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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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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디져...


BY 솔바람소리 2009-02-27

 


 

요즘 허공에 붕 떠있는 마음으로 외출, 집안 일, 아이들 챙기기,

남편 건사하기, 해피 손질해주기, 책 읽기, 글쓰기...등등 하려고만

하면 직장인 못지않게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내가 어떤 것도

마지못해 할뿐... 의욕적이지 못한 마음으로 대하고만 있었다.

좀비에 가까운 지경까지 가기 전에 날 좀 어떻게 해야만 했다.

 

아침 무렵, 정신을 챙기자는 심정으로 보다만 책을 들여다보며

집중하기 위한 쉽지 않은 씨름을 벌이고 있을 때 아영이도 기특하게

아침부터 영어교재를 들고 설치더니 책을 들고 내 곁으로 쪼르륵

달려왔다.

 

그리곤 <these>를 가리키며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

 

요즘은 너도나도 세계 공통언어라는 영어를 중요시 여기는

상황이지만 집구석에서 방콕하고 있는 아줌마인 나로서는

남의 얘기일 뿐... 알파벳만 알면 되고 까짓 간단한 TV가

텔레비전의 약자라는 것만 알면 장땡으로 여기고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데 내 배를 빌어 태어난 자식 놈들 둘이서

이런 나를 그냥 내버려두려 하지 않는 통에 가끔 골머리가

지끈 거린다.

 

아빈이도 숙제를 하다가 한 번씩 쪼르륵 달려와서 영어의

문법부터 시작으로 과학교과서에서의 원소기호, 또는

‘원자’가 어떠쿵 저쩌쿵, 설명을 부탁하거나 수학의 ‘무리수’와

‘유리수’ ‘루트’...를 열거한 숫자들을 내밀며 내 눈앞을 깜깜하게

만들곤 했다. 내 능력을 진즉에 벗어난 교과서를 가져와서

물어볼 때마다 무심한 것도 모자라서 무식까지 한 나는,

 

“아이씨!!! 몰라! 너 임마, 비싼 돈 주고 학원 다니면서 왜 그걸

엄마한테 물어봐?! 선생님한테 알아와야지. 지금 이 나이에

너 때문에 책 앞에서 돌 머리된 엄마가 비통함에 빠지는 것이

정녕 보고 싶은 거야?!“ 라며

 

궁금증을 알려주기 보단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럼 녀석은 내게.

 

“ㅎㅎㅎ... 죄송해요, 엄마는 알거라고 생각했지요, 알았어요.

내일 가서 꼭 알아올게요.“ 하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멀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녀석의 뒤통수를 대할 때마다 소심하고 여린 나는 속으로

조만간 중학 3학년 자습서를 사다가 공부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움츠러(^^) 들곤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갑작스런 영어교재 앞에서 정말 먹통이 되어 버린

내 뇌를 정녕 어찌해야 할까, 비참함을 맛봐야 했다.

 

“데어(there)... 아닌데...디스(this)도 아니고...디즈(these)같은데...?”

 

참으로 간만에 보는 단어 앞에서 헤매다가 대답을 해주고도 왠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한때나마 중학교시절 미국 또래와 펜팔도 했던 전적이 있었고

팝송을 써가며 외웠던 제법 혀를 굴렸었던, 뒤지지 않는 영어실력(?)을

소유했었건만... 이마저도 옛말이 되고 말다니...살면 살수록 어째 궁색한

변명 늘어놓을 것들만 많아지는지, 원.

 

자신 없어하는 제 엄마가 딸도 못미더웠던지 교재내용을 담아놓은

cd를 오디오에 넣는 것이 보였다.

‘기집애 진작 그리 할 것이지...’

처참한 심정을 다시 추스르며 책과 벌이고 있던 씨름을 감행하며

먹먹해져 가고 있을 때 오디오를 들으며 따라하던 아영이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엄마 디져~요.”한다.

“!!!!!!!!!!!!!!!!!!”

 

아니, 이게 무슨 망 말? 제 엄마가 그동안 저에게 뭣보다 중요시 여기며

가르친 예절이 얼만데 먹을 것이 없어서 싸가지를 쌈 싸 먹었나,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천륜을 저버린 그런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다니 순간, 평소에도 뚜껑 잘 열리는

내 머리에서 스팀이 일었다.

해서,

 

“야이, 지지배야! 엄마 디져?!“

 

하며 목청 높이니 까르르 웃어 넘어가던 아영이가

 

“그게 아니구요... 이것마저 하고 말씀 드릴게요.” 한다.

 

성질 같아서는 공부고 뭐고 당장 불러재끼고 싶었지만

cd 들으며 열심히 따라하는 발음소리가 진지해서

방해할 수 없기에 꾹꾹 눌러 참고 있었지만 이미 내 눈은

가자미를 연상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나자 아영이가 끝마쳤는지 쪼르륵

달려오더니 좀 전에 내밀었던 영어교재를 다시 내 앞으로

디밀었다. 그리곤,

 

"디져얼 레 셜~츠 (These are red shirts .-빨간 웃옷이에요)

이렇게 읽는 거래요.“ 하며

 

혀가 심한 웨이브 추는 소리로 읽어댄다.

 

디즈 아 레드 셔츠!

 

내가 읽었다면 그런 소리를 냈을 문장을 원어민이 심하게

혀를 굴려 읽으면 그런 소리를 낸다니...

무식을 자랑처럼 꿋꿋이 훈장으로 달고 살던 것을 유감없이

딸에게 내비치고 말았으니... 잠시 뻘쭘해야 했다.

난... 점점 아이들 앞에서 뻘쭘해질 때가 많아진다.

 

배은망덕으로 쌈 싸먹은 것이 아니라 상냥하게도 엄마의 무지를

하나라도 일깨워주겠다는 착한 심성으로 했던 딸의 말에

언성을 높이고 말았으니... 살짝, 얼굴에 열기가 오를 듯도 했지만

난... 요즘 뻘쭘을 이벤트처럼 벌이며 사는 것처럼 뻔뻔함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꿋꿋이 시치미 떼고

생글거리는 아영이를 바라보며,

 

“그래! 니 팔뚝 굵어, 기집애야!!!” 하고 말았다.

 

당당한 내 말에 아영이가 숨을 깔딱 거리며 웃어대더니

한다는 말이 “엄마는 어쩜 그렇게 재미난 말을 잘하세요?”한다.

그리곤 “하나 또 배웠다.”하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아... 순진한 딸에게 난 또 하나를 가르치고 말았으니...

진정 내가 현명한 엄마가 맞는 걸까? 당근빠다... 아닌 줄 안다.

자~알 안다.

 

언젠가 내가 음식에 손을 대기도 전에 먼저 손을 댔던 자식 놈들에게,

 

“야, 이놈들아! 똥물도 파도가 친다는데, 어디서 위아래 없이...”

 

말했다가 식욕을 떨어트려 놓은 것도 모자라서 말이 재미나다며

웃어 넘어가길래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해준 말이 있었다.

 

“그려, 니들 똥 칼라 똥!... 아니다 니들 똥 샌드위치!”

 

그날... 아이들이 먹을 몫까지 내 뱃속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주받은 몸매의 배로 걸레질 할 필요 없이 방바닥을

쓸고 다닐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인지...

내 정신을 챙겨야 하는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