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황이 어려울수록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한 거라며 내게
주입하며 견뎌왔다. 앞으로도 그 짓을 계속하게 될 나일 테지.
부쩍 요 며칠 강해야만 하는 엄마의 도리를 자가 최면 걸듯 남몰래
주절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쉬이 다잡아지질 않던 맘보였다.
지난 일요일 밤부터 아영이가 몸뚱이에 열꽃을 피움과 동시에 고열로 꼬박 하루를
시달렸다. 2시간 간격으로 병원약과 해열제를 번갈아 먹여도 39.5℃를 넘나드는
상황이 계속되기에 가까운 대학병원을 찾게 되었다. 12월 추위에 나체로 방치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어대는 딸의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의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병명이 바이러스성 감기로 보인다며 입원해서 지켜보자고 했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잘되는 일이 없다고들 하던데 병원은 예외인지 넘쳐나는 환자 덕에
호황을 누리나보다. 병실이 없다는 통에 12시간가량을 위급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난무하는 응급실에서 있다가 ‘신상’처럼 병실이 하나 귀하게 나온 것이 있는데 <3인실>
이라며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을 권해왔다. 너 아니어도 환자는 줄 섰으니 걱정은 없다는 듯
여유 자작한 입 퇴원계 담당자의 전화에 몇 초를 고민한 끝에 입실을 선택했다.
아픈 아이가 주변에서 벌어지는 영상과 소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6인실이 나오는 대로 옮겨 달라는 궁상스런 꼬리말을 남겨놓았다.
처음엔 단순히 열감기로만 여기고 2~3일 있다가 퇴원하겠거니 가벼이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터져 나오는 기침보다 열꽃으로 여기고 있던 아영이 몸통에
일어난 발진이 애를 태웠다.
소름 돋은 듯 몸통으로 온통 살짝 홍기를 뛴 좁쌀모양의 발진이 점점 더한 붉을 색을
띄더니 열기를 머금고 부어올랐다. 그곳의 가려움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항생제 반응검사를 비롯해 피 검사, 2바늘을 꿰매야했던 왼쪽 배 부분의 조직검사,
촬영실을 옮겨 다니며 찍어야 했던 여러 번의 X레이 촬영까지...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인지 병원매상을 올리기 위한 영업인지, 불쑥 솟는 의문까지 품고서 힘겨워하는
딸의 곁을 지켜야 했다.
약발이 듣지 않는 통에 가려워 몸부림치는 딸의 약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것,
바르는 것, 주사약이 바뀌기도 했다. 그 많은 검사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바이러스로 짐작된다는 거였고 바이러스의 종류가
수만 가지에 이르기만 대표적인 몇 가지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는 모호를 넘어선
헤매는 대사들뿐이었다.
작은 뽀로지 하나로 인해 동반되는 가렴증도 견디기 힘든 줄 알면서도 앞뒤할 것 없이
몸통 전체가 가렵다며 긁어대는 딸에게 악화될까하는 걱정으로 다그쳐야만 하는 모진
엄마가 되어 3일 동안 4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지켜봐야했다. 잠결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긁어대며 짜증을 내는 딸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
가려워 미치겠다는 몸에 연고를 바르고 나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스런 통증을
호소하는 아영이의 입술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져서 피가 났다. 얼마나 힘들까,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없는 무능한 나는 얼음을 가져다가 찜질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딸은 가렵고 따가워서 긁고 몸부림치느라고 나는 그런 딸을 가차 없이 제지해야 했기에
까만 밤을 하얗게 지센 밤이 끝도 없을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철저한 외로움을 둘이서
외로이 싸워야했다.
때론 참지 못하고 긁어대며 짜증내는 딸에게 나는 집으로 가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리곤 불 꺼진 병실 침대 위에서 눈물을 주체지 못하고 흘려대기도 했다.
남편은 딸이 입원한지 4일이 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시간 퇴근해야했기에 피곤해서 찾을 수 없었다는 남편의 변명조차
이틀에 한번쯤 튀어나왔다.
