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06

귀 빠진 날?


BY 솔바람소리 2009-03-11

“하이트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축하해.”

 

김치, 무말랭이무침, 멸치, 김치찌개가 전부였던 평소의 밥상 위 풍경에 그다지 특별

할 것도 없는 메뉴에 지나지 않던 미역국을 올려놓았다. 국과 찌개를 동시에 올려놓은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아침상에

아침 댓바람부터 하트 모양으로 여러 과일과 핑크색 초코 가루로 멋을 낸 유명브랜드의

생크림 케잌에 39해를 뜻하는 초에 불을 밝혔다는 것도 특별함을 벗어나 기이하기까지

했던 아침 밥상이었다.

 

“다시 국어공부 해야 하는 거 아냐?” 라며 간간히 내가 남편에게 농담처럼 던졌던 말들이

또 다시 튀어 나올 뻔하기도 했던 아침이었다.

 

외래어가 남편 입에서 튀어 나올 때마다 주인 잘못만나서 세련미(?)미를 잃을 때가

빈번했었다. 핸드폰이 남편의 입을 빌어 나올 때는 헤드폰이 되기 일쑤인 것처럼.

오늘 아침엔 ‘하트’를 ‘하이트’라며 어느 회사의 맥주 이름으로 바꿔 말한 것도 좋은 예.

그뿐 아니다. 때론 나랏말조차 남편 입에서 고생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쑤시개를 입쑤시개, 귀 후비개를 귀쑤시개로 바꿔 말하기도 했다.

혀가 짧거나 길지 않은 적당한 사이즈를 유지한 남자가 어째 그럴까?... 신혼 초엔

그런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음이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악영향이 미칠까봐

때론 바로 잡아 주겠다며 언어교정(?)모드로 돌입했던 적도 있었지만

고향인 해남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벗어나서 서울상경을 시도했던 사람이 46살이

되도록 입에서 사투리를 떼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부심처럼 지니고 사는 고질적인

남자에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체념하고 말았던 나였다.

 

늘 피 끓는 젊음만을 소지한 체 살아갈 줄 알았던 내가 어느덧 불혹이 멀지 않았으니...

성질만 급한 나는 벌써부터 상실감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은 내가 귀 빠진 날이란다.

오직 이날만큼은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축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소시 적이

있었지만 그때를 훨씬 벗어난 세월 속에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고달픈 가정의 안사람이

되어 가진 것 없는 남자와 살다보니 변한 것이 있다.

 

부모 품 벗어난 순간부터 생일을 한때는 저주받은 내 인생이 점지된 날인 듯

자책했고 세상 밖으로 날 끌어낸 부모님을 원망하고픈 날이기도 했었다. 그런 세월을

또 다시 흘려보내고 나니 자라는 내 자식들 모습에서 나와 내 부모님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때늦은 반성을 할 수도 있었다.

또, 나처럼 고집불통 애물단지를 포기하지 않고 격려에 기까지 북돋아 주신 부모님의

인내심과 속 깊은 정을 알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그 맘 표현하기보다 자중하며 내 새끼들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나...

 

지난 일요일 오후였다.

무료해하는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4km남짓 떨어진 올림픽공원을 자전거로

다니며 곳곳에 솟아난 봄들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와서도 대형할인매장을 돌며 시간을

축내고 남은 시간에 강아지 목욕과 아이들 건사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났던 그 시간에

친정아버지께 전화가 왔었다.

 

“딸 잘있나 궁금해서 전화했지. 잘 먹고 지내는 거냐?”

 

얼마 전 언 땅이 완전히 녹지도 않았을 들판을 돌며 캐낸 냉이의 손질까지 마쳐서

바로 음식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게 진공 포장시킨 것과 무말랭이, 말린 칡, 하다못해

마른 김까지 담아 보내주신 부모님은 평생이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는 딸의 무소식에

대한 걱정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번번이 먼저 전화를 주셔서 하시는 18번 대사가

보릿고개를 연상시키시니, 그런 걱정 안겨드리는 못난 딸은 이젠 부끄럼만 느낀다.

