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보름 전쯤부터 이틀에 한 벌 꼴로 일한다며 나갔다.
생계를 위한 목적인지, 음주가무를 위함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갔다면 알코올냄새는 기본이요, 옵션으로 고기나 마른안주 냄새를
묻혀오곤 했다. 술에 대해서는 몇 해 전부터 내버려뒀다. 해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포기한 체, 차라리 빨랑 드시고 어여 가시덩가요, 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이런 나를 탓하기도 했었다. 관심이 없다나 뭐라나.
(인간은 만족을 못한다, 고로 남편은 완벽한 인간이었다...)
술 취한 날에 자신이 했던 언행을 기억 못하는 그에게 얼마 전에 알콜성 치매는
약도 없다드라, 했던 내 말을 그저 지어낸 협박쯤으로 생각하기에
자료를 찾아다 디밀었을 때, 여전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라써 조심 하께,
그 말이 전부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그의 조심은 3일을 넘기지 못했다.
신혼초반엔 나도 남편과 술의 결별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1년이면 그 비싼 한약을 두 제씩 먹였다. 금기시하는 것중 유독 금주를 강조하며.
그런 내게 언젠가 남편은 한약이 맞지 않는다며 다신 약을 먹지 않겠다했지 아마?
그 후로 언젠간 술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이 있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쪼르륵
약국으로 달려가서 몇 알을 구해오던 날, 약사가 주위사항이라며 약 먹고 술을
먹으면 큰일 난다고 했을 때 당당해 물었었다.
“그럼, 죽나요?”
“죽지는 않겠지만...죽을 만큼 힘이 들겁니다.”
죽을 만큼 힘이 들거라니 니들의 이별이 곧 코앞이다. 결의에 찼던 다음 날부터
애교라고는 해피 눈꼽만치도 없는 내가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쪼르륵 달려가서
밀려올라오는 닭살 피부를 감추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쟈갸, 이거~!”
내가 물과 함께 내민 작은 알약을 남편이 꺼림칙하단 듯 보라보더니,
“이거 뭐야...?” 하는 거다.
난 뚝뚝 떨어지는 성격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거짓말도 하기 싫어서
“그냥, 주는대로 먹어. 아~ 해 빨랑!” 했더니 남편이 지레짐작으로
“영양제구나?!” 하며 입을 벌렸을 때도 난 결코 ‘응’이 아닌,
“독약은 아냐.”라고 거짓말은 아니 했었다. 담날도 그 담날도...
하지만 꺼림찍은 했었다. 진정...
3일쯤 흘렀던 것 같다. 그 약을 먹인지.
낮에 전화를 한 남편이 앞뒤 자르고 대뜸 한다는 말이,
“야! 너 그 약이 뭐였냐?”란다.
갑작스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던 내가 ‘왜?’하고 되물었더니 남편이
긴 한숨과 함께 “됐다!”며 전화를 끊은 날.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평소와 달리 일찍 귀가한 남편이 달빛이 아닌 햇살을 등지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낯빛은 제빛이 아닌 체, 붉다 못해서 검은 빛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런 남편에게, 해도 안 떨어진 시간부터 퍼마셨냐며 타박을 열거하는
나를 지나쳐서 화장실로 직행한 남편이 오바이트를 행할 때도 난 굽힘없이
여전히 씩씩거린 채였다. 얼마 만에 씻고 나와서 침대에 눕는 사람이
만사 귀찮은 듯 눈도 못 뜨고 한다는 말이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냐며
생뚱맞은 소릴 하는 거였다.
“내가 뭘? 나처럼만 진실 되게만 살라고 그래...”
“나한테 준 약이 영양제라면서?”
“그게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내가 오늘 맥주를 딱 한잔만 마셨는데 이 상태다. 갑자기 열이 나고
속이 뒤집어지는데 사람들이 한다는 말이 약같은 거 먹지 않았냐고 묻더라.
영양제를 먹긴 했다고 했더니 다들 웃고 한다는 말이 마누라한테 다시 한 번
물어 보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던 거였다.“
주변에 있는 인간이라고는 하나같이 쓸모없는 사람들뿐이더니 비슷한 경험을
벌써 마스터 했단 듯 의미심장한 얼굴로 했던 말에 제대로 쪽팔렸다며
좀 전에 내가 씩씩됐던 것을 바통터치 하듯 했던 남편...
