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정처 없이 거리로 내달렸다. 방구석에 누워서 세상모르고 태평하게 누워 자는 남편이란 존재에게 ‘어디가?’느냐는 질문이라도 듣게 될까봐 아니, 인간임에도 담긴 마음 없이 기계적인 목소리만 뱉어내는 그 입의 움직임을 다시 보고, 듣게 될 것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거부감이 일었다. 그래서 두툼한 옷을 챙길 새 없이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나섰던 차림새가 어미의 삶만치나 허술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바람에 부딪히는 맨살이 들어난 목과 손등으로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시려오는 머릿속은 ‘겨울아, 너 이것 밖에 안 돼? 힘 좀 더 써봐라. 그래서 동태처럼 내 이 몸뚱이를 꽁꽁 얼려봐라. 그럼 파묻혀 질식할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그럼 터질 것 같은 마음도 진정이 될지도 모른다.’ 겨울 찬바람을 조롱했다. 세상 떠날 것을 작정했고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일주일이상 목숨을 부지했던 내내 억울한 마음만 더해갔다. 시작이 남으로 비롯됐던 원망이 결국 내 탓에 도달했고 자책하는 하루하루가 지옥의 불구덩이처럼 고통으로 남았다. 순환하는 지하철노선처럼 계속 반복적으로 똑같은 번뇌 속을 내달리는 생각들이 진저리 쳐졌다.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할 정도의 겁이 났다. 그럼에도 어미만 노력하면 될 줄 알고 보내왔던 지난 시간들이... 그 덧없던 순간들이 자꾸만 야속하고 억울하고 분했다.
머리꼭지가 돌겠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심정이 되어 나선 겨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헤매고 달리다 결국 도착한 곳이 한강.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나섰던 밖. 배터리가 두 칸 남아있는 핸드폰의 시간이 오전 11시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한강을 마주했다. 회색빛... 그 순간 떠오른 단어였다. 회색빛 마음을 안고 회색빛 도시에서 회색빛 겨울 속을 내달려 도착한 곳이 회색빛 물결이 잔잔한 한강이라니. 게다가 하늘까지 잔뜩 회색빛 구름을 펼쳐놓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39년 버텨냈을 뿐인데 걸레처럼 누덕누덕 헤진 마음이 되어 결국 선 곳이 한발 짝만 디디면 세상과 끝낼 수 있는 강둑이란 말인가.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 없으니 들어가기 딱 좋구나. 본능적으로 살겠다고 철펑거려도 건져내 줄 사람 없으니 마침 좋구나. 딱 들어맞는 회색빛 배경들이 죽음의 전주곡만 같다. 삶에 더는 미련을 두지 말자. 오염된 주둥이로 저주나 퍼붓고 살바에야 그만 두는 것이 나아... 가자. 이제...’ 계절파악 못하고 활짝 몇 봉우리를 피워낸 개나리울타리 앞에 서서 숨고르기를 했다. 강물 위에 한가로이 떠있는, 색이 다른 이름 모를 새가 두 마리 보였다. 칙칙한 분위기의 낯선 여인네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흰빛의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올라서 이내 시야를 벗어났다. 그리고 남은 잿빛 새한마리가 졸고 있는 든 듯 강물에 떠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평화로움에도 어미는 감흥이 일지 않았다. 어미처럼 외롭고 지쳐 보여 가엾을 뿐이었다. 한겨울에도 지천에 언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새싹을 보고도 부끄럽기는커녕, ‘괜한 짓을 했구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8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났었다. 하지만...아이들을 떨쳐두고 마주했던 낙동강 강둑에서 이름 모를 어미 새가 새끼들을 인솔하며 차가운 강물 위를 헤엄쳐 가는 모습에서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통곡을 했던 사람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모진 세월과 계절을 이겨내고 우뚝 서있는 것에서 나약한 자신을 비교하며 부끄러웠던 30대를 갓 넘긴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이기심이 다분한 보잘것없는 중년의 아줌마만 존재할 뿐이었다. 어이없게도 그런 존재로 전락하고만 것이 그 순간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몇 년을 버티겠다는 각오로 죽음의 여행에서 돌아왔던 것이 아니었었다. 이 한 몸이 찢어지고 뜯기는 한이 있더라도 찬 강물 위에서 한 마리의 새끼라도 낙오되지 않도록 돌아보고 돌아보며 바삐 움직이는 미물의 어미 새에게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는 어미가 되리라, 다짐했던 그날의 그 마음자리를 잃은 것이 서러웠다.
