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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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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 - 말썽대장 유뽕이


BY 박예천 2010-09-09

장애아를 둔 엄마로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로 글을 남겨봅니다.

중단되었던 유뽕이시리즈가 만 삼년만에 부활(?)하게 될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몸과 키가 부쩍 커버린 아들을 대하니 지난날의 편린들이 꿈틀댑니다.

쓸 수 있는 용기를 위해 스스로 주문을 외칩니다.

유뽕, 유뽕.............뽕그르르 짝!!!

 

 

 

말썽대장 유뽕이

 

 


엄마는 또 어리석은 생각을 해봅니다.

유뽕이 머릿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들어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보통 아이들과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뽕이 입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인 줄은 알지만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입니다.

세포처럼 작아져서 아들의 뇌 속에 들어가 생각주머니를 찬찬히 훔쳐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원래 유뽕이에게는 정식이름 석자가 버젓이 있지요.

그런데 엄마는 녀석이 장난을 치거나 말썽을 부릴 때면,

“유뽕! 이게 뭐야?” 하면서 ‘뽕’자에 힘을 주어 말합니다.


꼭 방귀소리 같은데 왜 이름에 붙여서 부를까요?

짐작대로 ‘뽕’은 방귀소리가 맞습니다.

냄새는 더럽지만 소리는 재미있는 게 방귀입니다.

슬픈 얼굴로 울면서 방귀를 뀌는 사람은 없습니다.

짓궂게 웃으며 뀌거나 코를 막아 쥐고 웃게 되는 것이 방귀소리입니다.

‘방귀’라는 말을 들으며 심각해지는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엄마는 웃고 싶을 때마다 아이들 이름에 ‘뽕’을 붙입니다.

요새 엄마는 아주 많이 기쁘고 싶은 모양입니다.

유난히 유뽕이를 자주 외치니까요.


일곱 살 유뽕이는 참 잘생겼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어른들마다 “녀석, 윤곽이 뚜렷한 게 인물 한번 좋네.” 하십니다.

친구들과 똑같이 겉모양의 키가 크고 덩치도 자랐습니다.

그러나 생각의 키만 늦게 자라는 유뽕이입니다.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태어난 유뽕이를 ‘발달장애아’라고 부릅니다.

유뽕이는 말을 잘 못하며 뜻을 이해하는 것에도 힘들어합니다.

나이 값 못하는 행동을 해도 엄마 아빠는 유뽕이를 무척이나 사랑하십니다.

그런 사랑을 믿어서인지 유뽕이는 자주 사고를 쳐놓습니다.

 

유뽕이 눈에 세상은 여러 방향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물건의 전체보다는 한 부분만 보는 습관이 있지요.
자동차를 대할 때 바퀴만 본다든지, 문의 손잡이만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한동안은 커피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 누르는 것에 흥미를 갖곤 했습니다.

그 후, 어떤 구멍이든 보이기만 하면 돈을 집어넣습니다.


유뽕이가 다섯 살 때이던가.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살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분당에 사시는 작은엄마께서 생일날 옷 한 벌 사주라고 십만 원을 주셨지요.

엄마는 봉투에 잘 넣어 서랍 속에 두었습니다.

며칠 후 시장에 가서 유뽕이 옷을 사주려고 서랍을 열어보니 돈이 통째로 없어진 것입니다.

엄마는 눈을 여우처럼 올려 뜨고 아빠만 째려봤답니다.

“어서 그 돈 내놔요!”

“어? 무슨 돈을 말하는 거야?”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하십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줘요.”

이제 엄마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고 높아졌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무슨 돈을 내 놓으라는 거야?”

아빠도 엄마에게 질세라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제야 엄마는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돈 같은 걸 함부로 두면 어떻게 해. 다시 한 번 잘 찾아 봐.”

입장이 바뀌어 이번엔 아빠가 엄마를 몰아세웁니다.

돈 관리 못했다고 몇 번이나 싫은 소리를 하시고는 출근을 하셨지요.

엄마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일학년인 유뽕이 누나 선뽕이 짓 일리도 없으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유뽕이마저 놀이방에 가고나니 집안이 텅 빈 듯 조용해졌습니다.

엄마는 “끙!” 한숨한번 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안방 구석구석부터 뒤집기로 했습니다.

손으로 옮길 수 있는 작은 가구들을 들추고, 이불 틈까지 털어봅니다.

금세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출근하셨던 아빠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아직도 돈 못 찾았나? 사람이 어째 그 모양이야? 꼭 찾아내야 해.”

이제 엄마는 돈의 액수보다도 아빠의 목소리에 더욱 겁이 납니다.

잃어버린 돈 때문에 덜렁이엄마로 이름 붙여 질것만 같았습니다.

체면 때문에라도 돈을 찾아내야 합니다.

필사적으로 가구 옮기기에 도전했습니다.

서랍이 일곱 개나 달린 옷장을 질질 끌고 당기며 옆으로 밀어냅니다.

순간, 벽에 바짝 붙었던 옷장이 슬쩍 밀리는가 싶더니 그 틈새로 무엇인가 주르륵 쏟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앗! 여기 있다. 우헤헤 돈이다.’

세어보니 만 원짜리 열 장이 맞습니다.

‘도대체 누가 여기에 숨겨 놓은 거지?’

보나마나 당연 하지요. 바로 유뽕이 짓입니다.

벽과 가구사이의 작은 틈이 녀석의 눈엔 자판기 구멍으로 보인 것이지요.


목뒤로 흐르는 땀을 대충 닦고 방안을 훑어보니 굉장합니다.  

마치 고물상에 온 것처럼 뒤죽박죽 섞여있습니다.

잃어버렸던 돈을 찾았으나 방안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깨끗하게 치울 일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유뽕이 녀석! 놀이방에서 오기만 해봐라.”

혼잣말로 씩씩대면서도 웃음이 나오는지 이름 뒤에 또 ‘뽕’자를 붙입니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고 살아야 웃을 일도 생긴다는 말을 엄마는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