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내 모든 결혼생활의 삶은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장롱 속에 옷이라고는 모두가 시장 표였고 하나같이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큰 놈의 나이보다도 오래된 옷들뿐이었다. 수술자국 투성이 속옷은 내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었고 내 발에 끼울 변변한 양말조차 없이 살아온 지난날이 허무해진 순간부터 사춘기 아이처럼 밖으로 돌았다. 더는 궁상스럽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위한 쇼핑과 여가를 즐겼다. 내 몸을 치장했다. 그런 어미를 대했던 자식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 들르던 남편은 비웃기나 하듯 “나 없으니까 얼굴이 핀다?”란다. 피자 한판 시키면 한쪽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 입안으로 한판을 너끈히 집어넣기도 했다. 엄마가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자식들의 말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깔끔 떨며 꾸렸던 살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웃음을 잃은 마음은 점점 더 황폐해졌다. 남들 앞에서 만큼은 탤런트 뺨치는 연기를 하며 즐겼지만 영혼은 암흑 어딘가를 헤매는 듯 우울했다.
“그래, 어떻게 지냈나?”
문득 떠올랐고 갑작스레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찾게 된 절엔 오랜 인연의 비구니 스님은 출타 중이셨다. 비구승인 큰 스님과 합장하고 부처님 전에 삼배를 마친 뒤 다도를 가졌을 때 평소와 달리 함구하고 있는 내게 스님이 재차 물으셨다. 찻잔을 입에 처음 가져다 댔을 때 우리에게 “어떻게들 지내셨나?”하고 안부를 물으셨을 때 친구는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부터 편안했다면 스님을 찾아 왔겠냐는 솔직한 말을 꺼내놓았지만 그 빤한 상황 꿰뚫은 스님의 의중을 알기에 부끄러워서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다시 질문을 던지셨던 게다.
“저야 변화무쌍한 세상 즐기면서 살고 있지요. 40년 살았으면 익숙할 법도 한데 아직도 삶이 파악되지 않네요.”
대답과 함께 쌉쌀음한 차 맛 같은 미소가 의도치 않게 내 얼굴에 떠올랐다.
“즐기면서 살면 좋지. 60을 바라보는 나도 세상 깨닫기 힘든데 40년 살고 알려하면 욕심이다.”
경상도 억양임에도 정감이 넘치는 스님의 말씀에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평소에 분위기메이커였던 날라리 신도가 입을 닫고 있으니 친구와 스님의 대화가 간간히 허공에서 길을 헤매다 간간히 막다른 골목을 맞기도 했다.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사실 스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니었다. 친구가 언젠가부터 함께 다녀오자고 했던 절이었고 거절했던 나였다. 하지만 문득 너무도 간절히 부처님이 뵙고 싶었다. 형체에 지니지 않는 무생물이지만 온화한 미소를 뵙고 좀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헛헛함을 위안으로 채우고 싶었다. 일 년에 한 번도 발길 주기 어려웠던 절에 들러 부처님만 뵙고 갈 수 없던 염치로 앉아 있던 거였다. 그것이 오히려 스님을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 같은 죄송함에 떠올랐던 화두를 꺼냈다.
“어떻게 하면 화를 참을 수 있을까요?”
“...... 화를 어떻게 하면 참느냐...? 그건 아주 간단하다. 그냥 참으면 되는 거야.”
어떠한 상황과 말씀에 있어서도 막힘이 없던 스님께서 잠시 뜸을 들이시다 해주신 대답이셨다.
“저 놈의 땡추중 말 쉽게 한다, 하지? 화를 무턱대고 참기는 어렵다. 화나는 순간에 나중을 생각해 봐라. 내가 지금 화를 내고 난 다음의 상황을 말이야. 쉽게 말하면 씨앗을 생각하면 된다. 오늘 내가 뿌린 씨앗으로 후에 어떤 싹이 피어날까를 말이다.”
“당장 화가 나고 억울한데 나중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뭐에 그렇게 화가 나는데?”
“애 아빠랑 저랑 별거를 하는 중이에요.”
늘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나를 익히 알고 계셨던 스님들이셨다. 그런 내 환경을 늘 안타까워 해주셨다. 하지만 별거를 시작할 쯤부터 스님들과도 연락을 끊다시피 지냈기에 아직 전해드리지 못했던 사연이었다.
“언제부터?”
“1년 가까이 되어 가는 것 같네요.”
말 길 못 알아듣는 저학년 꼬마에게처럼 세세하게 말문을 열어주시던 스님께서 찻잔을 입에 댔다 떼고서도 숨고르기라도 하듯 잠시 함구하셨다.
“내가 그동안 많은 신도들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중에서도 참으로 똑, 소리 날 정도로 자기 할 도리 다하며 희생하고 사는데도 환경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다, 공통점이 있더라.”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스님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도 부담스러웠지만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