밤을 꼬박 센 내게 새벽 6시에 모닝콜 해달라고 했고 아들의 아침밥은 어쩔 거냐는
퉁명스런 목소리를 핸드폰 넘어서 던져댈 때 옆에 있으면 부쩍 빠져서 걱정이라는
머리카락을 몽땅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에 한번 꼴로 꼬박꼬박 집엘 들러서 아들까지 챙겨야했다.
남편에게 부탁했었다. 분명... 병원에 오지 않을 거면 집이라도 챙기라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제발 도리라는 것 좀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열흘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였다.
여전히 이틀에 한번 꼴로 술을 쳐 자셨고 혀가 말린 목소리로 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들르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엄마는 슈퍼우먼이어야 되나보다고 터지려는 분노와 피곤을 꾹꾹 눌러 참고서
밥이 없다는 아들의 힘 빠진 목소리를 걱정하며 자전거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했다.
며칠 못한 빨래를 돌리러 폐달을 밟았다. 반찬을 만들러 쏜살같이 달렸다.
분신술이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어쩜 이렇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인간이 없단 말인지...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절망을 안고서 홀로 남겨질 딸에게 얼음을 건네며 몸에 대고
있으라는 당부를 할 때에는 씩씩한 목소리로 허공 속에 띄워야 했다.
집과 병원과 자전거로 10분...
달리는 차들 곁을 속력을 내어 달리며 생각했다.
‘내가 무슨 죄지? 도대체 나는 태어나서 뭔 짓거리를 하며 사는 거야?...’
친정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딸의 sos에 어쩌든 찾아오실 것이 분명한 엄마가 매정한 사위행실을
대하게 되면 그나마 작게 품게 된 믿음에 또다시 괘씸 그득한 배신감을 안겨드리게 될
것이 죄송스러워서 입을 닫고 있었지만 맘과 달리 손가락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몇 번씩 엄마의 번호를 눌러대려 했다. 여전히 이기적이고 나약한 나...
남편에게 완전히 자립하고 싶었다. 그리고 했는지 알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으리...
수없이 가망 없음을 터득했고 옵션으로 포기를 소유하게 되어버렸기에,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을 향해 간간히 실망하고 속앓이를 하곤 한다. 그런 어리석은
나를 나는 종종 비웃게 된다.
무엇에든 대책 없는 남자, 계획도 없다. 책임감, 당연히 없다.
나약하고 어리석고 고지식하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모른다. 그의 특기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비겁하게 숨으려하고 포기도 빠르다는 것.
그런 남편이 5일 만에 병실을 찾아서 40분가량을 앉아있었다. 무책임한 사람이
병원과 집 사이를 혼자서 오가며 몸과 마음고생으로 쉰 파김치가 되어버린 마누라
앞에서 힘들어 죽겠다며, 몇 시간 잠자고 왔다는 입으로 씨부렸다.
그 말이 어찌나 가래침처럼 역겹게 들리던지.
일어나기 전에 잘난 낭군이 모처럼 아들의 밥을 챙겨 먹여야겠다며
기특한 말을 남겼었다. 어리석은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고 아들에게
알렸다.
“아빠가 가실 테니 혼자 밥 먹지 말고 기다려 봐봐...”
장장 2시간가량이 소요되도록 행방이 묘연해진 남편의 핸드폰을 손가락에
알배기도록 두들겨댔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학원시간 임박하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급한 밥 몇 술을 홀로 의무적으로 뜨고서 집을 나서야 했다.
그 후에 혀가 말린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 정신이야? 기막힌 심정으로 물어보니 여전히 남편의 18번 대사인 ‘알았어’가
튀어나왔다.
낯선 타지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막다른 골목을 맞았을 때의 절망감이 그러할까...
길을 잃은 미아의 심정이 이러할까...
