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하고 있다는 자만심, 원망, 댓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찬 불만들. 그런 마음을 숨긴 채 남편을 대하지. ‘문둥이 자슥,
웬수 같은 인간‘ ,속으론 이를 득득 갈면서 말이야. ’저 인간 때문에
내 인생 종친 거다‘ 꽁한 마음!”
나를 지긋이 응시하며 스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건 내 속을
들여다 본 양 꼬집어 낸 말씀이셨다. 너무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속내를.
“인간이란 동물은 짐승들과 달리 발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육감이야. 굳이 입으로 듣지 않아도 상대방 마음의 파장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정! 아내가 겉으론 아무리 내색을 안는다 하더라도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단 말씀이야. 그러니 집으로
들어오기 싫은 거야. 술 먹을 핑계만 생겼다하면 밖으로 돌지.
그렇지 않아봐라. ‘너도 참 나처럼 복 없는 여자 만나서 고생이 많다.
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다면 지금보다 네 인생도 편했을지도 모르지
않겠나! 안됐다. 가엽다. 불쌍하다.‘ 이런 마음으로 남편을 대한다면
밖으로 나가라고 떠밀어도 안 나간다. 가정이 편안하면 밖에 일도 당연히
잘 돌아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부부사이의 일이라고 둘만의 문제로
끝나느냐, 그게 아니야. 아이들에게까지 그 파장이 전해져. 그럼 아이들도 불안을 느끼고 신경질 적이 되고 우울해서 결국은 그 애들조차 점점 크면서 방황하며 밖으로 돌게 된단 말이야.”
스님의 계속된 말씀이 가슴팍 여러 곳을 찌르며 상처를 냈다.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과 날카로움... 그 원인이 가정의 불화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바로 잡을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가슴이 아팠다. 옹졸해질 대로
옹졸해진 심정이 바스러지는 통증을 전했다. 하지만 스님의 모든 말씀을
수긍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반박하고 싶었다.
‘왜 저만 그래야 하는데요? 저도 나름대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했어요. 원망을 했던 마음이 대부분이었지만 안됐다, 불쌍하다, 측은지심
으로 대했던 순간들도 제법 됐다구요. 그러면 그 인간, 더 나태했고 뻔뻔
스러웠단 말이에요. 미운 일곱 살 꼬마처럼 보란 듯이 속을 긁어댔다구요.
지금 제 쓰레기 같은 삶이 순전히 제 부족함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너무 억울해요.‘ 항변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남편과 한 집에서 마주 대하는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 의안이
됐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임에도 막무가내이고 무대책과
무개념, 인사불성으로 마신 술로 아무 때나 가족의 평온한 밤을 뺏었던
남편을 더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안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아빠의 가정에서 장기부재가 자식들은
불만이었나 보다. 아빠가 싫다, 밉다, 원망이 끝도 없던 녀석들이 아빠를
내 쫓은 것은 엄마고 자신들은 아빠가 그립다는 듯이 어쩌다 들르는 아빠를
대하는 모습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집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닐까, 자문과 배신감에 괴로웠었다. 그룹 과외를 시작한
어느 날부터 아들의 귀가 시간에 경계가 없어지더니 어느 날은 선생님
집에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갈 수 있게 허락을 해달라는 때도 있었다.
17년 한결같이 엄한 어미로써 강조하며 가르쳤던 순결한 도덕성이
메말라가는 것이 용서되지 않았고 그럴수록 남편에 대한 마음의
거부반응이 강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끈끈하다고 믿었던 자식과
어미사이의 정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져 감을 느껴가고 있던 차였다.
그런 심정인 내게 스님의 말씀은 너무도 정답이었고 반면 크나큰
오답이기도 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매일매일 씨앗을 뿌리면서 산다는
사실을 모른다. 오늘 내가 처한 상황은 지난날,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전생의 씨앗이 오늘 날 열매를 맺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내 업보가 오늘 날, 혹은 미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 다는
사실을 아무리 알려줘도 불만만을 안고 불안의 씨앗을 뿌리고 있어.
당장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을 생각한다면 어떤 생각과 행동도 쉽게
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좀 더 현명해 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왜 자신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내 죄다, 내 복이 이것 밖에 안 돼서
그런 거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바로 잡고 받아들인다면 억울할 게 없다.
그럼 마음이 편안해져. 그렇게 나를 다스리다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내게, 아니면 후손들에게, 더 나아가 내세엔 복을 받을 수가
있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말씀을 스님은 가만히 찻잔만 홀짝이는 우리들
에게 쉬지 않고 열거하셨다. 스님의 말씀에 내 부끄러움과 답답한 마음이
법당 안 이곳저곳을 먼지처럼 날아다니다가 바닥으로 어수선하게 떨어져
내리는 듯, 심란한 마음이 되었다.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했을 당시의
부처님 심정으로 말씀하셨을 스님의 간절한 마음만은 느낄 수 있었기에
반문의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절에 다녀온 뒤, 수긍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반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
보려 했다. 큰 욕심으로 계획을 세웠다가 더한 절망을 느끼게 될까봐서
신중하려 했다.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안겨준 상처들,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했던 자식들에게 무언가 바라던 마음, 그것부터
씻어버리고 대하고자 했다. 며칠은커녕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할 마음이
될지도 모르지만 노력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이튿날을 맞았던
저녁 6시가 지날 쯤 이였다. 집에 전화벨이 울렸던 것이. 그리고 며칠
동안 연락도 없었고 들르지도 않았던 남편의 심상찮은 목소리를 깨달은
순간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 들었고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 아빈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