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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이(3)-바람에 날리는 모래알보다 묵직한 바위가 되고 싶다.


BY 솔바람소리 2015-08-22

지부장과의 면담이 있던 다음날 평소처럼 일찍 출근을 했다. 업무시간 전까지 마실 커피를 타놓는 것을 시작으로 급하지 않게 여유를 갖고 업무 준비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정수기 물을 받아서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려는데 내게 있어서 투명인간인 미경이가 정수기 근처로 왔다. 

안녕, 언니~!”

잘못 들었나 싶게 미경이가 활짝 웃으며 고객을 대하듯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살짝 당황했지만 아닌 척 덤덤히 그래, 안녕.” 대꾸했다.

언니 아사이베리 먹으려고 하는데 언니도 한잔 줄까? 항산화 물질이 많아서 그렇게 좋다는데? 이거 비싼거야.”

보라색 물에 가루가 둥둥 떠있는 종이컵을 보이며 말했다. 색깔만으로도 별로 내키지 않는 그것이었지만 손을 내밀어 오는 그 노력이 싫지 않아서 고맙지.” 대꾸하니 종이컵 하나가득담긴 보라색 물을 내게 건냈다.

실장과 미경이가 그날부터 다시 밖으로 나와서 모두와 함께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전날 있던 지부장과의 면담에 대해서 궁금해 미치기 직전이 됐던 동료들에게 한꺼번에 몰아서 단체 톡을 보냈었다. 모든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가 않아서 간략하게 지부장이 회사분위기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보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하니 대부분 변화가 있을리 만무라고 했다. 지부장실 찾아가서 항의했던 사람들이 그동안도 많았고 결국은 그들이 그만두고 말았다는 말까지 하며 평소처럼 뒷담화가 길어졌던 내용이 싫어서 개선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쩌겠냐며 중이 저 싫으면 절을 떠나면 되는 거지! 긴말이 뭐 필요해! 하는 말로 대화방을 마무리졌었다. 자기들의 예상과 달리 분위기가 회복세를 보이니 이제는 얼마나 갈까?”를 걱정했다. 저마다의 지닌 성향을 쉬이 바꿀수가 없듯이 그들 또한 결국 제자리, 자기 성향들을 보이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단 것쯤 나 역시 잠작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 굳이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진 않았다. 쉬는 시간에 몰려와서 수군거리는 동료들에게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맞춰줘. 자꾸 이렇게 모여서 쑥덕거리는 거 안쪽에서도 다 보여.”

 

그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토록 인연을 쌓아왔다. 마음을 나눈 사람들 앞에서는 푼수처럼 격식 따위 챙기지 않고 망가질 수도 있지만 그 외적인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고자 노력을 했다. 동료들의 내게 향한 관심이 진심이든 상투적이든 집단생활에 있어서만큼은 완전한 나를 공개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며 깨달은 나만의 지침서라고나 할까...

*내가 한 말이 어느 씨앗이 되어 어떤 싹을 틔우게 될지 모르니 입을 조심하자.

*바람에 날리는 모래 알갱이보다 태풍에도 끄떡없는 바위가 되자.

속 내장까지 꺼내 줄 듯 따르던 동료들에게 뒤통수를 여러번 맞다보니 어쩔 수 없이 터득한 생존방식이 되고 말았다. 미안하게도 직장동료는 내게 있어서 오피스프랜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틈만 나면 퇴근길에 모이길 바라는 그들에게서 갖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것이 불만이라고 입을 모으건 말건 말이다.

 

고맙게도 지부장의 입김으로 인해서 억지 춘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뭣보다 큰 변화는 미경이었다. 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계획적인 건지 모르겠으나 미경이와 화장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 때마다내게  정겹게 말을 건네 왔다. 때론 출근한 책상위에 아세아베리가 박스 채로 있거나 오디를 냉동실에 넣어 뒀으니까 퇴근길에 잊지 말고 챙겨가라는 톡을 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물질공세까지...나로썬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받기만 할 수가 없어서 나 역시 시골서 올라오는 먹거리가 있을 때마다 챙겨서 주기도 했다.

 

언니, 요즘 미경이 언니가 언니한테 너무 자주 온다. 갑자기 왜 저래? 조심해. 내가 얘기 했지? 저 언니 이혼해서 딸이랑 둘이 산다고.”

곧잘 나를 따르는 결혼준비가 한창인 서윤이가 큰 허물을 들추듯 또 다시 미경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혼은 나도 했다. 가시네야!’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순간 삭여야만 했다. 살다보니 이혼을 한 여자는 불운의 여인이 되어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가 그러니까 이혼을 했지.’라는 무시까지 받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던 경험들이 대부분이다. 굳이 꺼내서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아서 직장 내에서 알게 된 사람에겐 나의 이혼을 함구하게 됐다.

이혼한게 죄냐? 왜 자꾸 이혼한 걸 들쳐?”

죄라는 게 아니라 성격이 저러니 어느 남자가 좋아라, 하겠어? 처음엔 나도 불쌍해서 정말 잘해줬어. 근데 저 언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고...이기적이야. 술버릇은 또 얼마나 안 좋은데! 울고불고, 시비 붙고...골치 아픈 언니니까 조심하란거야.”

고맙다. 14살 많은 언니가 걱정대서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 서윤이가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이 언니가 아주 든든하구나! 업무시간 1분전. 자리로 돌아가구 이따 보자.”

퇴근 후까지 동료들의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해야 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근무의 연장같은 피곤함이 밀려들 정도로.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미경이까지 합세해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죽고 못사는 것처럼 보였던 실장에 대한 험담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언니, 실장이 언니 무지!!! 경계하는 거 알지? 지부장이 언니에 대한 칭찬하면 그날 나한테 스트레스 엄청부려. 자기가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하면서 아무한테도 그 자리를 뺏길 수 없다고 이를 갈 듯 얘기해. 이제서 말이지만, 나 말고 언니가 2차 들어가는 거였어. 그거 겨우 막아서 내가 들어간 거잖아.............”

몰라도 좋을 얘기들이 미경이와 통화를 하고나면 가을날 낙엽이 떨어져서 쌓이듯이 수북해졌다.

...바위다...태풍에도 끄덕이 없는 바위다...듣는 내내 나를 다독여야만 했다.

미경아. 실장이 말려서 내가 아닌, 니가 올라간 2차라면 어쨌든 실장에 대한 지부장의 신임이 크단거야. 그러기 위해서 실장말대로 얼마나 노력이 많았겠니. 난 2차에 대한 욕심 없다. 지금 니가 나를 믿고 하는 말들이 지뢰가 될 수 있어. 어느 순간에 터져서 네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얘긴 앞으로 나한테 하지 마라. 회사 얘기 말고 니가 힘든 얘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어.”

성인군자가 결코 아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중심을 잡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