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없다. 들리는 것도 없다.
물레에 찔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아들이 군대를 갔다. 학교를 보내듯 다녀오겠다는 인사에 현관 문 앞에서 “잘 다녀와.” 덤덤하게 배웅했었다. 입소시간인 2시까지는 40분쯤 남았을 때 3시간 전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던 아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어미는 받기 1초 전부터 울컥하고 말았다. 자식들은 뱃속에서 열 달을 품고 있던 분신들이기에 말을 하지 않고도 전달돼는 교감들이 있다. 그 순간 느꼈던 내 감정이 녀석의 감정이었으리라...
“엄마! 저 잘 도착했구요...”
3시간 전에 했던 말을 녀석이 씩씩한 척 되풀이했다. 어미는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꾹 눌러 참기에 급급했다. 요 며칠 만성병처럼 목울대에 통증을 자주 느끼고 있다.
“그래...”
“엄마! 핸드폰 이제 정지하셔도 되세요. 여자 친구가 가서 그 부분 설명 드릴거에요.”
잔뜩 소란스런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탓인지 한껏 목소리 높여서 말하는 녀석이 자꾸만 안쓰러웠다. 허리가 아프다며 훈련소에서 재검신청을 하겠다고 했고 그럼에도 보내주지 않는다면 허리가 으스러지도록 군대생활 하겠다고 했던 녀석은 자신이 쉽게 나오지 못한 것을 예상한 듯 자대배치 받고 난 뒤 선임 앞에서 누나나 여동생이 있냐는 질문에 “넵!!! 쭉쭉 빵빵한 여동생이 있습니다!!!”라며 꿈과 희망만 심어주겠다는 계획을 우스갯소리도 했더랬다. 그리고 제 동생에겐 오빠가 군에 있는 동안 절대로 편지를 하지 말고 사진같은거 보내면 죽음이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로 헷갈리게 하기도 했었다.
“아들! 잘할 수 있지?”
겨우 꺼낸 말이 원망스럽게도 울먹임이 되어버렸다. 그런 제 어미 반응에 녀석이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네!”
“다른 애들도 하는 건데...엄마 걱정 안 해도 되지?”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네!!! 엄마! 수료식에 외갓집 식구들이랑 오세요!!! 저 친구한테 전화 와서 끊어야겠어요.”
“그래! 잘 해!”
“네!!!”
길지 않은 통화였다. 어미의 나약한 반응에 당황했을 녀석이 함께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으려는 듯 성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꺼이꺼이 참았던 울음보가 터졌다. 문득, 녀석의 아비에 대한 원망이 솟구쳤다. 아들을 배웅하며 응원 해주는 책임감이라도 지닌 양심이 있는 인간이었다면...아이들만의 자상한 아버지 역할만이라도 했더라면 지난날을 용서할 수 있을 텐데 하는...원망이.
외갓집 식구들께 인사를 다녀왔던 아들에게 군대 가기 며칠 전부터 제 아빠를 비롯한 친가 쪽 식구들께도 군대 다녀온다는 인사를 전화통화라도 전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었다. 그런데 어미의 그 말은 싫다는 강경한 아들의 고집 앞에서 잔소리로 끝나고 말았었다. 녀석은 분명 홀로 떠있는 섬처럼 몹시도 외로웠을 것이다. 아이들의 애비라는 그 인간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인간으로 인해 어미에게 어쩌면 평생 지울 수 없을 남자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남자는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존재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벽을 세우곤 했다.
11월 2째주 금요일부터 30일까지 직장에 휴직계를 낸 어미는 계획했던 것처럼 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입소식까지 따라가지 못했으며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지도 못하고 있다. 두문불출로 겨우 집안일을 하고 잠만 자고 있을 뿐이다.
직장동료들이며 친구들, 친정식구들까지 돌아가며 전화를 해대고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영혼 없이 ‘다음’만을 기약하고 있을 뿐이다.
아들을 논산훈련소까지 배웅하고 온 아들의 여자 친구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아들과 통화하고 난 뒤 정지시킨 아들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어머니, 아빈이 씩씩하게 잘 들어가는 거 보고 왔어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눈두덩이 살짝 부어있었다.
“울었니?”
“아빈이 볼 때는 안 울었는데 너무나 밝게 손 흔들며 들어가던 모습이 올라오는 길에 떠올라서요...어머니랑 함께 안 오길 잘했다고...함께 왔더라면 자신도 울었을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내 질문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 그 아이와 나는 또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영이가 말했다.
“엄마, 오빠가 저보고 편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학교에서 핸드폰 내기 전에 카톡으로 군대 잘 다녀오라고 문자 보냈더니 편지 많이 보내라고 문자 온 거 있죠!”
어미는 울보가 된 듯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자꾸만 눈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녀석은 닮지 않아도 되는 것을 어미를 닮아버렸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척하며 꺼내놓는 것까지...
아들은 군대 가기 전 날 동생이 학교에서 빌려온 기타로 직접 김 광석의 ‘일어나’를 연주하며 불렀을 때 연습할 때보다 연주가 끊겼고 음도 간간히 비켜갔던 노래를 들으며 멋쩍은 듯 제 동생을 보며 웃었었다. 동생이 불러주겠다고 했던 것을 싫다고 했던 녀석이 맞나 싶을 만큼 이것저것 묻고 다른 것까지 연주해보라는 관심을 보였었다.
어쩌다 녀석을 내가 그리 만들었을까...
딸이 선곡한 노래 가사처럼 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미는...마음 뿐, 점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