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아파요!
솔솔 가을바람을 타고 멀리 설악산 단풍이 유뽕이네 집 앞까지 내려왔습니다.
놀이터 옆 떡갈나무 잎이 물들고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들도 노란 때때옷을 차려입었지요.
날마다 이것저것 잘 먹는 유뽕이 엉덩이도 토실토실 살이 올라 걸을 때마다 오리마냥 뒤뚱거립니다.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달려가는 모습이 가을햇살에 잘 익은 밤톨 같습니다.
오후쯤 집에 돌아온 유뽕이는 유치원가방을 내던지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변기위에 앉더니 급하게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응가 해줘.”
자기 배를 만져주며 같이 힘을 주는 시늉을 하라는 말이지요.
바닥에 쪼그리고 앉으신 엄마는 유뽕이 배를 쓸어내리며 박자를 맞춥니다.
“응가! 한 번 더, 응가!”
엄마는 숨을 힘껏 몰아쉬며 유뽕이 보다 더 심각하게 힘을 줍니다.
일을 마친 뒤 물을 내리며 자기 몸에서 빠져나온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응가야 안녕! 잘 가, 내일 또 만나!”
친구사귀는 법을 익히더니 자기 똥에게도 말을 걸어봅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안방으로 냅다 달립니다.
엄지와 루길이 말고도 집안에 친구는 또 있지요.
어쩌면 유뽕이와 제일 오랫동안 사귄 친구인지도 모릅니다.
네 살 때부터 틈만 나면 마주보고 눈인사를 나누었지요.
컴퓨터를 켤 때 유뽕이 얼굴은 모니터화면 보다 더 환해집니다.
어느 날은 동요를 불러주고, 또 어떤 날엔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줍니다.
컴퓨터친구가 있어서인지 유뽕이의 호기심은 자꾸만 늘어갑니다.
오늘은 인터넷 검색창에 ‘똥’이라고 쳐 봅니다.
방금 헤어진 자기 똥을 컴퓨터 친구에게 불러오라는 뜻인가 봐요.
사실 친구사귈 줄은 알지만 사랑해주는 법을 익히지 못한 유뽕이지요.
어느 날은 작은 엄지 등에 올라타고는,
“유뽕이 말 타요. 뚜구뚜구 해요.” 하는 통에 엉덩이 밑에 깔린 엄지만 불쌍하답니다.
루길이에게도 먹이 한통을 다 쏟아 부어 어항 속은 가끔 깜깜한 세상이 됩니다.
그러니 컴퓨터친구도 유뽕이 장난에 곧잘 수난을 당하지요.
동전을 잔뜩 모아 디스켓 들어가는 구멍에 쑤셔 넣어 고장이 나기도 했습니다.
금고가 된 컴퓨터에서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와르르 쏟아져 아빠와 엄마를 한참동안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그 덕분에 컴퓨터 친구는 유뽕이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꿔주어야 했습니다.
아무거나 눌러보고 켜보는 바람에 자주 고장이 납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아빠는 컴퓨터박사가 되어 척척 해결해 주십니다.
아무래도 유뽕이는 든든한 아빠를 믿고 친구를 마구 괴롭히나 봅니다.
토실토실 엉덩이를 두들겨주며 엄마는 유뽕이가 꿈나라 가는 일을 도와 줍니다.
잠이 들어야 엄마가 컴퓨터친구를 차지할 수 있거든요.
드디어 하루 종일 장난치느라 고단한 유뽕이가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으시던 엄마는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화면이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캄캄했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번쩍번쩍 난리가 났습니다.
모니터 아래 붙은 버튼을 틈만 나면 눌러대더니 결국 일이 생겼네요.
엄마는 곧바로 해결사 아빠를 불러오십니다.
“왜 또 이 모양이야?”
“몰라요. 유뽕이가 여기 눌렀거든. 그 후로 이렇게 되었네요.”
“못 만지게 해야지.”
“아이참, 그녀석이 내 말을 듣기나 하나요?”
컴퓨터 고치시는 아빠 옆에서 죄가 없다는 듯 엄마가 살짝 눈을 흘깁니다.
일을 마친 아빠는 엄마가 유뽕이로 보이는지 다짐 받습니다.
“손 못 대도록 잘 지켜봐야해!”
“알았어요.”
잠깐 고민하던 엄마는 노란색 넓은 테이프로 버튼을 감추어버렸지요.
‘이렇게 하면 누르지 않겠지. 흐흐흐’
그러나 더 큰일은 다음날 벌어졌습니다.
어젯밤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비닐테이프 속에 감춰진 버튼들이 말갛게 다 보이는데 유뽕이가 가만 두겠습니까.
다시 컴퓨터 앞으로 모셔진 아빠의 얼굴은 이제 호랑이가 되셨습니다.
“도대체 하루 만에 또 이렇게 해놓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호기심쟁이 유뽕이 덕분에 엄마만 자꾸 아빠께 싫은 소리를 듣네요.
‘유뽕이짜식, 내일 일어나기만 해봐라!’
다음날, 가족들이 나간 오후 엄마는 머리를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습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녀석이 그 버튼을 누르지 않을까?’
순간, 엄마의 입이 갑자기 하마처럼 벌어지면서 손바닥으로 무릎을 칩니다.
‘옳지! 바로 그거야!’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어던진 유뽕이는 오늘도 역시 안방에 뛰어 들어왔지요.
그런데 표정이 이상합니다.
한참을 뚫어져라 컴퓨터 친구만 바라봅니다.
잽싸게 뒤따라온 엄마가 유뽕이 귀에 알려주었지요.
“유뽕아! 컴퓨터가 많이 아파! 여기 붕대보이지? 여기 만지면 병원간대.”
정말, 모니터아래 커다란 붕대가 두껍게 반창고로 붙여져 있습니다.
방안어디선가 사각사각 개미소리들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거 엄마가 거짓말 시키는 거야. 속지 마!’
유뽕이 뿐인 방안에서 엄마는 주위를 둘러 봅니다.
그러더니 입술 앞에 검지손가락을 세웁니다.
‘쉿! 조용!’
유뽕이 친구는 그래서 붕대를 붙이게 되었답니다.
오랫동안 아플 예정이거든요.
2005년 11월 7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