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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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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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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 뽑아주세요.


BY 솔바람소리 2009-03-12

몇 주 전쯤 일이다.

 

"엄마, 조개젓은요?“

 

아침상을 차리느라 분주할 때 반찬을 주시하며 수저를 놓던 딸이 물었다.

 

“방에 있잖아... 아니...화장실에... 아니!!! 야, 이 기집애야.

반찬이 냉장고에 있지 어딨어?!“

 

방학동안 좀은 느슨해졌던 맘이 아이들 개학과 함께 다시 긴장상태로 돌입했지만

부쩍 놓을 때 많아진 정신 줄이 더 멀리 출장까지 아니, 그보다 더한 분실지경에

도달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시들지 못하는 급한 성격 탓에 맘과 머리와 입이 따로 놀 때가 많아 졌기에

받는 스트레스가 점점 포인트 누적되듯 쌓여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려는 사람이 있었으니... 것도 한창 활성화되어 뇌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야 할 아들이라니 암담함 그 자체로 녀석을 종종 바라봐야 했던

내가 이웃들과 소통하며 요즘 아이들 학교와 학원으로 돌며 받는 스트레스가 원인인지

건망증 심한 것이 내 아들뿐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기에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건만...

 

그 아침,

정신 산만한 상태로 앉아서 밥술을 뜨는데 아들 녀석이 입을 열었다.

 

“엄마, 저는 엄마보다 더 심각한가 봐요...”

“갑자기 그 말은 왜 나와?”

“엄마가 조개젓이 방에 있잖아! 하실 때, 전 속으로 아영이 바보 아냐?

조개젓이 상에 없으면 방에 있는 거지... 수긍했어요. 그런데 엄마께서 다시

화장실에 있다고 하시 길래... 맞다! 화장실이지? 했다는 거잖아요.“

 

어처구니 상실한 아들의 말에 오히려 웃음보가 터져버린 나는 하마터면 입안에

밥풀을 뿜어 댈 뻔 했었다.

내가 누굴 탓 하겠니, 그 엄마에 그 아들이겠지...속엣말 품었던 날이었다.

 

자우지당간, 엄마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썬다고 해도 ‘옳소!’할 녀석이

때론 마마보이가 될까하는, 걱정도 팔자라고, 박복한 난 그 팔자마저 타고 난 건

아닐까, 그 걱정까지 덤으로 붙은 마음무게로 지냈었다.

요즘 들어, 예견했던 대로 어김없이 봄을 지대로 앓고 있는 맘보로 주변은

정상인데 오히려 삐딱한 맘과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문제덩어리가

어쩜 내가 아닐까... 했던 마음과,

도대체 나란 존재가 땅바닥 위에 뒹구는 돌멩이보다 못한 쓰임새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했던 자책까지 기승을 부렸고, 그런 쓰잘 떼기 없는 심정마저 혼란스러워서

부쩍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이었다.

 

그럴 쯤, 수원 사는 사촌 남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 누나마음 예견하고 연락한 듯,

 

“누나! 내가 차 가지고 올라 갈 테니 어디로 떠나 볼까나?” 했다.

 

몇 개월 전부터 작업현장이 군산으로 정해졌다며 20명 가까운 인부들과

합숙하며 지내고 있다던 녀석이 한 달 전쯤 갑작스레 제 식구들을 대동해서

다녀 간지 얼마나 됐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제 마누라 옆에

있다면서 모든 혹을 떨쳐버리고 나와 단둘이 부산, 해운대에 가서 회라도

먹고 오고 싶단다.

 

그놈의 고집을 알기에, 쉽게 떨어질 녀석이 아닌 줄 알기에, 하나만 알았지

둘 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몰아붙일 녀석을 알기에, 나날이 발전하는 잔머리를

굴려서 장황하게 길어질 수다를 줄일 수 있는 대사를 늘어놓았다.

