에 갑니다.

피곤에 지쳐있는 녀석의 고된 나날을 덜어주고 싶습니다.


근처에 다다르니 아들의 태권도하는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살짝 엿보고 싶어 엄마는 안달이나기 시작했지요.

궁리 끝에 엘리베이터 5층을 눌렀습니다.

딸아이를 복도 끝 빈 의자에 앉아있게 하고, 체육관 문 쪽을 기웃거렸습니다.

아들과 사범님의 구령소리가 이따금씩 밖으로 새어나옵니다.

세 개중 하나의 문만 열려있었지요.

열린 곳으로 행여 고개를 들이밀면

엄마를 알아보고 뛰쳐나올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그냥 돌아 나오려는데, 손잡이 망가진 문이 보입니다.

오 백 원 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겨우 한 쪽 눈만 바싹 붙이고 들여다봤지요.

아! 하얀색 띠를 허리에 질끈 동여맨 일곱 살 정의의 태권 동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숫자만큼 물건을 들고 오라는 지시인지,

왔다갔다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물론 두개이상은 다 엉터리로 들고 옵니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일까요.

답답해 할 사범님이나 밖에서 안타깝게 훔쳐보는 엄마 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넓은 체육관에서 다른 아이들과 있던 녀석과 눈이 딱 마주쳤지 뭡니까.

성큼성큼 문구멍으로 다가오는 아들.

잠시 망설였습니다.

도망치듯 나와 버릴까, 그러면 문 밖으로 나와 볼 텐데.

얼떨결에 손바닥을 펴서 구멍을 꼭 막아버렸습니다.

안보이면 다시 돌아가겠지. 


몇 초가 흘렀을까요.

다시 돌아갔나 생각할 즈음, 손바닥느낌이 이상합니다.

세상에! 유뽕이녀석이 제 손가락으로 엄마의 손바닥을 뚫어져라 후벼 파고 있는 겁니다.

작업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보입니다.

구멍에서 손을 떼고, 녀석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함박꽃마냥 환하게 웃습니다.

제 껍데기인 엄마를 찾았다는 표정이지요.

엄마는 알맹이 아들을 향해 작게 속삭였습니다.

“어서 가! 짜식아......얼른 가서 태권도 해!”

빙긋 웃기만 할뿐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활동이 중단되고 문 앞에서 떠나지 않는 아들 녀석 때문에,

복도를 향해 걸어 나온 사범님.

결국 엄마는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촌스런 바가지 머리만 긁적였습니다.

“시장 다녀오다 잘 따라하는지 궁금해서요. 헤헤헤”

“들어와서 보세요!”

“아뇨, 녀석이 엄마 따라 나설 것 같아서요. 그냥 가겠습니다.”


핏줄이 당겨 눈동자 하나만 보고 달려온 유뽕이입니다.

껍데기 엄마는 아들을 향해 구멍 속으로 외칩니다.

“이따가 봉고차타고 와. 잘하고 오면 아침햇살(요즘 젤 좋아하는 음료) 사줄게.”

태권 동자 알맹이를 체육관에 두고,

껍데기만 황사바람에 휘청거리며 걷습니다.

 

잠시 후 돌아온 알맹이와의 합체를 꿈꾸며 마트에 아침햇살 사러갑니다.



200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