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도심 한복판의 겨울도 꽤 이색적입니다. 거리마다 은행나무가 황금비를 내리고 있고 이웃집 마당에 보이는 감나무엔 이파리 대신 매달린 주황빛 감 열매가 아직은 겨울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벌써 달력은 12월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네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을 나이가 거듭 쌓일수록 절감하게 됩니다.
엄마...
저는 이 단어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느낀답니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자랑스럽고 슬픔까지.
저를 낳아주시고 소중하게 키워주셔서 감사드려요.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드리지 못하는 점이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전과 비교한다면 몸과 마음이 약해지시긴 했지만 아직은 기력을 잃지 않고 노력하며 살아주셔서 자식들은 남들 앞에 뿌듯한 자랑입니다.
그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계신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슬프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적에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쉬움을 알기에 ‘나는 그러지 말자. 살아 계실 때 많이 사랑해드리고 사랑 받아야지.’ 다짐을 했지만 현실에 억매여 매번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점이 오늘은 유난히 죄송합니다. 전 언제까지나 엄마에게 효에 있어서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실천하는 자식이 될 수 있을까요? 못난 저는 오늘날의 이런 죄 값을 후에 제 자식들에게 받을까봐 겁이 납니다.
엄마...
이번 생신에는 꼭 내려가서 미역국이라도 끓여드리려고 했는데... 또 틀린 것 같아요.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어째 이 모양인지 지난주부터 울적했던 마음입니다.
목울대가 싸한 감정이 북받치며 자꾸만 눈에 물기가 고이려고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드릴 수 있는 효가 결코 거창한 것만이 아닐진대... 그것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는데... 그저 보통의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일상들을 즐기며 사는 모습으로 간간히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전부일 텐데 말이에요. 저에겐 어찌 그런 일상들이 벅찬 것으로 다가오는 건지요. 그런 저를 지켜봤던 엄마의 심정은 벌써 까맣게 탄 재만 남았을 테지요. 요 며칠 부쩍 그것이 면목 없고 가슴 아픈 딸입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그 마음이지만 세월이 거듭될수록 사랑의 의미가 제게 달리 다가옵니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제가 어미가 되고 보니 시간이 한참 흐른 지난날의 엄마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아무리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더라도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견줄 수 없다는 것까지 제 자식을 키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왜 진작 그런 것을 엄마 곁에서 깨닫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일찍 알았더라면 더 철든 모습으로 부모님 말씀 잘 따르며 기쁨만 안겨드렸을 텐데요. 그렇다면 시집가서 지금처럼 자식 도리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살더라도 덜 죄송할 텐데요. 저는 태어나서 오늘 날까지 부모님의 가슴에 바윗덩어리만을 안겨드린 못난 딸만 같아서 날이 갈수록 가슴이 아파요. 하루 빨리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습니다.
엄마...
생신을 축하드려요. 엄마가 태어나신 날이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엄마가 제 엄마인 것이 감사합니다. 엄마는 또 엄마를 낳아주신 할머니가 그리운 날이 되겠지요. 생일이라는 것이 태어나서 대접을 받는 날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통으로 낳아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는 날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 역시 자랑스런 내 엄마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신 외할머니가 그리운 날이랍니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만 그리워하세요. 부쩍 우울할 때가 많아진 엄마가 걱정스럽습니다.
엄마...
귀찮다며 미역국 안 끓여 드시지 말고 딸이 특별히 감사한 날로 여기는 날인 생신 날 만큼은 손수 끓여야 하는 미역국이지만 정성을 다해서 끓여 드셔야 해요. 꿈에서라도 찾아 뵙고 풍성한 생신 상을 차려 드리고 싶은 딸의 마음을 헤아려서라도 말이에요. 엄마의 건강은 엄마의 것만이 아니라고 했던 말을 잊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하늘땅만큼 사랑하는 엄마를 제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다며 당당히 말하는 손녀딸이 있으시니까 그 손녀딸이 효도하겠다는 그날을 맞을 때까지 몸도 마음도 쭉 건강하시길 딸은 바란답니다.
2009년 11월 19일
늘 죄송한 딸내미가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