 

“네 놈이 지닌 돈이 넘쳐나서 밑에 돈이 숨 쉬기 힘겨워서 그런 발상 계획했다면

말이다, 결코 누나는 제대로 된 호강을 하고 싶다. 부산보다는 비행기 타고 제주도

푸른 물에 발 담그며 싱싱한 전복회로 배를 채우고 잡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여행을

운운해줘.“

 

뻔뻔하기 이를 때 없는 내 제의에 녀석이 “제주도?” 하고 되묻더니 몇 초 머뭇거렸고

그건 늘 제 손에 쥐어져 살고 있다며 객기담아 호언장담했던 와이프에게 상담해봐야

할 문제라더니 곧바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땅에 끌리는 떵배를 들썩거리며 웃어대니 숙제를

하던 딸이 쪼르륵 달려와서 웃는 이유를 설명해달란다.

 

“글쎄, 삼촌이 엄마 데리고 제주도 다녀 오겠다네? 엄마 없어도 밥 챙겨 먹어라.”

요점 실은 농을 던지니 입이 댓 발 나온 딸래미 한다는 말이,

 

“엄마...저도 갈래요... 저도 제주도 가고 싶은데... 엄마 정말 삼촌이랑 둘이서만

제주도 갈거예요?“ 한다.

 

“그게 말이 되니? 비행기 표 값만 얼만 대. 지금쯤, 삼촌은 엄마 덕에 외숙모

앞에서 무릎 꿇고 손까지 들고서 벌서고 있을 걸?”

 

아영이 말에 꼬리 물어 또 다른 대꾸를 하고 있을 쯤 약속 지키듯 부리나케 녀석의

발신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트위스트를 쳐댔다.

농담이긴 했지만 진담도 담겨있던 마음으로 제주도 넘실대는 파도를 볼 수 있다면

까짓 남편과의 실랑이 벌일 마음도 있긴 했던 마음으로 슬라이드를 밀어 올렸다.

 

“누나... 그건 10년 후에 하면 안 될까?”

 

멋쩍은 듯 좀 전과 달리 볼륨 줄어든 목소리가 이내 들려왔다.

 

“야! 올케가 혹시, 형님 벌써 노망난 거 아니냐고 안 묻디? 그리고 이놈아,

길게도 잡는다. 큰소리 뻥뻥치는 놈이 고작 누나 데리고 제주도 가는 것을

10년 뒤로 잡냐? 누나가 누구야?! 썩어도 준치라고 자슥아, 없이 살아도

니들 앞에서 누난 언제나 한결같이 양보다 질로 버티고 싶은 누나야! 담부터

여행이란 말은 네 놈이 먼저 꺼내지마. 가고 싶으면 내가 네게 연락할 테니,

그땐 하던 일 모두 팽개치고 누나 모시러 달려와라. 알았냐?“

 

장황한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보통 아닌 녀석도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는지

잠깐 뜸을 들이더니 한다는 말이,

 

“음... 사람이 갈 때가 되면 변한다더니... 누나가 때가 됐나보네...” 라나...

그 말에 부지런히 대꾸를 해줬던 나...

 

“그려, 차라리... 갈 때까지 기둘리지 말고 염장질러서 지금 보내버리지 그랴?”

 

때론 걸려오는 전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가 있다. 핸드폰과 집전화가

동시에 울려서 전화교환원 놀이하듯 양쪽으로 받아들고 한쪽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때가 있을 정도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근처에 살다가 광주로 내려 간지 10년 가까이 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엔 빈번했던 연락이 점차적으로 늦춰지더니 이젠 잊을만하면 한번씩

연락을 해대는 그 친구와 내게 있어 분신이 되어버린 친구에게 연락이 동시에 왔던

관계로 몇 시간을 교대로 받아가며 통화를 감행(?)해야만 했었다.

 

분신된 존재의 친구에게 양해를 바라며 광주의 친구와 여러 번에 걸쳐 몇 시간 째

통화를 먼저 했다. 그런 통화를 하기 며칠 전, 늦은 밤 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몇 번의 문자 메시지가 있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형식적인 한 번의 답변만

날린 것으로 끝맺음을 했던 나... 통화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있어야 했다. 한껏 풀죽은

목소리로 그동안 힘겨웠던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한 친구...