하지만 그런 깨침을 표현하기보다 늘 한결같이 철딱서니 없는 척을 유지하려한다.

그것이 내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점점 내 연기의 수준이 상승세를 타는 것도 같다.

 

“그럼! 아빠가 챙겨주신 것이 얼만데, 우린 모두 배불리 먹으며 건강하게,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지요. 하여튼 난 아빠의 사랑 속에 나날이 자라고 있는 느낌이야...ㅎㅎㅎ“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뒤 아버지께서 배려하듯 엄마를 바꿔주셨다.

부쩍 욕이 줄어든 엄마가 낼모레면 불혹인 딸에게 착한 딸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는 말씀을 운운하셨다.

 

그렇게 이틀 후인 어제 아버지께 또 연락이 왔었다. 돈 십 만원을 통장에 입금시켰다며

저녁에 가족들끼리 외식을 하라신다. 받는 것에 이골이 난 딸이지만 역시나 송구스런

마음이었고 역시나 그 맘 게 눈 감추듯 숨기고 철부지 딸이 되어 “땡큐!”를 유감없이

외쳤다.

 

그런 상황에 인터폰이 울렸다. 택배라는 말에 문을 열어주니 커다란 박스하나가 먼저

들어오며 기사 한다는 말이 설치를 해주겠단다. 내용물이 뭐냐니 우리 집엔 넘치는

커다란 가습폭포(폭포처럼 물이 흐르는 가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6년째 살고 있는 빌라도 못되는 18평 단독주택에서 4명이 살아가야 하기에 난 최대한

공간 확보에 신경 쓰는데, 그 이유로 김치냉장고조차 크기를 늘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게... 그렇기에

결코 기뻐할 선물은 아니었기에 보낸 이가 누구냐고 기사에게 물으니 큰 올케 이름을 댄다.

 

모양 자체만으로도 한 인테리어가 될 조형물인 그것의 가격도 만만치 아니었을 테지만

결코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났던 기분을 가라앉히는데 걸린 시간이 족히

1시간을 넘긴 후였다.

 

얼마 전에 지구대 소장급이 된다는 경위로 진급한 큰 남동생에게 십 만원짜리 꽃바구니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을 받은 날 녀석은 ‘고마워’하기 보단 실속 없는 것에 웬돈을 썼냐며

타박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때, 누나 형편만을 걱정했지, 허망해진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동생에게 말하기도 귀찮아서

 

“니 팔뚝 굵다, 자식아! 실속 있는 동생만 못한 누나 많이 가르쳐라”며 면박을 주니

멋쩍은 웃음소리를 냈던 그날의 큰 동생과 한창 유치원 꼬맹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큰올케에게 보내준 선물에 대한 답례문자를 날렸다.

 

<엄청 이쁘다. 어쩜 그렇게 생각이 깊니? 비싼 물건 디따 고마워!>

 

그 후로 순번 정한 듯 올케, 그리고 동생에게 차례로 연락이 왔다.

올케 첫마디가 맘에 드냔다.

 

“당근,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치 않는 니 형님 몰랐니?” 라며

경쾌하게 대꾸하니 강아지 키우는 실내를 생각해서 고심 끝에 결정한 거란

부연 설명을 늘어놓았다.

 

난, “니들의 초현실적인 세심함에 난 늘 감탄하며 배우는 것 많을 뿐이야” 하고

대꾸해줬다. 활달한 시누이 목소리에 더한 뿌듯한 맘이 되었는지 애교 섞인

목소리에 기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렇게 올케와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시간에 출근한다는 큰 동생 전화 왔다.

 

어차피 나름 숙제처럼 여겼던 마음으로 준비했을 그들의 이벤트에 내 궁색한 상황과

달갑지 않은 마음 그대로를 들어내 보일 수 없는 2년 더 산 연륜으로 깨친 아량으로

난 통화 내내 행복을 담아 멘트를 날렸지만 나름은 날카로운 뼈를 박은 채였건만...

물오른 연기 탓에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듯 했다.

 

“실속있고 현실적인 니들을 난 언제나 따라갈지 모르겠다...”

