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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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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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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BY 솔바람소리 2009-07-16

여름날의 확연한 불볕더위였다.

작렬한 태양아래 땅과 건물들이 이글거렸고 거니는 사람들의

피부마다 열에 들뜬 모습으로 지쳐 보였다.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연이 된지 어느덧 10년이 되어가는 지기를 만나기 위해

숨 막힐 듯 한 더위를 뚫고 약속 장소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급한 성격에 언제나 그랬듯 약속시간보다 빨리 나와

있었건만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곧 한정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역시나 우린 오늘도 약속시간보다 앞당겨진 시간에 만나게 되었다.

 

큰아이 유치원 졸업식에서 만나 알게 되어 오히려 아이들보다

가까워지고만 우리는 8년이라는 연륜을 뛰어넘은 사이가 되었다.

만나서 알고 지낸지 얼마 후 ‘언니’소리를 못하는 내가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니 오히려 동생 삼으면 돈이 더 든다며 우리 사이,

친구가 맞다는 말로 정리를 해주던 그녀였다.

지금까지 서로에게 경어를 쓰는 우린 어느 날 문득 만나도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부담 없이 편하게 지내고 있다.

 

분명한 것과 경우 바른 것을 좋아하는 것까지 똑같은 우리는

늘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역시나’하며 신의 담긴 활짝 웃는

얼굴로 대면하곤 했다. 오늘처럼.

 

“어머, 왜 이렇게 덥대요? 나 때문에 땡볕에 나와서 어째요?”

 

한정엄마가 다가오며 말했다.

 

“덕분에 돈 안 들이고 썬탠하고 좋네요.”

 

주거니 받거니 나눈 몇 마디로 우린 금새 까르르 웃으며

더위를 피해 음식점으로 향했다.

 

늘 직업을 갖고 있던 한정엄마는 평소 불쑥 연락을 해서

“식사 할 수 있어요?”하고 묻곤 했는데 근간에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응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던 마음이었다.

 

모처럼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던 어제

얼마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당분간 쉬게 됐다며 함께

간간히 시간을 보내잖다. 그러자고 했다.

그 부지런한 성격에 멀지 않아서 다른 일을 찾게 될

그녀를 짐작해보며.

 

남편분의 벌이가 적은 것이 아니지만 아이들의 학비를

충당하는데 보탬이 되겠다며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늘 닮고 싶은 그녀다.

‘어머’ 소리 튀어 나올 법한 힘겨웠던 고비들을 털어놓으면서도

희망을 놓거나 좌절하는 법이 없던 것까지.

 

휴일에도 쉬지 않고 예능 쪽의 사업을 하는 남편의 매니저로

따라 다니거나 집안의 큰며느리 자리에서 동서들을 챙기는

것부터 시부모님을 대하는 자세, 부담이 되고도 남을

두 아이의 과외비 충당과 그 외에도 넘치게 들어가는

부수적인 학비들, 검소하게나마 가족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여가를 위한 계획을 실천하기까지의 신경들까지.

내 눈에 비췬 1인 다역의 그녀는 완벽, 그 자체였다.

대한의 모범적이고 강인한 아줌마였다.

 

지쳐가는 내모습을 대할 때 오히려 그녀는 내게 늘

대단하다는 말로 격려를 해주곤 했다.

내가 지닌 복을 일깨워주려 애썼다.

전전긍긍 혼자 속끓여가며 살아가는 나를 부럽다고도

했다.

 

“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갈까요? 어쩜 죽을 때까지

이러고 살지도 몰라요.“

 

덤덤한 표정으로 좌절의 말을 꺼내놓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아빈엄마를 볼 때마다 느낀거에요. 내가 관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직감이 잘 맞는 편이거든요.

내가 본 아빈엄마의 얼굴은 복이 넘쳐요. 그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도 복이 있어서 일거에요.

그런데 내가 이만큼 살아보니

쉽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아플 만큼 아프고

썩을 만큼 썩고 격을 만큼 격어야만 내 몫이 떨어지더군요.

분명, 좋을 날 올거에요. 믿어 봐요.“

 

감사한 말이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아플 만큼 아프고 썩을 만큼 썩고 격을 만큼 격어야만

내 몫이 떨어지더군요......>

 

내게 터득한 삶의 일부를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다.

그랬다. 돌이켜보면. 견디다, 견디다 포기하려는 순간 숨통 틜 일이

생겨나곤 했다. 그것을 알겠기에 조급하지 말자, 절망하지 말자,

나를 타이르곤 했었다.

 

‘죽으라는 법 없잖아. 이만큼 버텼는 걸.’

 

추스르며 견뎌내곤 했지만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머리꼭대기에서 장난질하듯 바짝 약을

올리곤 했다. 인내심이 바닥을 들어내고 속이 가뭄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고통을 절감한 후 절망의 끝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이 되어 세상 끝난 듯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는 순간이 돼서야 살아갈 길이 열리곤 했다.

결코 잔머리의 술수가 통하지 않는 내 인생을 알고 난후

반복되는 내 자리가 진저리치게 싫은 순간이었는데...

그녀가 나를 일깨워주듯 자신의 삶을 비춰 회개하듯

말하는 것들이 나를 다시 한 번 부끄럽게 했다.

 

우리가 함께 있는 동안 친구와 자식들, 친정동생에게

연달아 전화가 오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가 또 한마디 했다.

 

“봐봐요. 함께 있을 때마다 느낀 건데 늘 주변사람들에게

안부의 연락이 오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난 남편만 의지할 수 있는 것뿐이에요.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모두 내가 챙겨야하는 사람들뿐인걸요.

아빈엄마는 남편 분 아니고는 모두 지녔어요. 사실,

아저씨가 능력이 안돼서 그렇지 아빈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남들 그 이상이에요. 그것도 복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그녀의 말에

난 모든 것이 없어도 되니 남편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힘든 상황도

헤쳐 나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

날 부러워하지 말고 복인 줄 알고 사시라고.

 

식당에서 나와 그녀의 권유로 그녀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며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서로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살도록 노력하자는 정리된 결론에 도달했을 때

우린 뜻과 입을 모아 한마디 했다.

 

“결코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요!”

 

오늘 희망의 씨앗 한 알을 가슴 한편으로 품게 되었다. 씨앗이

싹을 틔우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모처럼 마음의 짐이 살짝 덜어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