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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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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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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바라는 마음.


BY 솔바람소리 2009-10-28

 

“엄마, 오늘도 글 좀 쓰셨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인사 끝나기가 무섭게 안방을 가로막고 서서 묻는다.

어이가 없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주객이 심하게 전도되어 버렸다. 녀석이 익히 알고 있던 어미는 저희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솔선수범하여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틈틈이 공책이나 컴퓨터에 문장을 남기고 읽어주기를 즐겼다. 때론 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냈고 그것들을 자랑스레 내놓기도 했었다. 그땐 꼬박 밤을 새우는 것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열의가 서서히 시들해진 어미가 어느 순간부터 죽치고 앉아서 TV를 보고 누군가와 만나거나 전화로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녀석이 걱정이 됐는가보다. 학교에서 도서부원으로 봉사하는 틈틈이 책을 들고 와서 읽어보라는 은근한 압박을 해대기도 했다. 하지만 부실한 성적의 녀석이 선택 제 고교입학을 코앞에 두고서 지닐 염려는 아니지 않은가.

 

“아들은 공부 좀 하셨어요?”

“그럼요. 학교에서 놀다 왔겠어요? 엄마도 참...”

 

태산처럼 할 말이 많은 엄마가 약략하여 말하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녀석이 되받아 친다. 그리고 교복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벗더니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떨친다. 금세 팬티 차림이 된 녀석의 몸이 보기 좋게 매끈하다. 키에 비해 미달인 몸무게로 뱃살을 빼겠다며 공부가 끝난 늦은 밤에 달리기와 줄넘기 1000번을 해대는 것이 걱정스럽지만 그맘때 한창 복근에 집착했던 남동생들을 겪은 이력으로 묵고할 뿐이다. 언젠가 겨드랑이에 솜털 같은 털이 돋아났기에 자세히 보여 달라니 제 엄마를 변태로 몰던 녀석이 몸이 그대로 도드라져 보이는 삼각팬티만 입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마냥 지켜보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녀석이 커버렸다. 그런 놈에게 얼마 전,

 

“너 고추에 털이 몇 가닥이나 났어?”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내 질문에 아연실색한 녀석의 얼굴이 홍당무를 닮아가던 날, 나는 어리둥절할 밖에. 중학교를 들어간 이후로 녀석의 맨몸을 본 적이 없었다. 아들과 목욕탕을 다닌 적 없는 남편에게 녀석이 얼마나 성장한 것 같으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177cm의 지금 키가 최소한 183cm까지 커주길 바라던 어미가 문득 들었던 조바심으로 물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날 기차 화통과 견줄 목청을 높여서 어미의 심정을 연설하였고 기어코 놈의 입에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몇 가닥 났어요. 됐어요?”하는 쭈뼛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젠 결코 제 아빠에게 조차 벗은 몸을 보여줄 수 없다던 녀석이 툭하면 팬티바람으로 설치니 때론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한 때가 있다. 부모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창 예민해진 딸네미를 걱정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쉬이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다. “너 자꾸 그러고 다니면 한순간 확 내려버리는 수가 있다.” 협박을 날릴라치면 어김없이 변태엄마가 되고 말았다. 네, 네, 하며 고분고분 수긍하던 녀석이 중 2가 되면서 조금씩 바뀌더니 중3이 되어서는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어졌다. 놈과 근 1년 가까이를 고군분투한 것 같다.

 

후배를 훈계했다거나 선생님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서 지적해 사과를 받아냈다는 일화를 들었을 땐 발끈해서 함부로 나서지 말라며 호통을 쳐대기도 했다. 그런 내게 녀석이 “그럼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어야겠어요?” 반문할 때가 있었다. 잠시 머뭇거려야 했던 순간이었다. 나의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은 녀석을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점점 난해함의 지수가 높아진다.

 

“엄마, 제가 어제 잠깐 글방에 들어가서 엄마 글 봤거든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아서 어찌나 기쁘던지... 역시 엄마 글 솜씬...”

 

저를 보며 지닌 어미의 시름이 얼마나 깊은지 언제쯤 알려는지 세상 걱정 없을 것 같은 녀석이 계속 주절거린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있던 녀석이 글방을 찾았다니 역시나 온전한 집중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로 시작될 밀물 같은 잔소리를 삼키고 또 삼키며 눈에 힘을 실었다.

 

“네. 공부합니다요. 열심히 할게요. 제가 중간고사 때 올린 점수보다 더 많이 올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귀신같은 놈이다. 북 치고 장구 치며 이제 제 엄마를 손에 올려놓고 조물딱거리며 갖고 놀려한다. 이미 입이 한번 터지면 몇 시간 잡아먹고도 풀리지 않을 화가 쌓여있지만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누르고 또 눌러본다. 자라나는 녀석들이 만만하지 않게 다가올 때마다 지난날의 나를 비춰보게 된다. 그리고 나를 대했던 엄마를 떠올린다. 나 역시 엄마에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자식이었을 테지.

 

머지않아 놈은 충만한 자신감으로 겁 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넘어지고 구르며 깨치고 터진 상처에 피가 흐르고 고름이 잡히고 딱지가 앉겠지. 새살이 돋기까지 세상사에 얄팍했던 자신의 됨됨이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젊음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고 밑거름으로 삼으며 보다나은 미래를 위해 도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 설 수 있는 집념을 지닐 수 있기를... 책장을 펼치고 앉은 녀석의 뒤에서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