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나도 나를, 내 마음을.
사돈 앞에서 쿵쾅대며 발광하는 심장을 크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 보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던 것도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다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한 마음을 느낀 적도 없었다.
단지, 그가 가여웠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형제들과 알콩달콩까지는
아니라도 함께 어울리며 자연히 미치는 영향들로 웬만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마냥 연민으로 젖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비 없는 호로 자식 자식소리를 뱉어냈던
누군가의 말을 들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 누군가의 장독을 모조리 돌멩이로
박살을 내곤 했다던 자신의 어린 날을 씁쓸히 얘기했던 그가 아니라면
난 평소의 나로 조금은 싸가지가 없는 상태로 그를 대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쉽게도 모두 들어 버렸고 그 탓에 연민이란 저주에 빠지고 말았던 나였다.
내 눈에 비췬 사돈은
늘 굶은 듯 보였고 추운 듯 보였다. 그리고 슬픈 듯 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늘...
키스를 저돌적으로 내게 해댄 그의 행동에 쉽게 녹아내렸던 것도 그런 ‘늘’과
무관지 않은 연민의 힘이 컸다.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처럼 보였던 남자를 난
모질게 내칠 수가 없었다. 안된다고 부정하면서도, 그의 집착이 두려우면서도
그와 나의 인연을 완강하게 부정하질 못했다.
그러면서 늘 그와의 관계 때문에 갈등했다. 그가 숙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그 이유로 상처받을 내 가족들 사이에서 헤매곤 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 방향을 잡지 못했다.
숲가의 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고(?) 돌아오던 날, 겁탈하던 날처럼 나를 범하지
않던 것이 감사했다. 그에게 벌써 길들여진 것처럼, 나는 작은 것에 감사했고
감동했다.
그 날 이후, 사돈은 내가 학원에서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일이 일찍 끝난 시간이면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런 사돈을 위해 티와 남방, 바지 몇 벌과 운동화를 사서 건넸다.
어린애처럼 기분 좋아진 그가 내가 보는데서 웃통을 벗고 티를 걸쳤다.
그리곤 귀에 걸린 입으로 고맙다고 했다. 난 카세트를 받은 답례일 뿐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받기만 했던 내가 그 날 주는 기쁨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받는 것 이상
마음을 가득 채우는, 받은 사람의 행복한 얼굴 그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는
것을...
들어내 놓고 만날 수 있는 만남이 아니었고 기약할 수 있는 우리 사이가
아니었지만 딱히 데이트라고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태어나서 제일 많은 거짓말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곧 깨질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직감하며 불안하기도 했던 때였다.
그와의 만남을 두근대며 기다리진 않았지만 몸을 섞는 것만 빼면 그의
어떤 제안에도 나는 거절하지도 않았다. 복잡하기 싫어서 생각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우리가 함께 또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역시나 분식점에 차를 세우려는 그에게 나는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다.
레스토랑이 뭐냐고 태연하게 묻길래 서양음식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찾아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던 사람이 살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낯선 메뉴 때문인지 아니면 분식과 비교해서 턱없이 비싼 가격 때문인지
알 순 없었지만 어쩐 일로 그가 내게 알아서 시키라고 메뉴판을 건네며