 

신기가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았지만 불려먹을 능력은 못되기에 눌러주고 있다던 것을

겪으며 알았었건만, 작년쯤 정식 내림굿도 받지 않은 채로 목탁을 두들기며 손님들을

받았다는 뜬금없는 말과 함께 몇 개월 전 남편이 유부녀인 연상의 내연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놀라운 사실들을 늘어놓았다.

1년 동안 못해도 두어 번 연락을 해왔던 친구의 말을 들으며 그 동안 왜 그 사실을

숨겼냐고 물으니 자랑거리가 아니었기에 그랬단다...

그럼 그 자랑 아닌 사실을 지금은 뭣 하러 털어 놓느냐고 하니 이제는 힘겨워서

경험 많은 내 조언이 필요하단다. 경험 많은... 그 말이 내포한 뜻을 알기에 반갑지만은

않았던 그 날...

 

조언을 운운하는 친구에게 먼저 내 신수를 풀어내 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그리고 끊었던 전화가 10분 후쯤 다시 걸려왔고 한다는 말이,

 

“뭐가 궁금한대?” 하고 물었다.

 

때론 매몰차기도한 성격 탓에 단도직입적으로 난 입을 열었다.

 

“야! 그건 네가 알아서 말을 해줘야지. 내가 궁금할 것까지 알아내서 보이는 대로,

나오는 대로, 열거해야 하잖아.“ 땍땍 거렸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것이, 꼭 알고 싶은 것이 있을 거 아냐...”

 

“참말로, 네가 친구나 되니까 그럼 양보해서 물어 보마. 내가 점점 더한

돌 머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서 자신감과 의욕마저 상실되어 가고

있는데 글을 계속 써야 할까? 아니다... 쓸 수 있을까?“

 

“응, 그건 네 천운이야. 타고 난 걸. 넌 하늘의 돈을 갖고 태어난 사주라

글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거 첨 듣는 얘기 아니잖아.“

 

“그려, 첨 듣는 얘기는 아니다만 점점 그 말에 믿음이 배반되려하고 한다.

글로써 인정이라... 어느 세월에... 그건 그렇고, 나 남편 말고 남자가 또 있냐?“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해?”

 

“지금까지 할 말 못할 말 다 늘어놓고 뭔 새삼스런 소리야? 그게 뭔 대수라고”

“있지... 네가 맘을 안 줘서 그렇지...”

 

둘의 대화가 신수를 풀어낸다는 무속인과 고객으로서의 대화가 아닌 친구간의

관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서로의 자괴감에 빠져서 한쪽으로 흘러가고 있을 쯤

제 삶조차 힘겹게 꾸려가는 내게 부담백배 조언자의 자격을 부여한 친구에게

내가 느낀 그대로의 마음을 꺼내놓았다.

 

“네가 그리 믿고 살던 남편에게 받은 배신감, 상실감, 그동안 보고 겪은 것

많은 나기에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된다만 거두절미하고 묻고 싶다. 헤어질 수

있겠니?“

 

“하려고 했었지...”

 

제 상황을 설명하려는 친구의 말을 매정하게 끊어버리고 나는 말을 이었다.

 

“했었지, 를 묻는 게 아냐. 지금 할 수 있냐고. 우리가 하루 이틀 가정 꾸려온거

아니잖아. 넌 나보다 결혼이 몇 년이나 빨랐기에 더 잘 알거 아냐. 지금 상황을

얘기하라고. 했었지란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잖아.“

 

“......”

 

“그럼, 살어. 살면서 억울하고 분해서 용서가 되지 않을 때가 있겠지만 어쩌겠어.

너 역시 엄마이기에 수험생 딸과 곧 누나 뒤를 바톤 터치할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을 마음을 운운할 거 아냐. 그렇담, 네 남편이 아니라는 빤한

발뼘을 하면 ‘그려, 임마!’ 하고 말어.