“어쩌라구요? 저보고 어쩌라구요. 왜... 매번 이런 저를 만나게 하나요. 바보, 천치 같은 저를 진즉에 깨달았는데... 여전히 등신 같은 저를 만나게 하나요. 그냥 떠나게 해주세요. 새끼들도 이제 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잖아요. 저란 것 세상에서 떠나가도 달라지는 것이 없잖아요. 엄마, 아빠... 저를 아는 사람들 따위 생각에서 잊게 해주세요. 떠난다구요. 가겠다구요. 이 복잡한 머리 좀 이제 그만 정지 좀 시켜주시라구요. 허락해 주시라구요. 다시 또 살려내시지 마시고 부디 거둬주시라구요...”
그동안 흘렸던 무수한 눈물의 양이 눈앞에 흐르는 강물과도 같건만 샘솟듯 눈물이 얼굴 위로 타고 흘렀다. 누구에게 향한 하소연인지도 모를 말들이 통곡이 되어 흘러나왔다. 꺼이꺼이... 갈증이 일듯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나, 정말 힘들었어. 더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내가 떠나도 비겁한 사람은 아니지? 그렇지? 누가 나를 손가락질 하지 않겠지? 비겁하다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온전한 내편인 사람의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놀래 킴은 예전 것들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극도의 외로움이 온몸과 마음을 뒤덮었다. 울고 또 울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부모형제와 벗이 있어도 이렇듯 외로운 세상. 어미 없이 남겨진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 되어 살아갈까... 생각에 치어 질식할 것 같은 머릿속에서 끈질긴 집착의 끈들이 열거되었다. 죽을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렇게 1시간가량을 번민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던 것 같다. 핸드폰이 울렸다. 술 취해 새벽에 들어왔던 남편이란 존재가 찍혀있는 채로.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이내 다시 울렸다. 폴더를 열었다.
“어디야, 해피 혼자 두고 나왔는데 빨랑 들어가야지.”
다짜고짜, 아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 건지도 모르는 인간이 또랑또랑한 척, 술이 취하지 않은 말짱한 정신이라는 듯이 힘찬 목청을 울렸다.
“지금 못 들어가. 애들 올 때 됐으니까 열쇠를 문 앞에 우유주머니에 넣고 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침울한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사람아, 빨랑 들어가. 나 차 끌고 멀리 나왔어.”
“나도 멀리 나왔어.”
“어딘데?”
“한강”
“거긴 어떻게 갔어?”
“자전거 타고.”
“왜?”
“바람 쐬러.”
“그 먼데로 자전거 타고 바람 쐬러가? 그런 힘 있으면 딴 데다 써라.”
“이 힘을 엇따가 쓸까? 알려 줘봐. 써보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 나, 여기 김포 쪽에 왔어.”
“내 말이 언제부터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로 전락하고 말았지? 난 누구처럼 빈말을 못해. 잘 알잖아. 칼이라도 뽑으면 무라도 썰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하긴, 잘난 인간 벗어난다, 노래를 불렀을 뿐, 여태껏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럴 말할 자격도 못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니... 맘대로 해. 열쇠를 두고 가든지 말든지.”
말해봐야 끝도 없을 것 같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울려대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내었다. 눈물이 멈춘 얼굴로 강둑 끝자락에 다시 섰다. 발아래로 살짝살짝 와서 부딪히는 물결이 보였다. 부드럽게 어미 몸을 받아줄 것 같은 물결이. 그리고 다시 동상처럼 몸이 굳었다. ‘이게 끝이라면... 아니,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결론에 도달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니?’
답을 찾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열쇠 없이 밖에서 떨고 있을 자식들이 마음에 걸려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찬바람을 뚫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자전거 뒤에서 한강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 했다. ‘다음에 또 와라. 바람 쐬러. 하루에도 얼마씩 너 같은 사람들 다녀간단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들어왔다면 내 몸이 식수로 쓰일 수나 있었겠니.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알았니?’
겨우 진정시키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질처럼. 진실성 없는 인간이 질력 나게 싫었지만 어쩜 어미의 짙은 색안경인줄도 모른다고 달래곤 했었다. 남편에게도 진실은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포까지 내려갔다는 남편의 차가 그제서야 천호동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결정타가 되어 뒤통수로 치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