여지껏 내가 버터 왔던 내 자리가 새삼스레 낯설게 느껴졌다. 늘 어리석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서있는 내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가야하는 모든 의미가 공기를 만난 알코올처럼 증발되어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 말았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주부 마음으로, 자유를 갈망하며 훌쩍 따나고픈 역마살 심보가
불끈 도지는 것을 억누를수록 늑골 속으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젠장할... 니미널... 그 옛날 외할머니가 궁시렁 대던 대사가 나지막이 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9층 병실 창밖의 야경을 내려다보니 화려한 유흥가 불빛이 울창한 숲이 되어
나의 눈을 채웠다.
냉랭하며 무미건조한 낮 풍경과 판이하게 다른 밤, 길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싶어 안달 난 듯 요염한 불빛들이 별 빛 되어 반짝였다.
<도우미수시 모집> 간판이 커다랗게 입구를 장식한 노래방, 안마시술소, 호텔과
모텔, 원룸텔.... 이곳이 관광지도 아니건만 웬놈의 숙박업소가 이리 즐비한 것인지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내 처지가 심히 비교 대며 더한 추락을 느끼고 마는 심정으로
나는 밑바닥을 휩쓸고 말았다.
그곳을 찾지 못함이 처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던
것이 아니었다. 4계절이 공존하는 거리의 풍경....
후덥지근한 열기는 여름이다. 새싹의 푸르름을 뽐내는 멀리보이는 이름 모를
가로수는 분명 봄을 외치고 있었다. 날 때부터 제색을 찾고 있는 단풍나무는 가을을
무색해 했다. 그 사이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을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는 여전히 겨울 끝자락에 삭발당한 모습 그대로 알몸인 채로 서있는
것이 꼭 나와 같은 것이... 나를 닮은 듯하여... 나를 빗대듯이 서 있는 것이...
마냥 슬퍼진 심정이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을 뒹굴게 했다.
“너와 나의 겨울은 언제쯤 끝날까...”
거지같이 비참한 심정으로 있다 보니 딸에게 상냥한 간병인일 수만은 없었고
집에 있는 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만을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있으며 간간히
주체치 못하는 짜증을 내고나서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오후 6시를 넘긴 시간에 저녁식사가 한창일 때였다.
소금이 귀한지, 아니면 영양사의 혀에 마비가 왔는지 도통 간을 맞추지
못하는 병원 밥이 엽기라며 깨작거리던 딸이 갑자기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왜 그래?”
뜻밖의 행동에 의아해서 물으니 아영이가 대답하길,
“엄마, 밥 먹는데 자꾸만 아줌마들이 ‘설사’ 와 ‘똥’ ‘토했어?’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 상황에서 밥을 먹고 있는 저도 엽기같아서요...ㅎㅎ“ 한다.
6인 병실에 제일 고참인 딸의 이웃들이 모두 돌을 갓 넘겼거나 그도 안돼는
유아들뿐이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대사들이 그런 것들뿐인 것을
덤덤히 받아 넘기고 있었건만... 아영이는 매번 고역이었나 보다.
웃음보가 터진 얼굴이 내겐 허무하게 다가왔다.
그조차도 슬픈 나는 하루 묵었던 <특3인실>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왜 병실을 옮겼어요?
하고 며칠 전 물었던 철부지 딸에게 구차한 설명대신 “언제 철들래?”
쏘아줬던 것까지 따따불로 미안하고 말았다. 나는 딸보다 더 크게 웃어버렸다.
"그러게... 푸하하하~!"
바닥을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제 할 일이 있어서 생겨난 거라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 태어난 한사람으로서 분명 막중한 책임감이
있을 터... 그것을 심중에 간직하려 하건만... 막중하고 묵직하게 여겨질 때가
살아가는 사이사이마다 나타나곤 한다.
때마다 나도 도망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당장에라도 엄마에게 전화해서,
"튼실하고 쌩쌩한 언니 좀 낳아줘!“ 하는 어처구니로 밥 말아 먹는 소리를 해대고 싶을 만큼
자아를 상실해댈 것도 같았다.
왜 이렇게 외로운 건지... 주변에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고 마는
나는 간간히,
“엽쎄요? 거기 누구 없어요...” 부르짖고 싶기도 하다.
나는 분명 미쳐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제기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