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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일기 14 - 우울해도 농사는 져야지


BY 초록이 2009-09-20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밭으로 갔다

 

점심먹고 서희데리고  남편과  도착한  농장초입에는

샛노랗고 큼직한  꽃무더기가  환하게 피어 나 있었다

ㅡ애석하게도 이름을 몰라  무식한 나는 그냥 환하고  노란꽃송이 송이라고 말할밖에,,

명랑한 꽃의 소리없는 환대를 받으며 밭 사잇길로 들어서니

일찌감치 심은 다른  무밭엔 이파리도 크고 탐시런 하얀 무가 살짝  들려진게 보인다

배추밭의 배추는 는 오지랍 넓게 사방으로 퍼져 싱싱하게 자라있고

가을 상추,파,아욱등이 오종종하니  조르륵 심겨져 있다

작은 도랑 건너 우리밭 팻말에는

<풍년일세>라고 씌어있고 그옆엔 문지기인양 진분홍 봉숭아가 달랑 서 있다

우리 배추와 무밭도  걱정과는 달리 이제 모양새를 갖쳐 간다

크기는 우후죽순이지만 뻗은 이파리엔 모종때의 여리여리함은 없는데

문제는 배추이파리가 뽕뽕뽕 잔구멍이 너무 많이 나있네~~

어떤 놈들의 짓인가 ? 훌훌 둘러 보니

파란  애벌레

뱀무늬애벌레

꼬마달팽이

여치 등이 숨어 있다

이름은 보이는대로 지은것 ㅎㅎ

여기서 잠깐 , 봉숭아 를 따고 있는 서희한테

ㅡ벌레들이 배추 다뜯어 먹겠다

어서 이리와 파란 애벌레 좀 잡아라 

담박 쫒아 와서는 ㅡ 엄마 ! 파란 벌레가 어딨어???

ㅡ허걱,,아니 초록색벌레말야,,, 왜 푸른 들판 그러쟎니~~ 초록색을  푸른색으로 왕왕

표현들을 하지 

ㅡ 에이~ 난 진짜 파란색 벌렌줄 알고 기대했는뎅 !

.....

 

책읽는 것보다 컴게임을 즐겨하는 우리 막둥딸의 수준이라니~~~ㅋㅋ

 

고구마 줄기를 딴다

안주인이 게을러 빠져 2주를 걸러서 따니  딸것들이 많아

한참을 후두둑 훑으니  꽤 많이 쌓였다  

딸 한마디

ㅡ 엄마 고구마밭이 초토화 됐어

...

ㅡ얼마있으면 먹음직스런 콩수확이네! 

겨우 세그루의 콩을 앞에 두고 흐뭇한 미소로 한마디 하시는 분은

콩심은 본인, 초보 농부아저씨, 덕분에 배추 세네 포기 못심었당

....

 

가을햇살인데 아직은 따갑기만하다

왜 이리 어지러운가  빙그르르 돈다

ㅡ 여보 어지럽네

ㅡ 왜그래~ ~운동 좀 해! 운동!

ㅡ(이 양반아  여자가 원하는 대답은 고것이 아니여

운동해야 되는건 누가 몰라

좀 더 따뜻한 챙김,관심,반응 이런것이 필요한데

당신은  아주 단순해서 좋겠어 

아내의 아픈 하소연에  멀뚱멀뚱 무반응이기일쑤

나무토막처럼  느껴질때가 많다구구구 !!!)

 

이렇게 난 대꾸하지 않는다 

속에선 저런 외침들이 드글드글 하지만..

 

남편과  소통이 안되는 요즈음이었다

 

그나마 아침에 좀 쌓인  내속의 말을 쏟아놓고 남편의 말도 듣고

소통의 시간을 갖긴 했는데..

 

서희는 방아깨비를 하나 잡아서는 손등에,밀짚모자에 올려 놓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논다

딸을 데리고 농장 윗쪽으로 가보니 메밀꽃같은 자잘한 꽃들이 희고 분홍으로

빽빽히 둘러쳐져 피어나 있어 너무 예쁘다  이파리도 작은 방패모양인게 독특하고~

키 큰 들깨꽃이 하얗게 벙글어 부스스 떨어지고 

우리밭의 도라지꽃들은,,, 바람빠진 풍선보다 후줄근히 오무라든 아이

새로 부푸는 아이, 한창 이쁘게 별모양으로 벙글어 진 아이

다채롭기만 하다

서희는 도깨비 방망이마냥 늘어진 수세미를 보여줘도

대롱대롱 하얀 조롱박을 보여줘도

방아깨비에 정신이 홀려 제대로 보질 않는다

그 방아씨는 도망도 안가고 서희 손등에서 찰싹 붙어있고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