그런 불상사를 대비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난 결코 내 입으로
거짓을 했던 적은 없었기에 꿀릴 것도 없다고 홀로 격려하며 물러서지
않았었다.
“내가 언제 영양제라고 했어? 독약은 아니라고 했지...”
그날이후 남편은 한동안 술주정 속에 나를 독약먹인 비정한
여편네로 몰고 가더니 이를 갈고 또 갈았었다. 그리고 진정한 영양제
앞에서도 내가 먼저 먹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입에 대지 못했었다.
오기 파듯 술과 더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남편이었다.
우린,
많이 싸웠다. 숨 쉬듯, 눈만 마주쳤다하면 불구대천지 원수 되어
싸우고 또 싸워댔다.
그게 일상인 듯 바람 잘날 없이 늘 소란스런 나날들을 오래토록
이어왔다.
그와 3년을 함께 버티게 된다면 기적일거라고 여겨질 만큼 벗어나고픈
사람과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도 내겐 치욕이고 고문이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라는 주례사의 훈화말씀이 저주와도
같던 나날이었다. 우리에게 훗날은 있을까...
그런 우리가 17년을 함께 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이어가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전에 비한다면 우린 많이 조용해진 편이다.
지쳤던, 포기했든... 소란의 주기가 길어졌다.
어제였다. 밤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이틀 전에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서 담날 꼬박 tv와 눈 맞추고
있던 사람이 이틀 만에 또 나갔기에 으레 마시고 오려니 맘 정리하고
잠자리를 준비할 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컴퓨터 앞에서 숙제하던 아영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쪼르륵 달려가더니
인사말보다 앞서서 한다는 말이,
“아빠!!! 또 술 마셨지요?!”
“이 놈의 지지배는 아빠가 매일 술만 먹냐!” 하곤 당당하단 듯 입을 쫙
벌리고 딸의 코앞으로 고갤 내미는 거였다.
그런 모습 가만히 망부석 되어 안방 침대에 앉아서 보던 나와 눈이
마주친 남편이 거실에서 안방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손으로 이마에
내려 온 머리를 쓸어 올리곤 어리광처럼 말했다.
“나 오늘 마빡 깨질뻔 했어.”
말하는 입이 멀쩡한 걸 봐서 깨지진 않은 것 같기에 덤덤하니 나도
대꾸해줬다.
“어쩌다?”
“당신보고 싶단 생각하다가...”
“-_-^ 하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쁘긴 해. 인정은 하겠지만 몸이
상할 정도로 심각하게 그리워하면 안 돼지...누굴 탓하겠어... 이리
딸래미 잘난 내 부모님 잘못이지...“
제 아빠 입 냄새 검열을 마치고 다시 숙제하던 자리로 돌아가 자리 잡고
앉았던 딸이 제 아빠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듣더니 내게 항의할 것이
있다는 듯, 결코 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겠다는 듯 쪼르륵 다가오더니
눈을 맞추고 입을 여는 거다.
“엄마!”
“뭐!”
“... 맞아요... 이뻐요...에휴...”
우리나라에선 목소리 크면 이긴다더니 그래서 그 덕에 대체로 먹고
들어가는 것도 같다.
뭐! 하고 내뱉은 내 목소리에 그건 아니지요! 바로 잡으려던 처음 맘을
접고 참고만다며 멀어져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누가 뭐란 사람 없는
주방으로 나와서 난 혼자서 피식거리고 말았었다. 그 사실, 해피는 안다.
미친년 고쟁이처럼 산만한 심보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솟구치기도
하지만 생각에 치이다보며 이제 그마저도 잊어버리는 몹시도 단순해져버린
뇌의 기능이 아쉬울 때가 많은 요즘이지만 한편으론 감사하다. 정리를 하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마는 싸움이 많아져 가는 것이...
하지만... 여전히 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안주하지 못한다. 벽을 허물지 못한다.
긴장의 연속에서 사정없이 뒤통수로 날아들던 상처들이
인이 배긴 상태에서 늘 맘 한쪽이 전투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장에서 총 들고 누워 자는 병사의 잠자리처럼 늘 전투태세다.
그런 내게 자문한다. 너 겁쟁이지?
그리고 노력하려한다... 오늘만 생각하자. 오늘 안전하면 된 거야.
내일 몫은 내일로 남겨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