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픔이 반복 되다보면 아픔에 무뎌지는가보다. 그게 아니라면 습관적인 남편의 기만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음에도 잠시 현기증을 느꼈을 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그대로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완전한 포기였을까. 그를 지나쳐가는 몇 초 동안 치미는 분노에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눌러서 ‘강동구가 언제부터 김포였어. 진실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간아! 너란 인간의 정체가 뭐냐. 너의 뇌구조와 마음 심보는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하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이 벽처럼 가로막았다. 거짓이 입에 벤 인간은 여전히 뻔뻔한 이유를 주절거릴 것이고 피하지 못할 진실 앞에선 입에 벤 ‘미안해’ 한 마디면 그만이라 여길 영상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 갔다. 어미는 이제 더는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자신이 없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어미의 의지였다. 그렇기에 시궁창처럼 더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갈지언정 남에게 들어내 놓고 궁상을 떨어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밖에 안 될 일, 함구할 때가 많아졌다. 그것이 점점 어미를 움츠려 들게 한다.
지난 두어 달이 어느 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버거웠던 나날들이었다.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많은 일들과 사건들이 있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느 분께서 작정을 하신 듯 버거운 일들만 보따리로 건네주시는 듯 했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눈을 감고 잠들어야 하는 밤마저도 부담이었다. 어쩌다 잠이 들었고 살짝 깨었던 순간에도 근심을 떠올렸던 날들이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는 현재진행형으로 나갈 나날들일지도 모른다.
3년이 가깝도록 끊었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안주도 없이 물마시듯 내리 두병을 마셨다. 운 없게도 때맞춰 전화를 해왔던 친구와 취중 통화를 하며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당장에 오겠다는 친구를 말렸던 기억을 끝으로 필름이 끊어졌다. 간간히 남편에게 술주정을 했던 기억이 남은 채로. 다음날 숙취와 더한 상실감에 빠져서 누워있을 때 일찌감치 전화를 걸어온 친구의 목소리도 심상치가 않았다. 덕분에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혼자서 한 병을 마셨다나. 어느 순간부터 어미의 체면이 땅바닥을 뒹굴고 다닌다. 주변의 이목과 아이들의 눈이 두려워 참으려 했지만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남편과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날 피하듯 남편이 나간 뒤 어미를 붙잡고 늘어졌던 아들에게서,
“엄마에게 살기가 느껴졌어요. 어쩜 아빠를 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죄인이 될까봐 겁이 났어요.” 라는 충격적인 소리를 듣기도 했다. 물건을 집어 던진 것은 남편이 먼저였다. 어미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듯 대응을 했을 뿐이다. 힘으로 따진다면 어미가 밀려도 한참 밀리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아들이 어미에게 살기를 느꼈단다. 그 순간의 어미 모습이 어떠했길래... 그동안 보일 꼴, 못 보일 꼴, 모두 봐왔던 자식들의 마음의 상처를 어미는 짐작할 수 있다. 너무도 잘. 하지만 이제 참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야 하는 결혼생활이다. 초반엔 남편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각오로 미친년처럼 덤비며 싸워댔다. 그럼에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그를 보며 차라리 용서와 이해를 해보자고, 나름은 무던히도 애써봤던 시간들이었다. 그로인해 남편에게 오히려 “똥오줌 못 가리는 애기 데려다가 내가 사람 만들었지.” 하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람이라... 그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단지 아직도 사람 못된 인간에게 듣기엔 거북했을 뿐이지. 오만하고 방자했던 자부심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빈곤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던 사람이 예전의 어미의 인간됨이었다. 지닌 정은 많았으나 깊이가 없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져야 했고 잘난 척하는 사람의 기를 꺾어놔야 직성이 풀렸던 심보를 지녔었다. 세상에 주인공은 나였고 주변인들은 모두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지 않았다면 더한 기고만장함으로 남들과의 마음 깊은 교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어미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사연 앞에 공감하며 마음과 눈물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깊게... 하지만 결코 이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남편에게 감사하지는 않는다.
당당하고 싶다. 남들의 이목 앞이 아닌 내 자신에게. 사라진 자존감을 되찾고 싶다. 아플 만큼 아팠다. 고민도 해볼 만큼 해봤다. 성숙한 듯 했지만 아직도 미숙한 자신을 돌아봤던 계기였다. 된통 독한 열 감기에 걸렸다 회복되는 과정으로 그동안의 어미를 표현하고 싶다. 이제 슬슬 비상을 꿈꿔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기술도 없고, 가방끈 짧고, 오랫동안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서 사회성에 대한 감도 떨어졌다 몸도 부실하지만 더 늦기 전에 뭔가가 돼봐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세상일엔 늘 변수가 따라 붙는다. ~을 할 것 이다, ~을 해야겠다, ~이 좋다, ~이 싫다는 등, 단정 지었던 일들이 언젠가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가 붙곤 한다는 사실을 철들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중인지, 기우인지 한가지로 단정 지어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세상엔 끝이 없단다. ‘하지만’이 붙여진 말처럼 계속해서 이어진단다. 육신의 숨이 멎어도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완전한 부정을 할 자신도 없다. 죽기보다 싫은 삶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괴로움에 몸부림만 치다가 떠나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어미였다. 그랬던 어미가 언젠가부터 넘어져서 일어날 생각 않고 걸려 넘어진 돌부리만 원망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울음을 멈추고 겨우 넘어졌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다시 걸어갈 것이다. 오늘의 이 마음이 후에 어떤 접속부사를 가져다 붙이게 될지 모르겠다. 결코 ‘하지만’을 붙이고 싶진 않다. 그러고 싶다. 꼭!
(글을 못 쓰는 인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삶을 미화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고 끊고 버려야 하는 줄거리를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진실한 글을 쓰겠다는 자부심으로 시작했던 글들은 늘 궁상스런 일상을 낱낱이 고하기에 급급했지요. 속알딱지가 밴댕이와 엇비슷하기에 그럴 거라는 생각들이 저를 매번 힘겹게 합니다. 댓글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니었고 조회 수에 연연하며 쓴 글이 아니었지만 매번 글을 써놓고 독자들이 바라보는 시선들을 의식하게 됩니다. ‘언제까지 그리 살래?’‘또 이런 글이네.’‘너 참 안됐다.’...다녀가신 분들의 마음이 추측되어 글을 올려놓고도 확인하러 들어올 용기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겁쟁이다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이란 글제로 언제까지 끌고 갈지 정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글방의 소제로 계속 이어갈지도 모를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기서 마무리지으려구요. 2010년까지 이어가고 싶은 글이 결코 못되네요. 힘든 글 봐주시느라고 모두 애쓰셨어요.
그제 아들과 팔짱 끼고 걷고 있던 시장 길에서 여고동창생을 만났습니다. 노는 물(?)이 달랐기에 친한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예전 얼굴이 남아있다고 먼저 알아봐준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 너 예전에 멋지게 하고 다녔잖아.”
멋지게 하고 다녔다는 말로 기억해준 친구의 눈에 그 순간 제 모습은 어찌 비췄을까요? 잘 놀았고 화통했던 그때의 당찬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에서 말입니다. 불의 앞에선 선배와 선생님도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날이 모두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자신감만은 되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힘써 보려합니다. 벌써 2009년도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새로운 해를 희망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사라졌지만 묵은 해는 깨끗이 털어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합니다. 지켜봐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관심 갖고 함께 아파해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부끄럼을 무릅쓰며 오늘까지 글줄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년이면 40줄로 접어듭니다.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볼까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새해엔 좋은 일들 많으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많이 받으셔야 합니다. 솔바람소리는 아컴에서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