 

감탄을 자아내며 고마움을 표하니 팔불출 다된 동생이 그 세심하고 실속적인

굿 아이디어가 제 와이프 거란다. 그리고 보태는 말이 작은 것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후에 넓은 집으로 갈 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큰 것을 구입했단다.

 

“선경지명까지 두루 지닌 너희는 결코 아랫자리가 아니 될 말이니 늘 반성하는

누나와 자리를 바꾸자‘ 하니 실속만 좋아했지 눈치 젠병인 동생이 더한 탄력을 받은듯

말이 길어졌었다.

 

그날 밤...

아침 무렵 딸이 한껏 티 나는 무색한 007작전을 펼치듯 출근하려는 제 아빠 손을

이끌고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 속닥거리고 밖으로 나왔던 밤 8시쯤이었다.

아쉬운 술 한 잔을 꺾었다며 고기냄새를 향수처럼 유감없이 묻히고 들어 온 남편이

내 말류에도 불구하고 9시에 학원 끝난 딸의 마중을 간다며 나섰던 1시간쯤 후에

들고 왔던 케잌 박스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 그것을 상에 굳이 올려야 된다고 우기는 통에

요즘 이틀이 멀다하고 마셔댔던 술자리가 저녁에도 있을라나 보다는 포기한 짐작으로

‘네 맘대로 하세요.’ 했었다.

잠이 부족한 아들이 정신 못 차리는 밥상머리에서 생일 축하노래까지 강요했던 남편과

어색한 그 분위기에 아들은 손뼉 장단, 딸이 총대 메듯 목청 높여 시작한 가사가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에서 뒤에가 뭐였는지 까먹었다고 헤맬 때,

늦은 밤 노래방을 다니며 모은 라이터는 어쩌라고 한 음치를 벗어내지 못하는 남편이

코치를 자처하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시킨 <생일축하곡>... 그런 진풍경 덤덤하니

받아들이며 난 꿋꿋이 미역국을 떠먹었으며 밥 몇 술을 뜨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내미는 촛불 앞에서 한 알의 밥알이라도 튀어나가는 불상사를 막겠다는

신념으로 깨끗이 씹어 삼키고 난 뒤...한 번에 불어 끄려던 계획이 아쉽게 두 개를 남기며

무산 될 쯤, 포기치 않고 찝찝함을 털어내며 두 번째 입 바람으로 마무리를 한 뒤

고생한 식구들에게 “이제 어서들 식사 합시다” 를 외쳤을 때... 남편이 깜빡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아쉬움 담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아!!! 맞다. 뻥튀기를 안했네?”

“?...!!!”

 

17년 남편과 함께 살다보니 그의 언어를 귀신같이 알아채게 된 경지에 도달했기에...

아이들이 ‘갑자기 웬 뻥튀기?’ 냐는 식의 의문 담긴 눈초리로 나를 행했을 때 난

남편의 대변인인냥...덤덤하니 답변했다.

 

“아빤, 의성어를 즐기시는 분이다. 니들, 의성어가 뭔지 알지? 원초적인 소리를 뜻해서

표현하시는 거야. 뻥튀기라 하면 곧 ‘뻥!!!“ 소리를 내는 폭죽을 뜻하시는 거다.“

 

내 설명에 아이들이 정말이냐고 제 아빠에게 시선을 돌리니 남편이 제대로 된

설명이라며 10점 만점에 10점을 먹일 듯,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희괴한 나의 생일날 아침이었다....

 

그 상이 차려지기 전인 새벽 6시쯤 출근준비로 일찍 깨어계실 엄마에게 일찍부터

전화를 드리게 되면 놀라실까봐 문자를 날렸었다.

 

<엄마,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30분 후에 전화를 주신 엄마가 또 선수를 뺏겼다며 기쁜 목소리로 ‘딸래미’를

부르셨다. 그리고 미역국을 끓였냐기에 귀찮아서 말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날 낳느라고

고생하신 엄마께 해드리는 마음으로 맛나게 끓여놓았다니 거침없이 ‘효녀’라는 과찬논을

늘어놓으셨다.