자꾸만 결단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후벼 파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좀만

젊었어도 그 혈기에 왜 그러고 사냐고 대범도 떨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게 결코

맘 먹은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잖아. 옛날에 연륜 있는 분들이

해주셨던 말씀들이 새삼스레 이해되는 것들 많아졌잖아. 이제는 우리가 그 나이가 되어

새댁들을 대할 위치에 있는 걸. 괴롭겠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는 년 횟수까지 꼽으며

지난 날 남편의 과오를 쉽게 잊지 못하드만, 그 증상 네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번뇌

많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거야. 견뎌내야지. 결코 못 잊을 것 같은 날카롭게 날이 섰던

그 맘도 점점 무뎌지긴 할 거야. 너, 내 성격 잘 알잖아. 맺고 끊는 것 확실한 나도

지옥 같은 내 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태 살아가는 걸. 우리처럼 못 견디고 포기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참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내가 전에도 그랬지?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게 된다면(?) 금실 좋은 부부가 듣고

가자미눈으로 날 바라볼 사람들 많겠지만 말이다, 공약으로, 김정일과

협상해서 남자들을 모두 싹 쓸어서 북으로, 여자들은 모두 남한으로 나눠서

살게 하자고 할 판이라고, 남자 놈들 모두 아오지 탄광에 몰아넣고 햇볕 차단

시켜 달라는 주의사항을 열거하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 담날인

음력 7월8일 딱 그 하루만 판문점에서 남녀상봉을 허락할 판이라고 말이야...

야!!! 나 대통령될 수 있을라나?“

 

우스갯소리 마지막 멘트로 날리니 그 유머 여전하다며 웃음보 터진 친구에게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그 일, 당장 때려 쳐라. 신기란 모두에게 있다더라. 힘겨워서 약해질 쯤

그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거야. 나도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만 사람들의 앞날을 내다 본 다는며 정말 자만 닮은 용감 떠는 그 사람들

믿지는 못하겠다. 너, 네 맘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존재를 인정하지 말고,

받아들이지도 마라. 남의 일이기에 내가 쉽게 입만 열고 있다만, 결코 쉽지 않을

나날로 있을 너란 것이 짐작 된다만...넌, 그런 일 할 사람 못돼. 내림굿도 받지 않은

상태로 네가 그러고 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리고 설사

내림굿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넌, 내게 조언을 바랄 정도의 그 능력과 마음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다니던 천주교나 열심히 다녀라. 맘 굳게 먹고 말이야.

내 말에 섭섭하지? 매정하다며 친구 맞느냐고 따져 묻고 싶지? 하지만 나로서는

친구이기에 해줄 수 있던 말이었다.

네가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일을 쉽게 벗어 날 수 없다면

말이다, 제대로 배워서 철학관이나 상담소를 차려서 네가 받은 아픔을 경험삼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조언담긴 위로를 전도할 매개체가 되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도 같은데...“

 

그날 친구에게 해줬던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 어쩜 더한 혼돈으로

힘겨움만 가중 시켜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연락을 해보지 않았다.

 

워낙 손수 전화버튼을 누르는 성격이 못되는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알기에 포기한 그들이

배려하듯 먼저들 전화를 주곤 했지만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힘겨울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궁금한 마음으로도 선뜻 연락할 수 없던 변명같은 마음이

지금은 친구의 독립적인 정리가 필요할 듯 하여 자중하고 있는 중이다.

 

난 주변 사람들과 늘어놓는 수다 속에서 때론 흩어졌던 내 자아를 정리하게 될 때가 있다.

날 찾아주며 대화를 원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때론 내 짐만으로 버거운 솔직한 심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던 때도 있던 맘이지만 거절 못한 마음으로 만남을 갖고 나면 오히려

그들로 인해서 내게 득이 될 때가 많음도 안다.

오늘 이렇게 몇 자를 적을 수 있게 된 것도, 결코 나태할 수 없는 자리에서 내 신세를

볶고 있는 것도 그들 덕이며, 때론 웬수같은 남편 덕이기도 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모르는 것은 뭘까?

난 참으로 아는게 많고 잘났으며 발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인 듯 하다.

 

(아컴에 ... 굴러 다니는 돌멩이가 없기를... 그래서 날아드는 돌팔매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