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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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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ing


BY 솔바람소리 2015-08-13

 

문득 침대 곁에서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구르밍(고양이가 털을 핥는 행동)을 하는 콩이의 모습이 검은 표범과 흡사해 보였다. 침대에서 꼭 60c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눕는 토이푸들, 해피의 누런 털이 제법 자라서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켰다.

여기가 사파리구만...”

엄마~! ~!!!”

굳이 제 방을 마다하고 안방으로 쳐들어와서는 침대에 훌쩍 큰 몸뚱이를 누이고 뭔가를 열심히 읽겠다며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던 딸이 한 소리했다.

너는 나무 늘보같어.”

내 자리를 뺏기고 눕지도 못한채 한쪽으로 밀려 앉아있던 내 입 밖으로 나온 소리가 억울함을 호소하듯 퉁명스러웠다.

ㅎㅎㅎ...앙탈부리는거 봐봐. 울 엄마 귀염둥이~!”

감히 한손으로 제 엄마의 볼을 살짝 꼬집는 제스처까지...서슴지 않는다.

더욱 어이없는 건! 그럼에도 난 버럭 화를 내기보단 더욱 새침한 눈과 입꼬리를 하고서 딸을 노려보는 것이 다였다는 것.

나는 위아래 앞니가 빠져가는 호랑이...아직은 어금니같은 자존심이 몇 개 남아있는 호랑이로 전락해가고 있는 중이다. 표범과 사자, 나무늘보, 호랑이가 사는 우리 집은 사파리...집 밖 세상은 야생의 정글.

 

엄마! 제가 스님이 되는 건 어때요?”

며칠 전 밥상머리에서 딸이 내게 물었었다. 딸의 뜬금없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좀 채 익숙해지지 못하고 종종 난해함을 뛰어넘어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다. 2, 2년만 있으면 성인이라고 법적으로 인정받을 미성년의 질문에 얼렁뚱땅 답할 순 없다.

너처럼 잠 많은게 스님이 되면 개나 소도 스님된다. 법문 공부도 해야 하고 너처럼 말도 많은 것이 묵언수행은 어찌할 것이며...”

밥숟가락 꼭 쥔 손에 힘을 주고 밥알이 튀어나올 듯이 열과 성을 다하여 한참을 떠들어댔더니,

“...어렵네

덤덤한 척 마저 밥술을 뜨는 딸이 짧게 대꾸했다. 내 귀에 들린 말은 단지 어렵네였지만 분명 그것도라는 대명사가 함께 들리는 듯 했다.

최선을 다 해서 하루하루를 살면, 어떤 상황이 되어도 후회가 적어. 그런 사람은 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는 거구.”

나 역시 덤덤한 척, 그리고 잔소리 아닌 척 말을 흘렸다.

 

이과 반에서 등급이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1학기 기말고사 등급을 한 단계 올려놓을 만큼 열심인 딸이 수학 특강으로 <기하와 백터>까지 배우고 있는데 쪽지 시험을 볼 때마다 1~2개 맞기 일쑤였다.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가 형편없어도 지금껏 한 번도 난 딸을 다그친 적이 없었다. 1때 잠시 관악부에 들어가서 튜바를 접하며 공부는 뒷전이고 악기전공을 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을 때와 그 원인 제공자가 음악선생님이란 것을 알았을 때 30여분가량 선생님과 직접 통화하며 화를 냈을 때 빼고는 딸에게 성적을 운운하며 혼을 낸 적이 없었다.

유치원 다니던 내내 받아쓰기 빵점을 받아왔던 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오늘은 5개 틀렸다고 했던 말에 반색을 하며,

어머!!! 그럼 우리 아영이 5개는 맞은거야?!” 했더니,

아니요! 선생님이 오늘은 바쁘셔서 받아쓰기 5개밖에 안 봤어요!!!”

다부지게 말했던 딸은 여러모로 제 오빠와 상반되어 나의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게 만들었었다. 그런 딸이 어느 순간 수학이 재밌고 과학이 재밌다며 점수를 높였다. 혈액형이 A형이 맞나 싶게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딸의 과목에 대한 편식(?)도 확실했다. 문과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시험을 보는 통에 평균을 깎아먹는 것이 아쉬웠는데 점점 부족한 것들을 자각하며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점점 학업에 대한 욕심이 올라갈수록 받는 스트레스 또한 상당할 것을 짐작하며 딸의 컨디션을 챙기고 눈치를 보게 된다.

 

엄마, 스님 되는 것도 어렵다고 했는데 그것도 내신 봐요?”

오늘 딸이 또 내게 물었다. 요즘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마음 내려놓기 신공을 단련하는 제 엄마란 걸 분명 짐작하고도 남을 텐데...딸의 거시기함에 어미도 자꾸만 거시기 해지는 듯했다.

!!!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스님이 되려고 했다면! 니 엄만, 진즉에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서 지금쯤 지하철이 아니구 구름타고 떠다녀야 맞아, 기집애야! 너 같은 나약한 사고방식이면 세상사람 전부 산으로 들어가서 전 국민의 스님화가 됐겠다. 산속이 도시가 될 판이야! 이게 자꾸만 보자보자 하니까, 니 엄마가 보자기로 보여?! 한 번만 더 그 따구 소리하면 내가 바리깡 사다가 머리 빡빡 깎아서 절에다가 버리고 오는 수가 있어!”

살짝 게거품을 품는 나를 향해서 깔깔 웃던 딸이 여전히 귀엽단다.

!!! 내가 왜 귀가 없어! 자꾸만 귀가 없다구 할래?”

부릴 때가 없어서 딸 앞에서 앙탈까지 부리는 내게 엄마는 개그도 점점 발전한단다.

사파리에 고래도 사는지...딸이 자꾸만 칭찬으로 제 엄마를 춤추게 하려고 한다.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걸 내 자식들이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는 것에 안도를 해야 하는 건지 미안해야하는 건지 가늠키가 어렵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마다 학원비 열심히 내주는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힘들다며 할 말 다하는 딸에게 엄마도 할 말은 했다.

그럼 학원 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