 

효녀... 전국에 있는 효녀들이 들었다면 대거로 쌍지팡이 집고 나설 그 말씀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전부인양 초등학생 철부지처럼 어리광을 부린 것이

전부였던 그 시간이 몇 분이나 흘렀을까. 작은 동생내외가 축하메시지 1등자리만은

놓칠 수 없었다는 듯 보낸 것에 바로 답장을 날리니 잠깐 쉬고 있던 전화가 또다시

요란하게 울려댔다. 맞벌이로 바쁜 탓이었을까 평소와 달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운 듯 축하인사 사이사이 반성의 여운을 담아두기에 결코 그럴 필요 없다며,

1년 두 번의 명절 때마다 챙겨 보냈던 선물들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라며 난 참 복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너스레를 떨어주니 곧 짬내서 찾아 뵙겠단다.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일로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친구에게 문자가 왔고

난 꼬박꼬박 답방을 날렸다..

 

<뭐해?>.... <집안 치우려고>

<바쁜가보네?>...<난 괜찮은데 네가 아마도 바쁠 것 같다.>

<남편 나갔니?>...<응>

 

생판 남남이 9년을 알고지내며 나눴던 우정이 이심전심경지에 오른 오늘 날...

짐작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질 때가 많았다. 오늘도 그랬다. 난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첫 번째 날아 온 문자에 그것이 지하철에

올랐나보다고... 내게 깜짝 이벤트를 선사하려고 들떠 있겠구나... 하고 짐작했던

순간이었지만 그 기분 만끽하라며 시치미 떼고 있던 나였다.

그리고 2시간도 체 되지 않아 인터폰 벨이 울렸을 때 누군가가 구둣발로 계단을 오르는

순간부터 알았던 직감으로 “문 안 잠겼어!” 하며 맞으니 친구가 “뭐야? 알고 있었어?”.

하며 허탈해 했다.

 

그런 친구의 손에 큼지막한 케잌 박스와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는 것이 보였고

가차 없이 속알딱지 없던 큰 동생과 한 피를 나눈 것을 증명이나 하듯,

케잌 있는데 또 사왔냐며 돈으로 바꿔와, 를 매몰차게 외쳤던 맘보로 건네받은

쇼핑백을 들춰냈던 내가 “남편이 쉽게 보내주더냐?”며 물으니 싸우고 왔단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잘 했지?”라나...

결코 부정을 하지 않는 낙천적인(?) 내 성격으로

“암, 잘했지. 네가 싸우던 말든 난 상관없지. 선물만 받으면 되는 걸. 야, 줄 것

다 줬으면 이제 가봐.“

 

결코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던질 수 없는 농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춘기 소녀처럼,

날아가는 참새의 뭐라도 본 것 마냥 우리는 한바탕 신나게 웃고 말았다.

그리곤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꺼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수다와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즐거움을 입과 배에게 선사한 뒤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시장에서 봄이

둠뿍 담긴 예쁜 윗옷까지 받아 챙긴 후 또다시 들어와서 더한 수다를 떨었던 오늘...

간간히 내게 오는 문자와 전화 통화를 지켜보며 ‘그놈의 인기‘를 친구가 운운하며

늘어놓았던 역시나 내가 듣기에 과했던 칭찬 사례에...

 

그런 오늘이었다.

오후 늦게 봉창 두들기듯 생일인 것 이제 알았다며 축하한다고 늦은 전화를 주신 3째

큰 동서와 근처에 또 다른 친구와 잠깐 수다를 떨고 시간을 보니 밤9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아침나절 잠시 봤던 남편의 늦은 부재가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를 품고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역시나 혀에 마비가 온 듯

벌써 잔뜩 꼬여있었다.

 

‘내가 뭘 바라겠니... 신랑아... 내게 결코 세상이 만만한 것이 아닌 거라는

철학을 일깨워준 감사한 양반아... 오늘 밤은 조용히 잘 수 있었어?...

설마... 뻥튀기를 하지 못했다며 궁시렁되던 아쉬움과 댁의 마음이라던 하이트

모양의 생크림 케잌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은 아니겠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오늘 다양한 마음을 공유했던 나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